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씽허스트캐슬 정원 Sissinghurst Castle Garden

목차

요약


영국 켄트(Kent) 주에 위치한 네셔널 트러스트 소속 정원. 1930년대에 소설가 비타 색빌웨스트와 외교관·정치가·작가였던 남편 해럴드 니콜슨이 시씽허스트 캐슬(Sissinghurst Castle)에 미술공예풍 정원을 조성했다. 여러 해에 걸쳐 정성스럽게 가꾸었으며, 현재는 영국에서 가장 유명하고 아름다운 정원 중 하나로 손꼽힌다. 매년 전 세계에서 약 16만 명의 정원 애호가들이 방문한다.

1930년, 매우 낙후된 상태의 시씽허스트 캐슬과 약 180헥타르에 이르는 영지를 구입한 두 사람은 건물을 수리하는 한편 약 2헥타르 규모의 정원을 조성하기 시작했다. 이들은 정원을 만들어가는 과정을 일기, 편지, 에세이, 칼럼 등을 통해 생생히 기록으로 남겼고, 이 방대한 기록은 훗날 여러 권의 책으로 출간되었다(참고 문헌 참조). 이 기록들을 통해 정원이 이들 삶의 중심이었고, 그 애정과 헌신이 얼마나 깊었는지 알 수 있다.

시씽허스트의 상징은 높이 솟은 중세의 쌍둥이탑과 2층 규모의 긴 행랑채(현 도서관)이며, 총 네 채의 건물이 정원을 중심으로 흩어져 있다.

역사


시씽허스트의 역사는 중세로 거슬러 올라간다. 원래는 사방이 해자로 둘러싸인 장원이었으며, 1480년 베이커 가문이 이를 구입하여 성을 방불케 하는 대저택으로 확장했다.
1756년에는 왕실 소속이 되었고, 7년 전쟁 동안에는 프랑스 포로 3천 명을 수용하며 ‘시씽허스트 캐슬’이라는 명칭이 붙었다. 이 시기 성의 3분의 2가 파괴되었고, 전면의 행랑채, 쌍둥이탑, 사제관, 코티지 한 채, 성벽 일부만 남았다. 이후 50년간은 빈곤층의 거주지로 이용되었다.

1855년에는 콘월리스 가문이 이를 구입하여 농지로 활용하다가, 1928년 농장 운영을 중단하고 매물로 내놓았다.

1930년, 넓은 집을 찾던 비타 색빌웨스트와 해럴드 니콜슨 부부는 이곳을 매입한다. 색빌웨스트의 친가와 가까운 점, 고향인 켄트에 대한 애착, 폐허가 주는 낭만, 쌍둥이탑과 해자, 붉은 벽돌 담장, 개암나무 숲의 존재 등이 결정적인 이유였다.

비타 색빌웨스트의 작품으로 더 잘 알려져 있지만, 실제로 시씽허스트 정원은 두 사람의 합작품이다. 합리적이고 조직적인 사고를 지닌 해럴드 니콜슨이 공간 설계를 맡았고, 낭만적인 성향의 비타 색빌웨스트는 식재를 담당했다. 에드윈 루티엔스에게 일부 설계를 맡기기도 했으며, 이를 통해 거트루드 지킬의 영향도 간접적으로 나타난다. [1]건축가 에드윈 루티엔스는 거투르드 지킬과 오랫동안 … Continue reading 

히드코트 매너에서 영감을 받았다는 주장도 있으나 근거는 희박하며, 오히려 독창적인 아이디어가 두 사람의 내면에서 샘솟았다고 보는 것이 타당하다.

정원의 특징


시씽허스트 정원은 전형적인 영국식 정원의 특성을 지닌다. 반듯한 구조 속에 높은 벽과 생울타리로 둘러싸인 은밀한 공간, 그리고 낭만적인 식물 조합이 특징이다.

처음에는 코티지 복원과 동시에 농지였던 영지 일부를 정원용으로 정비했다. 색빌웨스트는 식재를 시작했고, 니콜슨은 매우 신중하게 공간의 기본 틀을 설계했다. 원래 성을 둘러싼 성벽 일부가 남아 있었기에 이를 공간의 테두리로 활용했고, 부족한 구간은 주목이나 호랑가시나무 같은 높은 생울타리로 보완했다. 벽과 나무에는 덩굴식물을 감아올려 수직 구조를 강화했다.

장미원, 코티지 정원, 허브가든 등 여러 정형 정원들이 중심을 이루며, 좁은 문과 시각 축을 이용해 각 정원 공간이 유기적으로 연결된다. 외곽의 산책로, 개암나무 숲, 해자와도 신중히 연결하여 전체 공간의 흐름을 조화롭게 조성했다.

정형 정원은 높은 생울타리나 담장으로 둘러싸인 ‘옥외실’(outdoor room)로 구성되어 있으며, 각 공간에는 고유의 테마가 부여되었다. 그중에서도 백색 정원과 장미원이 가장 유명하다.

전체적으로는 명확한 구조 위에 풍부한 식물로 채워진 것이 특징이며, 이는 영국 미술공예풍 정원의 핵심 특징이기도 하다.

초기 2년간은 외부에서 통근하며 정원 조성을 진행했고, 1932년 코티지 복원과 정원 틀이 완성된 뒤 정식으로 이주했다. 이후 정원의 아름다움이 점차 알려지면서 1938년부터 일반에 공개되었으며, 입장료는 1실링이었다. 유머 감각이 뛰어났던 비타 색빌웨스트는 방문객들을 ‘실링들(shillings)’이라고 부르기도 했다.

1962년 색빌웨스트가 타계한 이후, 1967년부터 네셔널 트러스트에 관리가 위탁되었다. 방문객 수가 지나치게 늘자 1992년부터는 연간 16만 명으로 제한하고 있다.

정원 구성


정원 전체의 공간 구성은 거의 전적으로 해럴드 니콜슨이 맡았으며, 가히 마스터피스라 할 수 있다.

본래 캐슬 건물은 거의 파괴된 상태였고, 남북으로 길게 지어진 낮은 행랑채 건물(보통 이를 시씽허스트 캐슬이라 부르며, 현재는 도서관으로 개조됨), 그 뒤에 위치한 쌍둥이탑, 탑 북쪽의 구 사제관, 동남쪽의 코티지 등이 산재해 있었다. 이 네 채의 건물과 남서쪽 외곽의 ㄱ자 형태로 꺾인 해자, 그리고 기존 개암나무 숲이 자연스럽게 정원의 범위를 결정해 주었다. 전체적으로는 약간 일그러진 정사각형 형태였기 때문에, 반듯한 포멀 정원을 조성하고 각 공간을 시각축으로 연결한다는 기본 개념을 실현하는 데 많은 고민이 필요했다.

니콜슨은 행랑채 건물과 탑 앞뒤에 넓은 잔디마당을 조성하고, 이를 중심으로 좌우 날개에 각각 정형 정원을 배치했다. 코티지 앞에는 먼저 전통적인 농가 정원을 만들었고, 원래 키친가든이 있던 자리를 정리하여 제법 큰 장미원을 조성하고 이를 농가 정원과 연계시켰다. 이때 가장 중요했던 디자인의 핵심은 시각축이었다. 장미원과 농가 정원에서 개암나무 숲 끝까지 시각축을 연결하고자 했으나, 부지가 사다리꼴이어서 일직선 축이 불가능했다. 이에 따라 농가 정원에서 일단 공간을 마무리하고, 그 대신 개암나무 숲과 연장선상에 피나무 산책로를 별도로 조성하여 엇각의 새로운 축을 만들었다. 개암나무 숲이 끝나는 지점에는 허브가든을 배치하고, 이 허브가든에서 해자 쪽으로 방향을 틀게 유도했다.

좌측 날개 정원은 비교적 늦게 완성되었다. 먼저 좌우 날개 사이를 주목 생울타리 길로 연결하여 가로 방향의 시각축을 열었다.

마지막으로 개암나무 숲과 나란히 구축된 기존 성벽을 끼고 농가 정원에서 해자로 이어지는 산책로를 조성함으로써 정원–잔디마당–정원이 ㄱ자 형태로 꺾이며 연결되었고, 그 사이에 넓은 유실수 초지를 감싸는 큰 구조가 완성되었다. 정원 외곽으로는 켄트의 픽처레스크한 풍경이 펼쳐진다.
제2차 세계대전 이후에는 사제관 앞의 정원을 백색정원으로 재구성했다.


상하 잔디마당

캐슬 건물 앞의 진입 마당, 캐슬과 타워 사이의 공간, 그리고 타워 앞의 공간은 모두 전통적인 영국식 잔디마당으로 구성되었다. 이 공간들은 기능적인 공간으로서의 역할과 동시에 좌우 정원 구역으로 유도하는 전환의 역할을 한다.

캐슬과 탑 사이의 잔디마당은 건물과 높은 벽돌담으로 둘러싸여 있으며, 좌측 담장 하부에는 자주색 계열이 주도하는 경계화단이 조성되었다. 이 화단은 맞은편 장미원의 벽 사이에 난 게이트에서 정면으로 바라보이는 곳이므로, 장미원과 색채 조화를 이루기 위해 자주색을 선택했다.

쌍둥이탑의 게이트를 통과하면 다시 잔디마당이 펼쳐지고, 여기서 좌우의 정원 구역으로 이어진다. 탑 앞 잔디마당 역시 양쪽이 성벽으로 막혀 있으나, 클레마티스와 덩굴장미가 벽면을 덮고 있으며 각각 게이트가 나 있다. 왼쪽 게이트를 통과하면 사제관 앞의 백색정원이 나타나고, 오른쪽 방향으로 가면 장미원 중앙의 론델(원형 잔디 공간과 이를 둘러싼 높은 주목 생울타리)로 이어진다.

쌍둥이 탑

시씽허스트의 상징이라 할 수 있는 이 탑은, 비타 색빌웨스트가 서재로 사용했던 공간이다. 탑 꼭대기 전망대에서는 정원 전체를 조망할 수 있으며, 맑은 날에는 캔터베리까지 보인다.

장미원

색빌웨스트와 니콜슨 부부는 처음부터 장미가 가득한 정원을 원했다. 모든 벽돌담에 덩굴장미를 감아올리고, 허브원과 키친가든에도 장미를 심을 계획이었다. 결국 키친가든을 확장하여 장미원으로 조성하게 되었다.

비타 색빌웨스트는 시씽허스트 이전에 살던 롱반의 정원에서도 여러 해 동안 장미를 길렀기에 장미에 대해 상당한 식견을 갖고 있었다. [2]Brown 1990: 66–67 현대 장미보다는 오래된 장미 품종을 선호하여, 개화 기간이 짧은 불편을 감수하면서도 풍성한 꽃과 강한 향기를 지닌 벨벳빛의 전통 품종들을 수집하였다. 이러한 장미들은 장미원뿐 아니라 다른 정형 정원에도 야생장미나 관목장미 형태로 심어져 정원 전체에 낭만적인 터치를 더했다.

부르봉장미(버번장미), 차이나장미(월계화), 갈리카장미, 펨버튼 장미 컬렉션 등이 특히 유명하다.

피나무 길과 개암나무숲 The Lime Walk and The Nuttery

기존 개암나무 숲의 축을 이어받아 정원의 남쪽을 마감하는 피나무길은 해럴드 니콜슨이 오랜 시간 정성을 들여 완성한 공간으로, 고전적인 이탈리아 정원을 염두에 두고 설계되었다. 축의 끝에는 조각상을 세우고, 일정 간격으로 토스카나산 테라코타 화분을 배치하였다. 일종의 ‘봄길’로 구상하여 수많은 구근류를 심었으며, 봄철 외의 계절에는 꽃을 오직 테라코타 화분에만 담았다. 길 양쪽에는 높은 유럽서어나무 생울타리를 심어 시각적으로 공간을 닫았다.

이 길 끝에서는 자연스럽게 개암나무 숲으로 이어진다. 개암나무 숲 아래에는 그늘을 견디는 숙근초들을 심어 숲속 분위기를 연출하였으며, 두 개의 조각상을 배치해 마치 고대 그리스 신화 속 장면을 떠올리게 한다. 숲을 지나면 다시금 허브가든이라는 정형적 공간이 나타나, 마치 신화에서 현실의 정원으로 되돌아오는 듯한 연출을 완성하였다.

농가정원과 해자산책로 The cottage garden and The Moat Walk

농가정원(코티지 가든)은 가족만의 사적인 공간으로, 16세기 정원의 흔적 위에 조성했다. 전통적인 영국 농가정원의 양식을 따르려 했지만, 두 사람 모두 귀족 가문 출신으로 대저택에서 자란 탓에 실제 농가정원의 삶이나 형태에 대한 구체적인 이해는 부족했다. 대신 이들은 자연주의 정원을 옹호한 정원가 윌리엄 로빈슨을 흠모하며, 그의 글을 통해 코티지 가든에 대한 자신들만의 해석을 시도했다.

코티지 건물 벽은 덩굴장미로 덮이고, 화단은 부부가 좋아하는 식물들로 가득 채워졌다. 이는 전통적인 기능 중심의 코티지 가든이라기보다는, “작은 화단마다 꽃이 만개하는 곳”이 되었다.

정원 외곽에서는 오래된 성벽이 발견되었는데, 이곳은 본래 해자가 흐르던 자리다. 물줄기는 사라졌지만 성벽 일부는 남아 있었고, 개암나무 숲과 평행을 이루는 이 유리한 지형을 따라 잔디 산책로를 만들었다. 이 길은 ‘해자 산책로(The Moat Walk)’로 명명되었다. 산책로 끝에는 물이 흐르는 해자로 연결되며, 그 맞은편에는 디오니소스 상을 세워 시각적 축을 형성하고 있다.

백색정원 The White Garden

시싱허스트에서 가장 유명하고, 가장 많이 모방된 공간이다. 처음부터 계획된 정원은 아니었으며, 사제관 앞의 공간을 어떻게 꾸밀지를 오랜 시간 고민한 끝에 여러 차례 구상이 바뀌었다. 초기에는 델피니움 같은 키 큰 숙근초를 심기도 했다.

1939년, 비타 색빌-웨스트는 흰꽃을 피우는 식물들과 이를 보완하는 연한 색상의 식물만을 모아 심겠다는 아이디어를 떠올렸다. 하지만 그해 제2차 세계대전이 발발하면서 계획은 연기되었다. 전쟁이 끝난 후, 전쟁 중 훼손되거나 방치된 정원 구역들을 하나씩 복구해 나갔고, 마지막으로 손을 댄 곳이 바로 백색 정원이었다. 이는 1949년의 일이다. [3]Brown 1990; 123–124

당시 색빌-웨스트는 옵저버(Observer) 지에 정원 칼럼을 연재하고 있었다. 그녀가 백색 정원을 조성한다는 소식에 많은 독자들이 관심을 가졌고, 정원을 직접 보기 위해 시싱허스트를 방문했다. 이처럼 독자의 시선 아래 정원이 점차 형성되는 과정을 거치며, 백색 정원은 자연스럽게 세간의 주목을 받게 되었다. [4]Brown 1990; 124 방문객들은 정원의 변화 과정을 사진으로 기록해 잡지나 신문에 기고했으며, 이러한 참여와 기록이 정원의 명성을 높이는 데 큰 역할을 했다.

당시에는 아직 ‘백색 정원’이라는 이름이 없었고, ‘창백한 정원’, ‘그레이 가든’ 등 다양한 이름으로 불렸다. 그러다 1968년, 색빌-웨스트의 Garden Book이 출판되며 비로소 ‘백색 정원(The White Garden)’이라는 이름이 정착되었다. [5]Brown 1990; 125

백색 정원은 전형적인 사분원 구조를 갖고 있으며, 내부는 다시 여러 개의 작은 화단으로 나뉘어 있다. 높은 생울타리와 벽이 사방을 감싸고 있어, 마치 은밀한 공간에 백색의 보물들을 숨겨 둔 듯한 느낌을 준다. 백색 덩굴장미부터 흰 꽃을 피우는 관목, 다양한 품종의 백합, 아네모네, 앵초, 은빛 잎을 지닌 식물들까지—다양한 형태와 질감의 백색 식물들이 한데 어우러져, 독특하고 조화로운 분위기를 만들어낸다.

시싱허스트 정원 배치도. 출처: Brown 1990: 131

시싱허스트 캐슬 가든

  1. 진입마당 The entrance court
  2. 마당 The courtyard
  3. 도서관 The Long Library
  4. 탑The tower
  5. 장미원 The rose garden
  6. 포이스 벽Powys’s wall
  7. 피나무 길The lime walk
  8. 사우스 코티지  The South Cottage
  9. 해자 산책로The moat walk
  10. 디오니소스 조각상 Statue of Dionysos
  11. 너서리 The Nursery
  12. 허브가든 The herb garden
  13. 해자 The moat
  14. 유실수 정원 The orchard
  15. 주목 산책길 The Yew walk
  16. 백색정원 The White Garden
  17. 탑잔디마당 The tower lawn
  18. 사제관 The Priest’s House
  19. 델로스 Delos
  20. 가제보 The gazebo 

참고 문헌


  • Brown, Jane (1985): Vita’s other world. A gardening biography of V. Sackville-West. Harmondsworth: Viking.
  • Brown, Jane (1990): Sissinghurst. Portrait of a garden. London: Weidenfeld & Nicolson in association with the National Trust.
  • Sackville-West, V.; Nicolson, Philippa (1968): V. Sackville-West’s Garden Book. A collection taken from “In Your Garden”, “In your garden again”, “More for your garden”, “Even more for your garden” /  by Philippa Nicolson. 5th impress 1974. S.l.: M. Joseph.
  • Sackville-West, V.; Raven, Sarah (2014): Vita Sackville-West’s Sissinghurst. The creation of a garden /  Vita Sackville-West and Sarah Raven. London: Virago.
  • Sackville-West, Vita; Nicolson, Harold (2006): Sissinghurst. Portrait eines Gartens. 1. Aufl. Hg. v. Julia Bachstein. Frankfurt am Main, Leipzig: Insel Verlag (Insel-Taschenbücher, 3183).

외부 링크


 

이미지 갤러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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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서양정원사 백과/장소/정원/시싱허스트 캐슬 정원, 영국 캔트

각주

각주
1 건축가 에드윈 루티엔스는 거투르드 지킬과 오랫동안 파트너였다. 지킬의 정원조성기법을 흡수하여 지킬-루티엔스 정원이라는 개념이 탄생했다.
2 Brown 1990: 66–67
3 Brown 1990; 123–124
4 Brown 1990; 124
5 Brown 1990; 1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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