볼프강 외메 (Wolfgang Oehme 1930-2011)
독일 출신의 미국 정원사이자 조경가로, 미국으로 이주한 뒤 ‘뉴 아메리칸 스타일(New American Style)’로 알려진 자연주의 조경 양식을 독자적으로 구축했다.
볼프강 외메(Wolfgang Oehme, 1930년 5월 30일~2011년 11월 24일)는 독일 출신의 미국 조경가이자 정원사이다. 잔디와 교목 중심의 미국 정원에 그라스와 숙근초를 대규모로 도입하여 ‘뉴어메리칸 가든’의 선구자로 평가받는다. 그는 자신의 정원을 ‘볼드 로맨틱 가든(Bold Romantic Garden)’이라 불렀다. 강건하고 오래가는 식물을 선 굵게 배치해 사계절의 변화, 바람과 빛, 겨울의 마른 구조까지 경관으로 만든 것이 특징이다.
생애와 활동
독일에서의 성장과 교육 (1930~1956):
1930년 독일 동부의 산업도시 켐니츠의 중산층 가정에서 태어났다. 말수가 적고 조용했던 소년 시절, 숙부의 주말정원에서 개구리와 거북이를 관찰하며 자연에 대한 깊은 경외감을 키웠다. 고향에서 정원사 교육을 마친 뒤, 동독 정권의 감시를 피해 서베를린으로 건너가 수목재배원 도제를 거쳐 베를린 조원전문대학에서 전문 조경 교육을 수료했다.
세 명의 ‘칼'(Karl)에게 얻은 영감:
그의 조경 철학은 평생 세 명의 ‘칼’로부터 지대한 영향을 받았다. 첫째는 소설가 칼 마이(Karl May)로, 그의 인디언 소설 《비네투》 속 광활한 미 대륙 대평원 묘사는 외메에게 서부 개척지에 대한 동경을 심어주었다. 둘째는 대학 시절 함부르크 국제정원박람회(IGA 1953) 실습에서 만난 조경가 칼 플로민(Karl Plomin)으로, 대범한 스케일의 야생숙근초 배식 기법을 배웠다. 셋째는 육종가 칼 푀르스터(Karl Foerster)로, 그의 그라스 예찬 철학과 ‘일곱 계절의 정원’ 개념은 외메의 평생 디자인 신조가 되었다.
미국으로의 이주와 초기 작업 (1957~1974)
1957년 볼티모어로 이주한 뒤, 조경설계사무소와 녹지국에서 근무하며 잔디밭 중심의 미국식 정원에 문제 의식을 가졌다. 1962년, 평생의 협력 관계를 맺은 클라이언트 볼머 부부를 만나, 미국에서 처음으로 잔디밭을 완전히 없애고 숙근초와 그라스로 채운 ‘볼머 정원(Vollmer Garden)’을 완성했다. 그는 이 초기 작업을 2011년 사망할 때까지 직접 관리하고 보완했다.
주요 조경 철학과 배식 기법
잔디밭에 대한 비판과 그라스의 도입:
외메는 잔디 기계의 연료 낭비와 생태적 단조로움을 지적하며 잔디밭에 비판적이었다. 그는 들의 잡초로 취급받던 그라스와 야생화를 정원의 주인공으로 격상시켰다.
모노타입(Monotype)과 매트릭스 초원:
공간을 대형 단위로 구획한 뒤, 기후 조건에 강하고 생태적 경쟁력이 높은 강건한 C-전략 식물 한두 품종만 수백, 수천 본씩 대량으로 심어 시각적인 웅장함과 사계절 구조적 아름다움을 동시에 유지하는 기법을 구사했다.
단골 3종 배식 (삼화음 조합)
칼라마그로스티스(그라스), 헬레니움, 루드베키아를 한데 어우러지게 대량 배식하는 조합을 가장 즐겨 썼다.
구조적 소교목 중심의 목본 설계:
나무를 먼저 심고 정원 틀을 짜는 일반적인 방식과 달리, 외메는 초본류를 가장 먼저 배치한 뒤 이 초본 정원의 수평 경관을 방해하지 않고 돋보이게 하는 휴먼 스케일의 소교목 및 관목만을 제한적으로 곁들였다.
동업과 전성기 (1975~2011)
1975년, 디자인 감각과 사업 수완이 뛰어난 네덜란드계 조경가 제임스 반 스웨덴(James van Sweden)과 공동으로 설계사무소 OvS를 설립했다. 이후 외메는 정원 작업을, 반 스웨덴은 도면 작업과 외교 및 홍보를 전담하며 긴밀한 협력 관계를 구축했다.
1976년 수주한 워싱턴 연방준비은행 정원은 큰 전환점이 되었다. 딱딱하고 권위적인 관공서 외부 공간에 물결치는 그라스와 대담한 숙근초 군락을 도입하여 다정하고 머물고 싶은 공공 공간으로 변화시킨 이 작업은 미국 조경계에 큰 반향을 일으키며 ‘뉴어메리칸 가든’이라는 장르명을 확립하는 계기가 되었다.
외메는 매주 일요일 아침 7시부터 타우슨 시청 앞 정원 등 도시 유휴지에 직접 그라스를 심고 풀을 뽑는 자원봉사를 이어갔으며, 이 공로로 1989년 시청 표창을 받고 1994년 조경 명예의 전당에 헌액되었다.
귀향과 유산
미국에서 큰 명성을 얻었지만, 외메는 평생 독일 고향 땅과 유년 시절 영감의 원천이었던 발트해 사구 풍경을 그리워했다. 말년인 1990년대 이후 독일 조경가 페트라 펠츠(Petra Pelz)와의 만남과 동업을 통해 마침내 독일에서도 그의 작품 세계가 인정받았다. 그의 선 굵고 로맨틱한 식재 철학은 현대 자연주의 조경 설계의 거장 피트 아우돌프(Piet Oudolf) 등 후대 조경가들에게 지대한 영향을 끼쳤다. 독일로 완전히 귀향한 것이 아니라 작품을 통한 간접적 귀향이었으며 그의 사후, 2021년에는 에르푸르트 연방정원박람회(BUGA)에 그의 식재 철학을 재현한 큰숙근초원이 조성되었다.
정원관과 배식 원리
- 잔디 중심 정원에 대한 비판: 넓은 잔디를 계절 변화가 적고 식재 가능성을 제한하는 공간으로 보았다.
- 그라스의 주도성: 스스로 그라스의 황제라 칭하며 그라스를 공간과 움직임을 만드는 핵심 디자인 요소로 사용했다.
- 큰 단위의 덩어리 식재: 공간을 큰 구역으로 나누고 한 구역에 한 종 또는 한 품종을 심어 하나의 면으로 인식되게 했다.
- 강건한 식물의 엄격한 선발: 입지 적합성, 경쟁력, 병해충 내성, 수명, 관리 용이성을 중시했다.
- 다계절 경관: 잎, 꽃, 씨방, 마른 꽃대와 겨울 형태까지 아름다운 식물을 선택했다.
- 휴먼스케일: 큰 교목보다 꽃·열매·형태가 돋보이는 소교목과 관목을 사용해 초본 경관을 보완했다.
- 현장 중심 설계: 완성된 배식도보다 현장에서 식물을 직접 배치하고 심는 방식을 중시했다.
스타일과 용어
뉴어메리칸 가든(New American Garden)
외메와 반 스웨덴의 정원에 언론과 고객이 붙인 명칭이다. 잔디·교목·상록관목 중심의 관행에서 벗어나 그라스와 숙근초가 계절에 따라 변화하는 자연주의 정원을 뜻한다. 미국 전역의 단일 양식이라기보다 미국 동부에서 두드러진 흐름으로 보는 것이 적절하다.
볼드 로맨틱 가든(Bold Romantic Garden)
외메와 반 스웨덴이 스스로 사용한 명칭. ‘볼드’는 큰 스케일과 덩어리로 인식되는 식물 배식 기법, 그리고 튼튼한 식물이라는 다각도의 의미를 함께 지닌다. ‘로맨틱’은 바람, 빛, 계절 변화가 만드는 자연스러운 분위기를 가리킨다.
모노타입·매트릭스 초원
외메가 직접 명명한 기법이라기보다 후대 연구자들이 그의 작품을 분석해 정리한 개념이다. 큰 구역마다 한 종 또는 한 품종을 반복해 초원 같은 연속성을 만들며, 키 크고 경쟁력 있는 식물을 중심으로 구성한다.
대표 작품
- 주택 정원: 볼머 정원(1962~2011, 메릴랜드 볼티모어), 로젠버그 정원(1981, 뉴욕 워터밀), 슬리프카 정원(1986, 뉴욕 사고포낙), 켄데일 팜(1998, 버지니아 챈스)
- 공공 정원 및 기념물: 연방준비은행 정원(1977, 워싱턴 D.C.), 독일-미국 우정의 정원(1983, 워싱턴 D.C.), 퍼싱 공원(1988, 워싱턴 D.C.), 록펠러 공원(1992, 뉴욕), 시카고 식물원(1997, 일리노이 글렌코), 국립 제2차 세계대전 기념비(1997, 워싱턴 D.C.), 포레스트 파크 파고다 서클(2004, 미주리 세인트루이스), 뉴욕 식물원(2011, 뉴욕 브롱스)
주요 저서 (제임스 반 스웨덴 공저)
- Bold Romantic Gardens: The New American Garden (1990)
- Gardening with Water: How James van Sweden and Wolfgang Oehme build and plant Fountains, swimming pools, Lily Ponds, water edges (1994)
- Gardening with Nature: How James van Sweden and Wolfgang Oehme Plant Slopes, Meadows, Outdoor Rooms and Garden Screens (1997)
영향과 평가
외메는 칼 푀르스터의 그라스·숙근초 정원과 다계절 경관 개념을 미국의 기후, 재료 수급 현황과 드넓은 경관 규모에 맞게 변형했다. 그의 작업은 그라스를 현대 조경의 핵심 식재 요소로 자리잡게 했으며, 자연주의 식재가 개인정원뿐 아니라 도시 공공공간에도 적용될 수 있음을 보여주었다. 1990년대 이후 그의 작업은 독일을 비롯한 유럽에 다시 소개되어 페트라 펠츠, 피트 아우돌프 등 후대 조경가들에게 영향을 주었다.
해석상의 유의점
외메의 정원은 미국 서분의 대평원, 프레리의 영향을 받았으나 직접 재현한 것으로 정의하기는 어렵다. 롱아일랜드 해안과 유럽 발트해 모래사구의 유사성, 그의 고향 풍경에 대한 기억도 디자인에 함께 녹아 들어 독창적인 세계를 구축했다.
‘모노타입’과 ‘매트릭스 초원’은 외메가 남긴 체계적 배식 이론이 아니라 후대의 작품 분석에서 도출된 해석이다.
뉴어메리칸 가든은 미국 전체를 지배한 양식이 아니라 외메와 반 스웨덴을 중심으로 미국 동부에서 발전한 흐름이라는 점을 구분할 필요가 있다.
참고 문헌
- Wolfgang Oehme, James van Sweden, Bold Romantic Gardens: The New American Garden, Harry N. Abrams, 1990.
- James van Sweden, Wolfgang Oehme, Gardening with Water: How James van Sweden and Wolfgang Oehme Build and Plant Fountains, Swimming Pools, Lily Ponds, Water Edges, Harry N. Abrams, 1994.
- James van Sweden, Wolfgang Oehme, Gardening with Nature: How James van Sweden and Wolfgang Oehme Plant Slopes, Meadows, Outdoor Rooms and Garden Screens, Harry N. Abrams, 1997.
- Stefan Leppert, Ornamental Grasses: Wolfgang Oehme and the New American Garden, Frances Lincoln Adult, 2009
- Petra Pelz, Ulrich Timm, Faszination Weite: Die modernen Gärten der Petra Pelz, Ulmer Verlag, 2013
©고정희의 서양 정원사 백과/볼프강 외매 202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