망명정원 Garden of Exile
망명정원(독일어: Garten des Exils, 영어: Garden of Exile)은 독일 베를린 유대인 박물관 외부에 조성된 공간으로 일반적인 정원이라기보다는 설치 예술에 가깝다. 건축가 다니엘 리베스킨트(Daniel Libeskind)가 설계했으며, 박물관 지하의 세 축 가운데 망명의 축(Achse des Exils) 끝에 위치한다. 이 정원은 나치의 박해 아래 독일을 떠나야 했던 유대인 이주자들의 망명 경험을 상징한다. 관람자는 보행과 균형 감각의 흔들림을 통해 간접적으로 체험하게 된다.[1]
명칭
‘망명정원’은 독일어 원명 Garten des Exils를 옮긴 표현이다. 독일어 Exil은 추방(Vertreibung)이라는 행위 자체보다, 그 결과 고향 밖의 낯선 곳에서 살아가게 된 상태를 가리킨다. 여기에는 상실감, 이질감, 단절, 귀환의 불확실성이 포함된다. 박물관의 설명에 따르면 Exil의 어원은 라틴어 exilium, 즉 ‘낯선 곳에 머무름’을 뜻한다. 또한 박해와 위협 때문에 안전한 외국으로 피신해야 하는 상황을 핵심 맥락으로 제시한다.[2]
한국어로는 ‘추방의 정원’이라고도 번역될 수 있다. 그러나 ‘추방’이 누가 누구를 내쫓았는가라는 폭력과 배제의 사건을 강조한다면, ‘망명’은 그 이후 타지에서 지속되는 삶의 조건을 더 잘 드러낸다. 이 항목에서는 리베스킨트가 선택한 Exil의 의미를 살려 ‘망명정원’이라 부른다.
구성
정원은 기울어진 평면 위에 7×7 격자로 배치된 49개의 콘크리트 기둥으로 이루어진다. 48개 기둥에는 베를린의 흙이, 중앙의 49번째 기둥에는 예루살렘의 흙이 채워졌다. 각 기둥의 꼭대기에서는 좁은잎보리수나무 (Eleagnus angustifolia)가 자라며, 박물관은 이를 희망의 상징으로 설명한다.[1]
그러나 식물은 관람자의 손이 닿지 않는 높이에 있고, 경사진 바닥은 보행자의 평형감각을 흔든다. 리베스킨트는 이러한 공간 경험을 통해 독일에서 추방된 이주자들이 겪었던 방향 상실과 기반 없는 불안한 상황을 환기하고자 했다.[1]
베를린과의 관계
망명정원이 베를린에 있다는 사실은 이 공간의 중요한 긴장감을 부여한다. 이 정원은 독일을 떠나야 했던 유대인의 망명을 기억하지만, 그 기억의 장소는 바로 망명이 시작된 곳이자 유대인의 삶을 배제하고 파괴했던 도시 안에 놓여 있다.다시 말해, 망명의 원인이 된 장소는 그 부재의 기억을 도시 내부에 되돌려 놓은 셈이다.
따라서 이 정원은 안전한 피난처나 화해의 정원을 재현하지 않는다. 관람자는 베를린의 토양 위에 서 있지만 기울어진 지면 때문에 안정적으로 걷기 어렵고, 식물은 보이지만 닿을 수 없으며, 기둥과 주변 벽은 시야를 제한한다. 이 공간은 귀환을 완성하는 장소가 아니라, 베를린이 강요했던 떠남과 그 이후 지속되었던 망명의 감각을 베를린 안에서 다시 드러내는 장소로 읽을 수 있다. 망명의 축이 리베스킨트관 바깥의 이 정원으로 이어진다는 점도 이러한 해석을 뒷받침한다.[1]
주변 조경
49개 기둥과 경사진 평면은 리베스킨트의 설계에 속하며, 내부의 축이 외부로 이어진다. 반면 주변의 외부 조경은 베를린 조경가 Cornelia Müller, Elmar Knippschild, Jan Wehberg가 실현한 별도의 작업으로, 건축의 형식 언어를 외부 공간으로 확장한다.[3]
망명정원 주변에는 장미 수풀(Rosenhain)이 조성되어 있다. 이는 예루살렘에서 역사적으로 장미가 의례에서 허용된 드문 식물 가운데 하나였다는 사실을 환기한다. 따라서 접근 불가능한 높이에서 자라는 기둥 위의 좁은잎보리수나무와 지면에 펼쳐진 장미 수풀은 희망, 기억, 예루살렘이라는 서로 다른 상징적 층위를 이룬다.
인접 공간의 지면 부조는 지젤 첼란레스트랑주 (Gisèle Celan-Lestrange)의 드로잉을 바탕으로 하여 조성되었다. 지젤 첼란레스트랑주는 1970년 스스로 목숨을 끊은 유대 시인 파울 첼란의 아내다 .[3]
의미
망명정원은 전통적인 휴식과 보호의 장소로서의 정원을 전복한다. 식물은 위안을 제공하기보다 멀리 있는 희망으로 나타나고, 지형은 든든한 배경이 아니라 신체의 안정성을 무너뜨리는 기억의 매체가 된다. 이로써 망명정원은 유대인의 장기적인 망명과 디아스포라의 역사라는 넓은 배경 속에서, 특히 20세기 독일에서 강요된 이주와 망명의 경험을 공간적으로 압축한다.[2][1]
참고 자료
[1] 유대인 박물관 베를린, Libeskind Building https://www.jmberlin.de/libeskind-bau
[2] 유대인 박물관 베를린, Thema Exil https://www.jmberlin.de/thema-exil
[3] 유대인 박물관 베를린, Our Museum Gardens https://www.jmberlin.de/unsere-museumsgaerten




©고정희의 서양정원사 백과/망명정원/베를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