페르시아 정원
페르시아 정원은 고대 페르시아에서 형성되어 이란과 서아시아, 중앙아시아 및 인도 아대륙의 정원문화에 지속적인 영향을 미친 정원 형식이다. 담장으로 둘러싸인 공간, 기하학적으로 배치된 수로와 정원 구획, 건축물과 식물의 유기적인 결합을 주요 특징으로 한다. 건조한 자연환경 속에서 물과 그늘, 식물을 이용해 독립된 내부세계를 조성했으며, 후대에는 지상의 낙원을 상징하는 공간으로 해석되었다.
페르시아 정원은 이슬람 정원의 중요한 원형이지만 그 기원은 이슬람교 성립 이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현재까지 확인된 가장 이른 사례 가운데 하나는 아케메네스 왕조의 키루스 2세가 기원전 6세기에 건설한 수도 파사르가다에의 왕실 정원이다.
기원
메소포타미아와 고대 서아시아에서는 일찍부터 담장으로 둘러싸인 왕실 정원과 수렵원이 조성되었다. 아시리아 왕들은 궁전 주변에 관개수로를 설치하고 나무와 포도나무, 외래식물을 심었으며, 동물을 풀어놓은 넓은 수렵원도 운영했다. 이러한 정원문화와 수리기술은 바빌로니아를 거쳐 페르시아로 전해졌다.
아케메네스 왕조를 창건한 키루스 2세는 이 전통을 바탕으로 파르스 지방에 새로운 수도 파사르가다에를 건설했다. 이곳에서는 궁전 건축이 정원을 부속공간으로 거느리는 대신, 넓은 정원 안에 전각과 파빌리온이 배치되었다. 석조수로가 정원과 건축물을 연결했고, 수로 사이에는 식물을 심은 구획이 조성되었던 것으로 추정된다.
파사르가다에의 왕실 정원
파사르가다에의 왕실 정원은 약 240×200미터 규모의 공간에 궁전과 파빌리온, 주랑, 수로와 연못을 배치한 복합체였다. 현재는 건물의 기단과 기둥, 석조수로 일부만 남아 있지만, 정원과 건축물이 하나의 통합된 공간으로 설계되었다는 사실을 확인할 수 있다.
이 정원은 흔히 차하르바그의 가장 이른 사례로 설명된다. 다만 발굴된 수로가 정원을 정확히 네 구역으로 나누었는지는 확실하지 않다. 실제로 확인된 수로는 정원을 두 개의 직사각형 구역으로 나누며, 네 부분으로 이루어진 정원이었다는 복원은 유적의 축선과 건축물 배치를 바탕으로 한 해석이다. 따라서 파사르가다에를 ‘최초의 차하르바그’라고 단정하기보다는 후대 차하르바그의 원형으로 해석되는 초기 왕실 정원이라고 설명하는 편이 안전하다.(메트로폴리탄 미술관)
차하르바그
차하르바그(chahār bāgh)는 페르시아어로 ‘네 개의 정원’을 뜻한다. 일반적으로 두 개의 길 또는 수로가 직각으로 교차하여 정원을 네 구역으로 나누는 공간 형식을 가리킨다. 네 구역은 다시 작은 단위로 분할될 수 있으며, 교차점에는 연못이나 분수, 파빌리온 또는 건축물이 배치되기도 한다.
차하르바그는 후대에 우주의 네 방향, 세계를 흐르는 네 강, 낙원의 질서와 연결되어 해석되었다. 그러나 그 기원을 코란에 묘사된 낙원의 네 강에서만 찾을 수는 없다. 차하르바그의 기본 원리는 이슬람교가 성립하기 이전의 페르시아 왕실 정원에서 이미 나타났기 때문이다.
파라다이스의 어원
‘파라다이스’라는 말은 고대 페르시아어 pairi-daēza(파이리다에자)에서 유래했다. pairi(파이리)는 ‘주위’ 또는 ‘둘레’를, daēza (다에자)는 ‘쌓다’ 또는 ‘벽’을 뜻하며, 본래는 담장으로 둘러싸인 공간이나 왕실 정원을 가리켰다.
그리스의 역사가 크세노폰은 페르시아 왕들의 정원과 수렵원을 설명하면서 이 말을 그리스어 paradeisos(파라데이소스)로 옮겼다. 이후 히브리 성서가 그리스어로 번역될 때 에덴의 정원을 가리키는 말로 paradeisos(파라데이소스)가 사용되었다. 이로써 본래 페르시아 왕실의 담장 안 정원을 뜻하던 말이 종교적인 낙원을 의미하게 되었다.
상징과 기능
페르시아 정원은 관상용 공간을 넘어 통치자의 거처와 알현, 연회와 휴식, 사냥과 과수 재배를 위한 장소였다. 동시에 건조한 자연환경 속에서 물과 식물을 질서 있게 배치함으로써 통치자가 자연과 영토를 다스리는 능력을 드러내는 정치적 공간이기도 했다.
담장은 외부의 열기와 모래바람을 차단했고, 수로와 연못은 관개와 냉각 기능을 담당했다. 나무는 그늘과 열매를 제공했으며, 정원 안에 외부와 구별되는 미기후를 형성했다. 이처럼 물과 그늘, 식물이 결합한 내부세계는 점차 풍요와 평화, 이상적인 통치질서와 낙원의 상징으로 발전했다.
이슬람 정원에 미친 영향
7세기 이후 페르시아가 이슬람 문화권에 편입되면서 페르시아 정원의 공간 구성과 수리기술은 이슬람의 낙원 개념과 결합했다. 차하르바그의 기하학적 질서, 담장으로 둘러싸인 내부 공간, 축선 위의 수로와 연못은 서아시아와 중앙아시아, 안달루시아와 인도에까지 전파되었다.
특히 티무르 왕조와 무굴제국은 페르시아 정원의 전통을 적극적으로 계승했다. 무굴 정원에서는 차하르바그가 궁정 정원뿐 아니라 묘원에도 적용되었으며, 후마윤 묘와 타지마할 같은 대표적인 묘원식 정원으로 발전했다.
세계유산
유네스코는 2011년 파사르가다에 정원을 비롯하여 이란 각지의 정원 아홉 곳을 ‘페르시아 정원’이라는 하나의 연속유산으로 세계유산에 등재했다. 유네스코는 차하르바그의 공간 원리, 정교한 물 관리 체계, 건축과 식물의 결합, 건조한 기후에 대한 적응을 페르시아 정원의 주요 가치로 평가했다.(유네스코 세계유산센터)
같이 보기
- 파라다이스 정원
- 차하르바그
- 파사르가다에
- 키루스 2세
- 이슬람 정원
- 무굴 정원
- 카나트
©고정희의 서양 정원사 백과/페르시아 정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