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이스터 하우스 – 데사우

데사우 바우하우스 본관 근처에 지은 교수 주택. 데사우 시에서 지어주었고 건설계는 바우하우스 초대 교장 발터 그로피우스가 맡았다.

1926년 발터 그로피우스가 바우하우스 본관을 설계할 때  교수 주택도 함께 설계했고 동시에 준공되어 1926년 8월 1일에 교수(마이스터)들이 입주했다. 관사는 모두 4채인데 교장 그로피우스 관사만 독채로 지었고 나머지 3채는 아틀리에가 포함된 더블하우스로서 두 세대가 살도록 설계했다. 1932년에 폐교될 때까지 레스로 모홀리 나기라이오넬 화이닝거가 한집에서 살고, 게오르그 무헤오스카 슐렘머, 바실리 칸딘스키파울 클레가 각각 한집에서 살았다.

위치


학교 캠퍼스 내에 짓지 않고  약 550미터 떨어진 곳에 있는 소나무 숲속에 자리 잡았다. 대개는 그로피우스가 위치도 선택했다고 알려졌으나 이에 대해 두 가지 설이 있다. 집터를 찾기 위해 데싸우 시의 건설 국장과 발터 그로피우스 부부, 칸딘스키 부부, 게오르그 무헤 교수의 아내 등이 함께 데싸우 시내를 돌아다녔다고 한다. 이때 칸딘스키의 아내 니나 칸딘스키가 소나무 숲이 너무 마음에 들어 건설 국장에게 소나무 숲을 달라고 요구했다는 설이 있다. 한편 그로피우스 자신이 <내 평생 소원이 소나무 숲속에서 사는 거였다. 바로 여기다 짓겠다>고 했다는 설이 나란히 존재한다.

조경 – 소나무 정원


조경 콘셉트는 단적으로 완벽한 미니멀리즘이라 할 수 있다. 소나무 숲의 매력을 십분 활용하여 소나무를 제외한 일체의 식물을 배제했다. 집 앞에 사각형의 잔디밭을 조성한 것이 전부다. 잔디밭 위에 드물게 소나무를 세워 두어 소나무의 길고 검은 기둥과 백색 입방체의 건축 미학을 첨예하게 대비시켰다.

길은 모두 직선으로 냈고 쌓였던 부식토를 퍼낸 후 모래만 깔았다. <자연을 될수록 손대지 않은 상태로 두고 건축의 철저한 인공 미학과 만나게 한다.>는 것이 그로피우스의 정원 개념이었다. 소나무로만 이루어진 정원을 고수하고 – 소나무 정원이라 불렀다 – 다른 정원 요소는 일체 배제했다.  당시의 조경 도면이 전해지지 않지만 건축 설계도, 여러 문서와 사진 자료를 분석하고 정원 고고학 발굴을 통해 얻어진 결론이다.

그로피우스는 실제로 창틀에 선인장 화분을 나란히 정렬해 놓은 이외 일절 정원을 가꾸지 않았지만(시간이 없었다고), 칸딘스키 부부는 집뒤의 작은 면적을 할애하여 장미, 아욱 등을 심어 길렀다. 아늑한 정원은 가질 수 없었으나  숲속 마이스터 하우스의 특별한 운치는 부정할 수 없다.

건축


조립식 건물

마이스터 하우스에서 조립식 건설 방식을 시도했다. 이를 통해 그로피우스는 합리적, 효율적 축조법을 더욱 발전시키고자 했다. 건축 설계 뿐 아니라 건설 과정 자체를 산업화하는 방식이었다. 당시 기술로는 백 퍼센트 구현이 어려워 일부만 구현되었다.

크기가 다른 입방체를 서로 요철 방식으로 맞물리게 하는 원칙을 고안하여 독특한 건축양식이 탄생했다. 도로 쪽으로는 유리창 면적이 넓은 아틀리에를 배치하고 측면으로는 긴 밴드 형태로 창문을 배치하여 계단실에 빛이 넘치도록 배려했다. 교장 관사만은 창문 배열이 좌우 대칭이 아니다. 표면은 백색으로 칠했고 넓은 테라스와 발코니를 붙였다. 창틀, 발코니 하단의 벽, 계단 난간 등에만 색을 주어 엑센트를 주었다.

세입자들 – who’s who

발터 그로피우스, 라슬로 모홀리 나지 주택의 가구는 마르셀 브로이어가 모두 만들어 주었다. 붙박이 장과 모던한 살림 도구들이 설치되어 있었지만 다른 마이스터들은 자신이 쓰던 가재도구를 가지고 입주했다고 한다. 여기서 살던 입주자들 명단은 who’s who에나 실릴 법하다. 라슬로 모홀리 나지, 라이오닐 파이닝거, 게오르그 무헤, 오스카 슐렘머, 바실리 칸딘스키 그리고 파울 클레가 가족과 함께 살았다. 후일에 한네스 마이어와 미스 판 데어 로에, 요제프 알버르스Josef Albers 등이 살았다. 실내 색채 디자인은 파울 클레와 칸딘스키의 작품이다.

전쟁의 여파

1932년 폐교하고 당시 교장이었던 미스 판 데어 로에가 학생들을 인솔하여 베를린으로 이주하게 된다. 그 뒤 마이스터 하우스는 임대 주택이 되었다. 교장 관사는 곧 다시 재건했으나 순전히 전후 피해를 복구하는 수준이었다. 전쟁 때 크게 파괴된 일부 주택은 전후 세입자가 전통 가옥 방식으로 다시 지어 원형을 거의 알아볼 수 없는 상태였다.1992년에 비로소 최초의 복원 작업이 시작되었다.  특히 칸딘스키와 클레가 살았던 주택에 본래 색이 복원되어 큰 인기를 끌었다.

복원


2018년 칸딘스키/클레하우스 2차 복원

칸딘스키/클레 하우스가 다시 복원되었다. 1992년에 복원된 뒤 수십만 명의 방문객이 다녀가고 전시회와 각종 행사를 치렀기 때문에 보수가 필요해 졌다. 보험회사 뷔스텐로트 재단에서 프로젝트를 완전히 떠맡았으며 건축가 빈프리드 브렌네에게 복원 설계와 공사를 의뢰했다. 뷔스텐로트 재단은 이미 1998-2002년 무헤와 슐렘머 하우스의 복원을 지원한 바 있다.  2019년 바우하우스 백 주년을 맞아 말끔히 새 단장한 상태로 방문객을 맞았다.

정원 복원

2000년부터 마이스터 하우스의 조경도 복원을 시작하여 2014년에 끝났다. 이를 위해 우선 정원 문화재 관리를 위한 콘셉트부터 수립되었다. 처음부터 정원이 부재했으므로 복원이랄 것도 크게 없었다. 관건은 수직으로 서로 교차하는 길 시스템의 복원과 소나무 숲 정돈이 전부였다. 복원 전의 상태를 보면 전쟁으로 파괴된 뒤 완전히 변형된 주택들과 그동안 식물이 우거져 본래 의도했던 선명한 대비 효과, – 백색 입방체와 소나무의 검은 수직 기둥 – 가 완전히 사라지고 없었다. 숲 정리가 간단하지는 않았을 것이다. 일부 늙은 소나무를 제거하고 어린 소나무로 대체했으며 가지가 지나치게 뻗어나간 나무들은 그 가지를 정리했다. 시간이 흐르면 다시 자라 그림을 변하게 할 것이므로 몇 년 터울로 가지를 잘라줄 예정이다.

정원 관람: 바우하우스 일반 오프닝 시간에 함께 견학이 가능하다. 중앙역에서 도보로 15분 거리이며 버스도 운행된다. 물론 방문객 주차장이 준비되어 있다.

데사우 마이스터하우스 단지 조경 복원도. 설계: Uwe Merz

 

마이스터 하우스 배치

데사우 마이스터 하우스 배치도. 출처: © BAUHAUS 100

왼쪽 아래로부터:

  1. 그로피우스
  2. 모홀리-나지/화이닝거
  3. 무헤/슐렘머
  4. 칸딘스키/클레

마이스터하우스. 그로피우스, Photo: © Tillmann Franzen, tillmannfranzen.com © VG Bild-Kunst, Bonn 2018

 

마이스터하우스, 모홀리-나지. Photo: © Tillmann Franzen, tillmannfranzen.com © VG Bild-Kunst, Bonn 2018

 

마이스터하우스, 무헤/슐렘머, Photo: © Tillmann Franzen, tillmannfranzen.com © VG Bild-Kunst, Bonn 2018

 

참고문헌


  • Dorothea Fischer-Leonhardt, Die Gärten des Bauhauses, Gestaltungskonzept der Moderne, 2. Aufl. Jovis Verlag 2009

 

Links

 

© 서양정원사 백과/바우하우스/마이스터 하우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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