르 코르뷔지에Le Corbusier

르 코르뷔지에Le Corbusier (1887-1965)는 프랑스 계 스위스인 건축가로서 20세기 모더니즘에 가장 영향력이 컸던 건축가에 속한다.  건축가로서만이 아니라 건축이론가, 도시설계가, 화가, 조각가, 가구디자이너로서 영역을 넘나들며 활동. 그의 새로운 이론과 개념은 오늘까지도 논란의 대상이 되고 있다. 그의 작품 중 16건이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등재.

생애


르 코르뷔지에. 1964년 모습. © CC BY-SA 0.0, public domain dedication/Joop van Bilsen/Anefo

르 코르비지에는 일종의 예명이며 본명은 샤를 에두아르 잔레그리Charles-Édouard Jeanneret-Gris. 매우 유서 깊은 가문 출신으로 아버지는 스위스 시계도시 라쇼드퐁에서 시계공방 운영, 어머니는 음악가. 르 코르뷔지에는 만 13세에 라쇼드퐁의 공예학교에서 세공 공부를 시작했으나 건축교사 르네 샤팔라René Chapallaz의 영향으로 미술과 건축에 관심을 기울임. 이 시기에 미술공예운동과 아르누보의 영향을 크게 받음.

1905년, 첫 건축작품 탄생. 공예학교 교사의 집 설계.  1916년까지는 아직 르코르뷔지에 고유의 건축양식이 아직 정립되지 않았으며 스스로 이 시기의 작품을 목록에 넣지 않았음.

1907년, 근 일년에 걸쳐 조각가 레옹 페린과 함께 스케치 여행. 이태리를 일주하고 부다페스트를 거쳐 빈에 도착. 빈분리파 건축가 요세프 호프만의 설계실에 합류하여  6개월간 체류. 여기서 아돌프 로스Adolf Loos의 이론에 접함.

1908년, 처음으로 파리 여행. 여러 건축가들을 두루 사귀고 철근 콘크리트의 선구자 오귀스트 페레Auguste Perret의 사무실에서 1909년까지 약 15개월간 일함.

1910년, 모교의 의뢰로 독일로 가서 독일공작연맹 등을 둘러보며 그곳의 예술 경향 조사. 전국을 돌며 많은 건축가들을 만난 후 1910년 11월에서 1911년 4월 까지 약 5개월 동안 베를린의 건축가 페터 베렌스의 사무실에서 근무. 여기서 미스 반 데어 로에와 그로피우스와 함께 일하게 되며 미국의 프랑크 로이드 라이트의 건축에 접함.

르 코르뷔제와 미스 반 데어 로에, 발터 그로피우스 등 20세기 건축의  세 거장이 잠시나마 한 사무실에서 일했다는 사실은 사뭇 흥미롭다. 그들의 스승 페터 베렌스는 20세기 모더니즘이 시작되는 데 결정적인 영향을 미친 대부. 특히 산업 건축가로 큰 명성을 떨쳤음. 베렌스는 직원들에게 건축은 단순히 건물을 설계하고 짓는 것이 아니라 삶 자체를 관리하는 것이라는 가르침을 줌.

1911년, 두 번째 연수여행. 예술사학자 아우구스트 클립슈타인과 함께 빈, 부다페스트, 루마니아, 터키, 그리스를 거쳐 이태리로 향함. 특히 그리스 아테네의 아크로폴리스에서 크게 자극받음.

1912/13년, 모교인 라쇼드퐁 미술학교 교사로 재직, 건축과 실내장식을 가르치는 한편 건축가와 실내장식가로 자리 잡으려 노력함. 여행 수채화 몇 점 전시회에 출품 (Salon d’Automne). 1918년 일차 대전이 끝날 때까지 파리에 돌아가지 못하고 라쇼드퐁에 머뭄. 이 기간에 현대적인 기술을 사용한 건축이론 연구. <돔-이노> 주택(1914-1915) 모형 탄생. 철근콘크리트 조립식 모형으로 특허를 냄.

1914년, 미술학과장으로 승진. 1916년 고향에서 마지막으로 빌라 슈봅Villa Schwob (빌라 투르크라고도 함) 설계. 디자인은 전통양식을 따랐으나 철근콘크리트 적용. 향후에 정립될 그의 유명한 건축 5대 원칙의 전조를 보임.

1917-1939

1917년, 파리로 완전히 이주. 건축 일거리가 많지 않아 그림에 전념, 입체파 화가 아메데 오장팡 Amédée Ozenfant을 만나 입체파 미술 연구에 심취. 한편 유화 정물화 그리기 시작. 오장팡과 함께 그림 전시. <입체파 이후Après le Cubisme>라는 제목으로 미술평론도 함께 발표. <입체파 이후>는 새로운 예술경향에 대한 일종의 헌장으로서 예술에서의 퓨리즘을 강조. 이는 나중에 건축에도 영향을 미침. 장식성을 배제하고 명확한 선과 기하학적 형태를 추구함.

미술과 건축에 대한 새로운 아이디어를 널리 알리기 위해 1920년 오장팡 및 평론가 폴 데르메Paul Dermée와 함께 <레스프리 누보L’Esprit Nouveau>라는 잡지 창간. 이 잡지에 기사를 쓰면서 처음으로 르 코르뷔제라는 필명을 쓰기 시작.

1920년, 소위 시트로앙 주택(Maison Citrohan)에 대한 아이디어 스케치. 주택의 기본형태로서 시트로앵 자동차의 이름에 착안한 것. 산업사회의 신기술과 새로운 재료를 써서 주택을 지어야 한다는 그의 이념을 뒷받침하기 위해 차용한 이름. 여기서 그는 조립식으로 미리 생산하여 겹쳐 쌓을 수 있는 주택의 기본단위를 발명하며 구조를 담당하는 벽의 해체 등을 위시해서 나중에 완성될 5대 원칙에 일보 더 근접.

1922년, 사촌 피에르 잔레와 함께 건축설계사무소 설립. 1927까지 파리의 건축주들을 위해 수많은 개인 주택 설계. 모두 <돔-이노> 원칙을 따름. 파리 근교의 불로뉴 비양쿠르Boulogne-Billancourt와 파리 16구에 리프시츠 주택, 쿡 주택, 플라넥스 주택, 그리고 현재 르 코르뷔지에 재단이 들어서 있는 라로슈/알베르 잔레 주택Maison La Roche/Albert Jeannere 등을 설계.

같은 해, 300만명의 주민을 위한 <이 시대의 도시(Ville Contemporaine)> 계획안을 만들어 가을 살롱회Société du Salon d’Automne에 출품. 현대 대도시 빈민가의 조악한 생활환경 개선이 목적. 르 코르뷔지에는  자신의 새롭고 현대적인 건축 형태가 하층 계급의 삶을 향상시키기 위한 새로운 해결책이 될 수 있다는 신념을 가짐.

이 계획안의 핵심은 십자 모양의 60층 고층 건물들의 집합체로서, 각 건물은 강철 뼈대 구조로 건설되고 거대한 유리커튼월로 마감했으며 직사각형의 넓은 녹지 안에 배치. 도시 한 가운데에는 거대한 교통허브를 설계. 각 층에 기차역, 버스터미널, 고속도로 교차로가 위치. 옥상층은 공항. 그는 여객기가 거대한 고층건물들 사이에 착륙할 수 있다는 비현실적인 상상을 했으며 인도와 차도를 분리하고 새로운 교통수단으로서의 자동차를 극구 지지. 외곽에는 지그재그 모양의 집합주택들을 다시금 녹지 안에 배치하여 서민들의 주거지로 삼음. 르 코르뷔지에는 미국식 산업모델, 즉 테일러 사 또는 포드 사의 전략을 차용하여 사회를 재생할 수 있다고 보고 프랑스의  기업가들이 이를 선도하기를 희망. 자신의 도시 계획안에 스스로 매료되어 지속적으로 발전시켰으며 1925년,  자동차 산업의 후원을 받아 부아쟁 계획도(Plan Voisin)를 그려 전시. 여기서 그는  센 강 북쪽의  파리 중심부 대부분을 밀어 버리고, 그 자리에 직각으로 교차하는 도로 네트워크와 사각형 공원 속에 십자형 60층 고층건물들을 배치하는 방법을 재시도. 프랑스 정치인들과 기업인들은 르 코르뷔지에의 디자인에 깔려 있는 테일러적, 포드적 발상에는 호의를 가졌으나 그의 싹슬이 계획안에 대해서는 비판과 경멸감을 보임. 다만 이를 계기로 하여 대도시의 비좁고 불결한 환경을 개선해야 한다는 담론이 시작됨.

1923년, <건축을 향하여 Vers une Architecture>라는 제목의 책 발간. 이후부터는 설계에만 전념하지 않고 전시회, 잡지기사, 책과 강연회 등을 통해 자신의 생각을 널리 전파하는데 더욱 공을 들임.

1927년, 슈튜르가르트에서 열린 바이센호프 공동주택단지 프로젝트에 참가하여 처음으로 건축의 5대 원칙을 모두 적용한 집을 지음.

1928년, 스위스의 라 사라 성에서 여러 건축가들과 함께 시암CIAM 결성.

시암이란 근대건축국제회의(近代建築國際會議, 프랑스어: Congres Internationaux d’Architecture moderne)의 준말로서 1959년까지 지속되었던 건축가들의 조직을 말함. 건축의 본래적 기반, 즉 경제, 사회적 기반이었던 원칙으로 되돌아가려는 의도. 제1회 회의는 지그프리트 기디온과 르 코르뷔지에 주도로 진행. 1933년의 제4회 CIAM에서 유명한 <아테네 헌장(憲章)> 탄생. 이때도 르 코르뷔지에가 주필을 맡았음. 주거, 레크리에이션, 작업장, 교통, 역사적인 건축의 다섯 항목에 대하여 헌장을 수립. 이후 조금씩 이에 대한 비판과 반발이 시작되었다가 1959년 제10회 만에 결렬. CIAM 자체가 하나의 엘리트 그룹을 형성하였으므로 국제적 보편성을 인정받지 못했으나 근대건축과 도시계획의 이념을 온 세계에 보급시킨 공적은 높이 평가되고 있음.

1929년, 처음으로 남미 여행. 브라질의 상파올로에서 가수 겸 무용수 죠세핀 베이커를 만나며 그의 춤에 영감을 받아 유명한 빌라 사보아Villa Savoye  설계.

1930년, 프랑스 시민권 취득,  같은 해에 모델 이본느 갈리스와 결혼.

1935년, 뉴욕의 Museum of Modern Art 의 초청을 받아 처음으로 미국행. 국제회의를 방문하여 연설하며 설계용역을 따내려고 하지만 실패. 이 해에 도시계획에 대한 발상의 범위를 넓히고, 재편하여  <빛나는 도시La Ville radieuse>라는 제목으로 출판.

1936년 두 번째로 브라질 방문, 오스카 니마이어와 함께 보건교육부 건물 설계.

1937년 파리에서 열린 만국박람회에 프랑스관 설계

1939년,  2차 대전 발발.

비시 정권

1940년 프랑스가 점령당하자 처음엔 회사 문을 닫고 피레네 산맥으로 피신했었으나 1941년 비시 정권이 들어서자 도시계획 관련 직책을 얻기 위해 비시 정권과 교섭. 도시계획 연구 위원회에 임명되어 알제와 다른 도시들의 재설계를 위임받았으나 그의 계획안이 채택되지 않음.

한동안 르 코르뷔지에의 전쟁 중 행적이 불분명했으나 2002년 뒤늦게 서류와 편지가 발견되어 그가 비시 정권에 동조했음이 드러나게 됨.  르 코르뷔지에는 1930년대에 이미 우파에 속했으며 1934년 이태리 무솔리니의 초대를 받아 로마에서 건축을 강의하기도 함. 르 코르뷔지에의 빛나는 도시와 주거머신의 아이디어는 다분히 파시즘적인 것이어서 파시스트 정권의 우호적인 평가를 받음.

그는 비시 정권과 결탁하여 정부를 위해 일했을 뿐 아니라 나치의 이념에도 동조했었다는 사실이 밝혀짐. 로잔 공과대학의 피에르 프레이 교수는 <그는 극단적인 우생론자에 반유대인사였으므로 눈 하나 깜짝하지 않고 히틀러를 위해 일했을 것>이라고 했고 독일의 건축가 한스 콜호프 Hans Kollhoff는 <그의 무지막지한 도시설계안을 보면 전체주의적인 성향이 농후한 건 사실>이라고 평함.

1940년 10월 31일에 어머니에게 쓴 편지가 발견되었는데 거기서 <히틀러가 의도한바가 성공한다면 그는 아마도 유럽을 재편성하는 위대한 업적을 달성할 수 있을 것입니다.>라고 쓴 구절이 발표되어 물의를 일으킴. 자신의 전체주의적 도시설계안이 구현되리라는 기대감이 있었던 것으로 추정됨.

이차대전 이후

프랑스가 해방된 1944년 건축가 협회 도시계획분과 회장직을 맡게 되어 다시 설계사무실 문을 염. 1945/6년에는 국토 재건계획을 수립하지만 구현되지 않음.

1945년 말 다시 미국행. 작품전시회. 미국에서 이름이 알려지기 시작. 아인슈타인 방문.

1947년, 유엔건물 건축위원회의 일원으로 추대됨. 그의 기본 아이디어에 의해 나중에 유엔건물 건설. 이 즈음 조형활동 시작.

1951년, 인도 펀잡주 정부에서 새수도 찬디가르 도시계획을 의뢰.

1952년, 마르세이유에서 처음으로 위니테 다비타시옹 (Unité d’Habitation) 건설. 약 6년동안의 계획과 설계과정 선행. 위니테 다비타시옹은 주거단위, 주거머신이라 불렸으며 현 대형 고층아파트의 원형.

1959-62 하버드대학의 Carpenter Center for Visual Arts 건물 설계. 유엔건물을 제외하고는 미국에 세워진 유일한 작품

1960년, 르 코르뷔지에 재단 설립

1965년 모로코에서 해수욕 중 심장마비로 사망.

 

건축 이론


19세기 말 20세기 초에 일어난 산업과 기술의 큰 변화는 삶 자체를 변하게 했고 르 코르뷔제는 급속도로 변화하는 시대는 건축의 급속한 변화를 요구한다고 주장.

주거에 대한 지나간 생각은 버려야 한다. 사회는 주거문화, 정치 및 예술 등 전반에 걸친 변화를 요구하고 있다. 사회에 팽배한 변화에 대한 요구를 집약하지 않고는 건축가와 위대한 지도자들의 과업이 소용없어진다. 이들의 역할은 대중의 힘을 모아 일정한 방향으로 유도하는 것이다. 이 방향이 바로 한 시대의 양식이다. 지금 우리에게 중요한 것은 기술적 가능성이지 철학적 배경이 아니다. 지난 날 미학 운운했던 것들이 지금 우리를 만족시키지 못한다. 우리는 우리만의 미학과 우리만의 형태를 찾고자 한다. 기술과 산업의 순수한 기능성에서 찾을 것이다. 이들이 바로 지금 우리 시대정신의 산물이다. 이들을 인정한다면 앞으로 아름다운 길이 열릴 것이다. 아름다움은 사람을 귀하게 한다.

르 코르뷔제에게 건축가의 역할이란 기능적이고 합리적인, 목적에 부합하는 건물을 설계하는 것. 시대가 주는 다양한 기술적 가능성을 최대한도로 활용해야 한다고 주장. 다시 말하자면 철근콘크리트 구조, 조립 모듈 등을 적용하여 기존에 전혀 생각지도 못했던 건축의 새로운 지평을 열자는 것. 이를 위해 기능적으로 아무 의미가 없는 장식적 요소들을 모두 버림. 기계가 가지는 순수한 기능성을 롤모델로 삼았기 때문에 그 결과는 분명하고 단순한 건물이었음. 다시 말하자면 입방체, 원, 사각형의 기하학적 기본 형태을 겹치고 조합하여 건물을 만듬. 콘크리트에 대한 집착이 극대화되어 마침내는 식탁, 책상 등의 가구까지 콘크리트로 만들어 후일 소위 말하는 <브루털리스트>, 즉 무지막지한 건축가들의 원조가 되었다는 평가를 받게 됨.

르 코르뷔제의 업적과 이념 중에서 가장 크게 비판받고 있는 부분. 그는 이미 1920년대 초반에 파리를 완전히 다시 세우려는 청사진을 세워놓고 있었는데 그에 따르면 몇몇 중요한 문화재를 제외하고 도시 전체를 자신의 개념대로 새로 지을 요량을 하고 있었음. 물론 당시 여러 건축가와 도시계획가들이 현대적 개념에 맞는 <건강한 도시> 설계에 열중했었으마 타 예술가들의 이상도시와 르 코르뷔제가 설계한 전체주의적인 도시는 그 성격이 전혀 달랐음. 유럽과 미국에서 자신의 도시설계 개념을 실현해 보고자 여러 번 시도했으나 성공하지 못함. 1950년대에 마침내 자신의 <빛나는 도시>를 이식시킬 특별한 기회가 왔는데, 인도의 펀자브 주와 하리아나 주에서 새로운 수도인 찬디가르의 건설을 의뢰해 온 것.

그의 총체적 도시개념이 집약되어 나타난 것이 유니테 다비타시옹 (Unité d’Habitation). 문자 그대로 해석하자면 <주거타입> 혹은 공동주택의 기본형태라고 할 수 있음.  이 주거타입은 주거머신이라고도 불림. 르 코르뷔제에 자신은 합리적이고 경제적인 주거형태이며 인간의 기본적인 욕구를 모두 충족시키는 형태라고 정의했으며 1947년에서 1967년 사이에 프랑스에 네 동, 독일 베를린에 한 동을 각각 세움.

5대 원칙


기둥(필로티)

르 코르뷔지에는 지지하는 기둥과 지지 기능 없이 공간을 막음하는 벽을 철저히 구분. 기존의 두터운 벽을 철근콘크리트기둥의 뼈대로 분해. 얇은  막과 같은 외피를 입힘. 기둥과 외피 모두 정역학적으로 최적화하여 부유하는 건물이 탄생. 었다. 건물이 필로티 위에 세워지기 때문에 습기가 침투하지 않을 뿐 아니라 건물 하부 공간을 다른 용도로 이용할 수 있다는 장점이 있음. 건축요소를 기능에 따라 해체하는 원리를 지속적으로 발전시켜 종국에는 지붕도 분리됨. 즉, 지붕을 얹지 않고 우산처럼 따로 세움. 이 원칙은 그의 마지막 작품, 취리히의 <르 코르뷔지에 센터>에서 제대로 구현.

취리히에 위치한 르 코르뷔지에 센터. 지붕을 우산처럼 따로만들어 세움. © CC BY-SA 3.0/Roland zh.

옥상정원

평지붕을 얹어 데크 층을 추가적 주거공간 내지는 정원 이용.

자유로운 평면디자인

집을 필로티 위에 얹음으로써 실내 공간이 기둥에 의해 분리되지 않을 뿐 아니라 벽이 층마다 같은 위치에 포개지지 않아도 되므로 평면을 자유롭게 쓸 수 있게 됨.

옆으로 긴 창문

철근콘크리트와 필로티로 인해 창문의 크기를 자유자재로 디자인하는 것이 가능해짐. 창을 옆으로 길게 만들어 실내에 빛이 고루 스며들수 있게 함. 사촌과 함께 디자인한 제네바의 푈커분트 건물의 창 하나는 그 폭이 무려 200 m에 달함.

자유로운 입면 디자인

입면 역시 기둥과 기둥 사이에 벽을 쌓아 올려 조성하지 않고 필로티가 건물 바닥 안쪽으로 세워지기 때문에 입면 벽이  마치 캔버스처럼 아무 장애없는 표면을 형성. 그 덕에 입면 구성이 자유로워짐.

사보아 빌라. 5대 원칙이 모두 적용되었다. ©CC BY-SA 3.0 DE/LStrike

 

베를린에 위치한 르 코르뷔지에 하우스. Unité d’Habitation의 사례. © CCBY-SA 4.0/Gunnar Klack

 

작품


2016년 현재 르 코르뷔지에의 작품 중 모두 16 건이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등재되어 있음. 슈투트가르트 바이센호프 주거단지에 세운 두 채의 주택을 위시하여, 제네바의 Clarte, 인도 찬디가르의 정부청사, 토쿄의 국립서양미술관, 위의 사보아 빌라 등이 이에 속함.

건축 외에도 400 여점의 그림, 44점의 조형물, 27점의 벽걸이 양탄자 디자인이 존재하며 스케치, 동판화 등도 다수 전해짐.

구현된 작품들(일부)

Villa Besnus (Ker-Ka-Ré)Boulevard de la République 85 in Vaucresson1922
Maisons La Roche-JeanneretSquare du Docteur-Blanche in Paris1923
Villa Le LacRoute de Lavaux in Corseaux1923-1924
Quartiers Modernes FrugèsRue Le Corbusier/Rue Henri Frugès/Rue des Arcades in Pessac1924-1926
Maison CookRue Denfert-Rochereau 6 in Boulogne-sur-Seine1926
2 hauses in WeissenhofBruckmannweg 2 und Rathenaustrasse 1–3, Stuttgart1927
Villa SteinRue du Professeur Victor-Pauchet 15 in Vaucresson1926-1928
Villa SavoyeRue de Villiers 82 in Poissy1929-1931
ClartéRue Saint-Laurent 2–4 in Geneva1930-1932
Fondation Suisse, Cité Internationale Universitaire de ParisBoulevard Jourdan in Paris1931-1933
Casa (bzw. Maison) Dr. Pedro Domingo CurutchetLa Plata ,  Argentinien1948-1949
Unité d’HabitationBoulevard Michelet in Marseille1946-1952
Government BuildingsChandigarh, Indien1952-1959
Notre-Dame-du-HautRonchamp, France1951-1955
Unité d’Habitation   („ Corbusierhaus “)Flatowallee 16 in Berlin1958
National Museum of Western Art7-7 Ueno Imperial Grant Park, Taitō, Tokyo, Japan1959
Carpenter Center for Visual Arts der Harvard-UniversitätQuincy Street in Cambridge (Massachusetts)1959-1962
Centre Le CorbusierHöschgasse 8 in Zürich1963/1967

르 코르뷔지에 재단


1960년 르 코르뷔지에가 지인들의 지원을 받아 직접 설립. 파리에 위치. 르 코르뷔지에의 예술적 유산을 보호하고 보존하는 것이 목적. 연구 프로젝트를 지원하며 수많은 서적 발간.

재단 홈페이지:

 

참고 문헌 / LINKS


  • WIKIPEDIA/LE CORBUSIER
  • Le Corbusier, Pierre Jeannere, „Fünf Punkte zu einer neuen Architektur“, Die Form. Zeitschrift für gestaltende Arbeit, 2 1927, pp. 272–274.
  • Roulet, Daniel de, „Die bösen Tage von Vichy“, Der Tagesspiegel, 15.08.2009.
  • http://www.lecorbusier.de/frameset_bio04.html (르 코르뷔제 생애와 작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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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 footnote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