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양 정원사의 시대 구분

서양 정원사(西洋庭園史)는 고대로부터 현재에 이르기까지 정원을 만들고 이용해 온 역사이다. 시대에 따라 정원의 형태만 달라진 것이 아니라 정원을 소유하고 이용하는 사람, 정원을 만들고 관리하는 사람, 그들을 교육하는 방법도 함께 변해 왔다.

서양 정원사의 시대는 일반적으로 고대, 중세, 르네상스, 바로크, 풍경식 정원의 시대 등으로 구분하여 살펴볼 수 있다. 그러나 이러한 구분은 절대적이지 않다. 새로운 정원 양식과 사상은 유럽의 각 지역에서 서로 다른 시기에 등장했으며 이전 시대의 전통과 오랫동안 공존했다.

특히 19세기 이후에는 하나의 지배적인 정원 양식만으로 시대를 설명하기 어려워진다. 하나의 양식이 주도하는 것이 아니라 다원적으로 전개되기 시작했다. 19세기 산업화와 도시화에 대응하여 공공공원·도시 녹지·공원 체계가 조성되고, 설계·시공·관리·계획을 통합하는 전문직이 형성되면서 정원예술은 근대 조경으로 확장되었다. 한국에서 ‘조경’은 식물·토목 재료·물·조형물을 활용해 생활 공간을 조성하는 기술로 정의되며, 학문·제도·산업의 체계를 갖춘 현대 조경의 출발을 이해하는 데 이 근대적 전환은 특히 중요하다.

따라서 이 글에서는 19세기 이후를 특정 양식으로 규정하지 않고 19세기, 20세기 전반, 20세기 후반부터 현재까지로 나누어 살펴본다.

시대 구분

시대대략적인 시기주요 특징
고대고대 문명 ~ 5세기이집트·메소포타미아·로마의 정원문화
중세약 5~15세기수도원·성곽·궁정 정원, 실용과 종교적 상징
르네상스15~16세기고대 문화의 재발견, 이탈리아 빌라 정원, 건축과 정원의 통합
바로크17세기 ~ 18세기 전반궁정문화, 기하학적 구성, 축과 원근법, 대규모 정원
풍경식 정원의 시대18세기영국 풍경식 정원, 새로운 자연관과 미학
19세기1800년대산업화와 도시화, 공공공원과 도시녹지, 식물수집과 원예의 발달
20세기 전반1900년경 ~ 1945/50년경정원개혁, 모더니즘, 주거녹지와 사회적 과제, 전문직·전문교육의 발달
20세기 후반 ~ 현재1950년경 ~ 현재조경의 영역 확대, 생태·환경·도시·경관·기후 문제로 과제 확대

*시대의 경계는 지역에 따라 다르며 위의 연대는 정원사의 흐름을 이해하기 위한 대략적인 기준이다.

고대

서양 정원의 역사는 고대 이집트와 메소포타미아까지 거슬러 올라간다. 메소포타미아에서는 뛰어난 관개 기술을 바탕으로 물과 그늘, 과수와 유용식물을 기르며 파라다이스, 낙원의 개념이 발행했고 이는 서양 문화 전반에 걸쳐 깊은 영향을 남기게 된다. 정원은 생활공간인 동시에 종교와 권력을 표현하는 장소이기도 했다. 특히 이집트 정원은 파라오들의 장제전 조경. 신전 조경과 더불어 사후 세계의 정원을 설계한 매두 독특한 문화를 형성했다.

그리스에서는 성역과 김나시온, 아카데미 등의 녹지공간이 발달했으며 로마에서는 주택의 중정과 페리스타일 정원, 교외 빌라와 황제의 대규모 정원 등 다양한 정원 유형이 발달했다. 또한 도시 외곽에 그린벨트를 조성한 것이 큰 특징이다. 로마의 정원문화와 원예 기술은 이후 유럽 정원사에 중요한 유산을 남겼다.

→ 관련 항목: 고대 이집트 정원 / 메소포타미아 정원 / 고대 그리스 정원 / 로마 정원

중세

서로마 제국의 붕괴 이후 유럽의 정치·사회구조가 변화하면서 정원의 성격도 달라졌다. 수도원에서는 약초와 채소, 과수를 재배했으며 성곽과 궁정 주변에는 실용적인 정원뿐 아니라 휴식과 유희를 위한 정원도 조성되었다. 따라서 중세를 고대 정원문화가 사라졌다가 르네상스에 다시 등장하기까지의 단순한 공백기로 보기는 어렵다.

유럽 대륙에서는 수도원을 중심으로 원예기술과 식물지식이 계승되었다. 한편 이 시기에 오리엔트와 알 안달루스 지방에서는 이슬람 정원 문화가 꽃을 피우고 확산되었다.

→ 관련 항목: 중세 정원 / 수도원 정원 / 이슬람 정원

르네상스

15세기 무렵 이탈리아를 중심으로 고대 그리스·로마 문화에 대한 관심이 되살아나면서 정원에도 새로운 공간관이 나타났다. 건축과 정원을 하나의 구성으로 보고 테라스와 계단, 축, 조각과 수경시설을 체계적으로 배치한 빌라 정원이 발달했다. 이는 이 시기의 정원이 빌라가 집중적으로 조성되었던 토스카나의 산간 지방에서 시작되었다는 사실과 관련이 깊다.

정원은 휴식의 장소인 동시에 소유자의 지식과 교양, 권력과 세계관을 표현하는 공간이 되었다. 또한 고대 그리스와 로마의 뛰어난 조형물이 대거 발견되었던 시기였으므로 이 조형물을 야외에 배치할 공간이 필요했다. 이탈리아에서 발전한 새로운 조각 정원문화는 이후 프랑스를 거쳐 유럽 대륙의 여러 지역으로 전파되었다.

→ 관련 항목: 르네상스 정원 / 이탈리아 빌라 정원

바로크

17세기에는 절대왕정과 궁정문화의 발전과 함께 대규모 바로크 정원이 등장했다. 르네상스 정원 유형에 기본을 두고 궁전을 중심으로 길게 뻗은 축과 원근법, 좌우대칭, 기하학적인 화단, 보스케와 수경시설 등이 광대한 공간으로 확대되었다. 바로크 정원은 왕권을 과시하기 위한 바르코 도시 설계의 한 구성요소로 볼 수 있다.

프랑스의 베르사유는 이를 대표하는 사례이며 프랑스에서 발전한 이 정원 형식은 독일을 비롯한 유럽 각지에 큰 영향을 미쳤다.

→ 관련 항목: 바로크 도시 / 바로크 정원 / 프랑스 기하학 정원

풍경식 정원의 시대

18세기 영국에서 바로크의 정원이 상징하는 상징하는 절대 군주국가의 이념을 극복하고 새로운 계몽주의적 세계관을 정원으로 묘사하는 풍경식 정원이 나타났다. 기존 방목지로 형성된 경관을 십분 활요하고 풍경화에서 영감을 받았다. 넓은 잔디밭, 자연스럽게 굽은 호수, 수림과 독립수, 멀리 이어지는 조망을 이용하여 자연 풍경처럼 보이는 공간을 만들었다.

풍경식 정원은 자연을 인식하고 바라보는 철학과 미학의 변화가 정원에 반영된 것이었다. 18세기 후반 이후 이러한 정원관은 유럽 대륙에도 널리 확산되었다.

→ 관련 항목: 영국 풍경식 정원 / 픽처레스크

19세기 ― 정원이 도시로 나오다

산업혁명과 급격한 도시화는 정원사에 중요한 전환을 가져왔다. 정원은 더 이상 왕실과 귀족의 사유지만의 문제가 아니었다. 새롭게 부상한 부유한 시민 계급도 귀족 못지 않은 정원을 소유하고자 했다. 한편 일반 시민과 근로 계층을 위한 공공공원과 산책로, 가로수와 도시녹지가 도시생활의 중요한 요소로 등장했다.

동시에 세계 각지의 식물이 유럽으로 유입되면서 식물수집과 원예산업이 크게 성장했고, 과거의 여러 정원양식을 다시 사용하는 역사주의와 절충주의도 나타났다.

무엇보다 중요한 변화는 정원을 만드는 일이 개인 소유지의 경계를 넘어 도시의 공공공간을 다루는 과제로 확대되기 시작했다는 점이다.

정원사 교육의 전문화

정원의 변화는 정원을 만드는 전문 직업의 변화와도 밀접하게 연결되어 있다. 오랫동안 원예와 정원조성에 필요한 기술은 장인적 전통과 도제교육을 통해 전승되었다. 궁정문화의 발달과 함께 전문 궁정정원사가 등장했으며 정원사 가문을 통해 여러 세대에 걸쳐 기술과 지식이 이어지는 경우도 있었다.

18~19세기에 식물학과 원예학, 정원설계에 필요한 지식이 증가하면서 정원사를 체계적으로 교육하는 전문기관이 설립되었으며 20세기 초에 접어들며 대학 수준의 학문과 디자인 분야로 자리잡기 시작했다.

→ 관련 항목: 정원사 교육의 역사

20세기 전반 ― 자연 정원 움직임과 조경으로의 확장

19세기 말부터 20세기 전반에 걸쳐 서양 정원은 크게 두 갈래의 흐름 속에서 전개되었다.

하나는 도시·지역·공공공간을 대상으로 하는 현대 조경의 발전이며, 다른 하나는 식물의 생태와 계절 변화, 식재의 미학을 중심에 놓은 자연주의 정원 운동의 시작이다. 전자가 공원·광장·주거지·교통 기반시설·수변과 폐산업지 등 공공 경관의 계획과 설계를 확장했다면, 후자는 정원을 식물의 생애와 군집, 시간의 변화가 드러나는 장소로 재정의하였다.

→ 관련 항목: 정원에서 조경으로 / 조경가라는 직업의 탄생 / 조경학 교육의 역사

20세기 후반부터 현재까지 ― 조경의 영역 확대

20세기 조경은 모더니즘의 영향 아래 기하학적 평면, 추상적 공간 구성, 새로운 재료와 공법, 옥상정원, 주거단지 외부공간, 도시 광장, 캠퍼스와 기업 부지 등으로 영역을 확대하였다. 정원과 조경은 도시 생활의 기반시설이자 예술·휴식·보행·집회·놀이가 만나는 공공 공간이 되었다.

자연주의 정원의 계승

자연주의 정원 운동의 중요한 출발점은 19세기 후반 윌리엄 로빈슨의 와일드 가든(Wild Garden) 사상에서 찾을 수 있다. 로빈슨은 기하학적으로 배열된 온실식물과 일년초 중심의 빅토리아 시대 화단에 반대하고, 강건한 다년생 식물과 자생·귀화식물, 초지·숲·수변의 식물군락을 장소의 생육 조건에 맞게 식재할 것을 주장하였다. 그의 『와일드 가든』은 1870년에 처음 출간되었으며, 자연주의 식재와 생태적 정원 설계의 선구적 저작으로 평가된다.

20세기 후반에는 독일과 네덜란드에서 다년초와 그라스류를 중심으로 한 자연주의 식재가 새롭게 발전하였다. 이 흐름은 1980년대 이후 네덜란드의 ‘더치 웨이브’와 ‘뉴 퍼레니얼’ 운동으로 이어졌으며, 초지와 프레리, 습지 및 수변 등 서식처의 식물군락에서 착안하여, 다년생 초본과 그라스류를 정원의 새로운 주인공으로 부상시키며 다양한 식재 기법을 발전시키고 있다.

21세기의 정원

21세기 초의 자연주의 식재의 부상과 함께 정원 붐이 시작되었다. 정원은 소유와 장식의 대상이라기보다, 기후위기와 생물다양성 감소, 도시의 열섬과 빗물 관리, 식량·돌봄·지역공동체의 문제에 대응하는 일상적 경관으로 다시 주목받았다. 자연주의 정원은 야생을 모방하는 것이 아니라 식물의 생육 조건과 군집 관계, 토양·수분·광량, 관리 방식과 계절적 변화를 설계의 출발점으로 삼는 접근이다. 이 흐름은 현대 조경과 대립하지 않는다. 오히려 공공공원, 도시 재생지, 수변 공간, 옥상과 학교 정원, 공동체 정원에서 자연주의 식재는 현대 조경의 공간계획·기술·공공성과 결합해 왔다. 최근의 생태적 경관 설계는 토양과 물순환, 자생식물, 서식처 및 장기적 관리 과정을 함께 고려하는 방향으로 발전하고 있다.

시대 구분에 대하여

서양 정원사의 시대 구분은 역사를 이해하기 위한 편의적인 틀이다. 어느 날 중세가 끝나고 다음 날 르네상스가 시작된 것은 아니다. 이탈리아에서 르네상스 정원이 발달하던 시기에도 다른 지역에서는 중세적 전통이 지속되었으며, 풍경식 정원이 확산된 뒤에도 기하학적 정원은 계속 만들어졌다.

또한 서양 정원사의 전개는 유럽 내부에서만 이루어진 것이 아니다. 고대 근동으로부터 이어진 전통, 이슬람 문화권과의 교류, 아시아 정원에 대한 유럽의 관심, 식민주의와 세계적인 식물이동 등이 서양의 정원문화를 변화시켰다.

따라서 시대구분은 서로 단절된 양식의 목록이라기보다 자연을 바라보는 관점, 사회구조, 공간의 이용방식, 정원을 만드는 직업과 교육체계가 변화해 온 과정으로 이해하는 것이 적절하다.

참고문헌

  • Gothein, Marie Luise, Geschichte der Gartenkunst, 2 Bde., Jena: Eugen Diederichs, 1914/1928. 이 저서는 오늘날에도 정원사학의 고전으로 다뤄진다.
  • Hobhouse, Penelope, Plants in Garden History, London: Pavilion Books, 1992.
  • Hobhouse, Penelope, Gardening Through the Ages: An Illustrated History of Plants and Their Influence on Garden Styles, New York: Simon & Schuster, 1992.
  • Jellicoe, Geoffrey & Susan Jellicoe, The Landscape of Man: Shaping the Environment from Prehistory to the Present Day, London: Thames & Hudson.
  • Thacker, Christopher, The History of Gardens, Berkeley: University of California Press, 1979
  • Turner, Tom, European Gardens: History, Philosophy and Design, London/New York: Routledge, 2011.
  • 고정희, 『100장면으로 읽는 조경의 역사』, 한숲, 2018.

©고정희의 서양정원사 백과/서양 정원사의 시대 구분 20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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