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슬람 정원
이슬람 정원(Islamic garden)은 이슬람교의 자연관과 낙원관을 토대로 이슬람 문화권에서 형성된 종교·문화적 정원 전통을 가리킨다. 서쪽의 이베리아반도와 북아프리카에서 중동·이란·중앙아시아를 거쳐 인도 아대륙에 이르는 넓은 지역에서 시대와 왕조, 기후에 따라 서로 다른 모습으로 전개되었다. 물, 그늘, 향기로운 식물, 과수, 경계로 둘러싸인 공간, 기하학적 질서 등이 자주 나타나지만, 이 가운데 어느 하나가 모든 이슬람 정원에 반드시 적용되는 고정된 양식은 아니다.
왜 이슬람 정원인가?
’이슬람 정원’이라는 명칭은 단순히 이슬람교도가 사는 지역에 만들어진 정원이라는 지리적 의미에 그치지 않는다. 이 정원 전통의 여러 갈래를 하나로 묶는 가장 중요한 공통 기반은 코란에 반복하여 나타나는 낙원 정원과 물, 그늘, 결실의 이미지이며, 자연을 창조주의 질서와 은총을 드러내는 표징으로 보는 이슬람적 세계관이다. 그러므로 이슬람 정원은 이슬람 문화권의 종교적 자연관이 공간으로 표현된 정원이라 할 수 있다.
그러나 이슬람 정원을 모스크에 딸린 정원이나 종교의식을 위한 시설로만 이해해서는 안 된다. 실제로는 궁정 정원, 주거의 중정, 묘원, 학문과 휴식의 공간, 도시의 공공 정원 등 다양한 형태로 조성되었다. 기독교의 수도원 정원이 특정 수도 공동체의 생활과 노동, 약초 재배 및 묵상을 위해 조성된 제도적 정원이라면, 이슬람 정원은 궁전에서 개인 주택과 묘원에 이르기까지 훨씬 넓은 영역에 적용된 종교·문화적 공간 전통이라는 점에서 다르다.
또한 이슬람 정원은 과거의 역사 양식에만 붙이는 명칭이 아니다. 코란의 낙원 이미지와 이슬람 미학을 현대적으로 해석한 정원들이 오늘날에도 이슬람권 안팎에서 계속 만들어지고 있다. 이 지속성이 시대와 지역이 다른 정원들을 ’이슬람 정원’이라는 하나의 범주로 논할 수 있게 한다.
성립과 전개
이슬람 정원은 7세기 이슬람의 전파와 함께 아무런 선례 없이 새로 탄생한 것이 아니다. 이슬람 세력이 사산조 페르시아를 정복한 뒤, 고대 페르시아의 궁원과 수로 기술, 담으로 둘러싸인 정원, 기하학적 구획 및 과수 재배의 전통을 받아들였다. 여기에 비잔틴과 로마, 메소포타미아, 이집트 및 각 지역의 농업·원예 지식이 더해졌다. 이렇게 계승된 정원은 코란의 낙원관을 통해 새롭게 해석되었고, 이슬람 세계의 확대와 함께 여러 대륙으로 전파되었다.
이 과정에서 페르시아 정원과 이슬람 정원은 서로 겹치지만 같은 개념은 아니다. 페르시아 정원은 이슬람 이전의 아케메네스 시대까지 거슬러 올라가는 이란 문화권의 정원 전통이다. 이슬람 정원은 그 유산을 중요한 토대로 받아들였으나, 안달루시아의 중정 정원, 마그레브의 리야드, 오스만 궁원의 정원, 중앙아시아와 무굴제국의 정원처럼 서로 다른 지역 전통을 포함하는 더 넓은 범주이다.
주요 전개 양상은 다음과 같다.
- 서아시아와 이란: 페르시아 정원의 수리 기술과 기하학적 질서가 이슬람 시대에도 이어졌다. 사파비 왕조의 이스파한에서는 정원이 궁전·대로·광장과 결합하여 도시 구조의 일부가 되었다.
- 알안달루스와 마그레브: 코르도바의 메디나 아자하라, 그라나다의 알람브라와 헤네랄리페 등에서 건축과 정원이 긴밀하게 결합한 중정 및 테라스 정원이 발달했다. 물은 공간의 축을 만들고 빛과 건축을 반사하며, 소리와 냉각 효과를 제공했다.
- 중앙아시아: 사마르칸트와 헤라트를 중심으로 궁원과 교외 정원이 발달했으며, 티무르 왕조의 정원 문화는 무굴제국으로 이어졌다.
- 인도 아대륙: 무굴 정원은 페르시아·중앙아시아의 전통을 인도의 기후와 지형에 맞게 변형했다. 바부르 정원, 후마윤 묘원, 라호르의 샬리마르 정원, 카슈미르의 계단식 정원과 타지마할 묘원이 대표적이다.
- 오스만 문화권: 지형과 조망을 중시하며 여러 파빌리온과 화원을 결합한 비교적 유연한 구성이 발달했다. 엄격한 사분 구획이 모든 오스만 정원의 일반형이었던 것은 아니다.

낙원의 표상
코란은 천국을 흔히 ’강물이 흐르는 정원들’로 묘사한다. 그곳에는 그늘과 샘, 풍성한 열매, 향기로운 음료와 평안이 약속된다. 사막과 반건조 지역에서 물과 녹음은 생존에 필수적이었으므로, 이러한 묘사는 신의 자비와 영원한 생명을 감각적으로 전달했다. 현세의 정원은 내세의 낙원 그 자체라기보다 그것을 기억하고 상상하게 하는 유비적 공간으로 이해되었다.
그렇다고 모든 이슬람 정원이 천국을 그대로 재현하려 했다고 단정할 수는 없다. 정원은 종교적 상징과 더불어 통치자의 권력, 영토의 질서, 부와 교양, 휴식과 연회, 사랑과 시, 식물 수집과 농업 실험을 드러내는 장소이기도 했다. 이슬람 정원의 특징은 종교성과 세속성이 서로 배제되지 않고 한 공간 안에서 긴장하며 공존한다는 데 있다.
공간구성과 감각적 요소
이슬람 정원은 지역에 따라 큰 차이를 보이지만 다음 요소들이 반복적으로 나타난다.
경계와 내부 세계
담이나 건축으로 둘러싸인 정원은 외부의 열기와 먼지, 소음을 차단하고 내부에 독립된 미기후를 만든다. 고대 페르시아어 파이리 다에자(pairi-daēza)는 ’둘러싸인 공간’을 뜻하며, 그리스어 파라데이소스(paradeisos)를 거쳐 오늘날 ’파라다이스’의 어원이 되었다. 다만 이 어원과 공간 원리는 이슬람보다 오래된 페르시아 전통에 속하며, 이후 이슬람 문화에서 낙원 이미지와 결합하였다.
물
물은 관개와 식수 공급, 냉각이라는 실용적 기능과 함께 시각·청각적 중심을 이룬다. 수로와 샘, 연못, 분수, 물 계단은 정원의 축과 구획을 정하고 건물·하늘·식물을 반사한다. 물을 다루는 능력은 통치력과 기술력의 표현이기도 했으나, 동시에 생명을 베푸는 신의 은총을 상기시키는 요소였다.
그늘과 식물
수목은 강한 햇빛을 막고 온도를 낮추며, 과수는 그늘과 열매를 함께 제공한다. 석류, 무화과, 포도, 대추야자, 감귤류 등은 지역과 시대에 따라 널리 재배되었다. 장미와 재스민을 비롯한 향기로운 식물은 색채뿐 아니라 향기로 정원을 경험하게 했다. 식재의 실제 구성은 기후, 물의 양, 이용 목적에 따라 달랐으며 오늘날 남아 있는 정원의 식재가 반드시 창건 당시의 모습을 그대로 전하는 것은 아니다.
기하학 축
직선 수로와 길, 대칭축, 반복되는 사각형은 자연을 억압한다기보다 물과 토지를 효율적으로 나누고 건축·식물·하늘을 하나의 질서로 묶는 장치였다. 그러나 비정형적 지형을 활용한 정원이나 여러 중정과 파빌리온이 느슨하게 결합한 정원도 많았다. 따라서 기하학적 대칭을 이슬람 정원의 유일한 기준으로 삼을 수는 없다.
차하르바그와의 관계
차하르바그(chahār bāgh, 차하르바그)는 페르시아어로 ’네 정원’을 뜻하며, 길이나 수로가 직사각형의 정원을 네 구획으로 나누는 구성 원리이다. 이 형식의 고고학적 선례는 이슬람 이전의 파사르가다에까지 거슬러 올라간다. 이슬람 시대에는 코란의 낙원 이미지와 결합하여 새롭게 해석되었으며, 특히 페르시아·중앙아시아·무굴 정원과 묘원에서 다양하게 발전하였다.
흔히 차하르바그의 네 수로를 코란 47장 15절에 언급된 물·젖·포도주·꿀의 강과 일대일로 대응시키지만, 코란이 특정 정원 평면을 규정한 것은 아니다. 또한 모든 이슬람 정원이 네 구획으로 이루어진 것도 아니다. 따라서 차하르바그는 이슬람 정원의 중요하고 영향력 있는 구성 원리이지만, 이슬람 정원 전체와 동일한 개념은 아니다.
묘원과 영원한 정원
이슬람 정원은 죽은 이를 위한 공간과도 결합했다. 특히 무굴제국에서는 묘를 차하르바그 안에 배치하여, 죽은 이의 안식처를 영원한 정원의 이미지와 연결했다. 델리의 후마윤 묘원과 아그라의 타지마할이 대표적이다. 그러나 묘원이 모든 이슬람 지역에서 같은 방식으로 발달한 것은 아니며, 왕조와 지역에 따라 묘와 정원의 관계도 달랐다.
현대의 이슬람 정원
현대의 이슬람 정원은 역사적 형태를 그대로 복제하기보다 물, 기하학, 향기, 그늘과 낙원이라는 주제를 새로운 장소와 식재 방식에 맞게 번역한다. 런던 킹스크로스의 젤리코 정원(Jellicoe Gardens, 2021)은 톰 스튜어트스미스가 이란의 바그에 핀에서 영감을 받아 설계한 차하르바그형 정원으로, 페르시아의 공간 원리와 영국식 자연주의 식재를 결합했다. 베를린 ’세계의 정원’의 오리엔트·이슬람 정원(Oriental-Islamic Garden, 2005)은 카멜 루아피가 설계한 ’네 강의 정원’으로, 높은 담과 기하학적 중정, 중앙의 샘과 수로를 통해 이슬람 정원의 전통을 현대적으로 재현한다. 두 정원은 각각 별도 엔트리에서 다룬다.
의의
이슬람 정원은 하나의 고정된 양식이 아니라, 이슬람의 종교적 자연관과 여러 지역의 정원·농업·수리 기술이 오랜 시간 결합해 형성된 복합적 전통이다. 이 정원에서 물과 녹음은 생존을 위한 자원이면서 낙원의 표상이고, 기하학은 토지와 물을 조직하는 기술이면서 우주의 질서를 암시한다. 또한 정원은 기도와 성찰의 장소인 동시에 휴식과 향락, 권력과 예술, 과학과 원예가 만나는 장소였다. 이러한 다층성과 오늘날까지 이어지는 창조적 지속성이 ’이슬람 정원’이라는 명칭의 근거가 된다.
관련 항목
- 페르시아 정원
- 차하르바그(사분원)
- 페르시아 정원
- 알람브라
- 헤네랄리페
- 무굴 정원
- 타지마할
- 젤리코 정원
- 베를린 오리엔트·이슬람 정원
참고문헌
- Ruggles, D. Fairchild (2008): Islamic Gardens and Landscapes. Philadelphia: University of Pennsylvania Press.
- Ruggles, D. Fairchild (2000): Gardens, Landscape, and Vision in the Palaces of Islamic Spain. University Park: Pennsylvania State University Press.
- Wescoat, James L., Jr.; Wolschke-Bulmahn, Joachim (eds.) (1996): Mughal Gardens: Sources, Places, Representations, and Prospects. Washington, D.C.: Dumbarton Oaks.
- Conan, Michel (ed.) (2007): Middle East Garden Traditions: Unity and Diversity. Washington, D.C.: Dumbarton Oaks.
- Stronach, David (1990): “Čahārbāḡ.” Encyclopaedia Iranica, Vol. IV, Fasc. 6, pp. 624–625. https://www.iranicaonline.org/articles/caharbag-lit/
- UNESCO World Heritage Centre: “The Persian Garden.” https://whc.unesco.org/en/list/1372/
- UNESCO World Heritage Centre: “Fort and Shalamar Gardens in Lahore.” https://whc.unesco.org/en/list/171/
- Aga Khan Centre: “Islamic Gardens at King’s Cross.” https://www.agakhancentre.org.uk/islamic-gardens-kings-cross/
- Gärten der Welt Berlin: “The Oriental-Islamic Garden.” https://www.gaertenderwelt.de/en/explore-the-world/themed-gardens/oriental-islamic-garden/
- 고정희, 《100장면으로 읽는 조경의 역사》, 한숲, 201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