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슬람 정원의 식물

이슬람정원에서 자라던 식물이라고 해서  근본적으로는 지금의 식물상과 크게 다르지 않다. 덥고 건조한 지역에서 자라는 식물들이지만 그 사이 전 세계로 퍼져나가 현지 적응에 성공하여 사실상 어디서나 어렵지 않게 만날 수 있기 때문이다.

이슬람 정원에서 자라고 있던 식물의 종류를 아는 것보다 더 흥미로운 것은 그들의 식물관(觀)이다. 자연의 모든 요소가 신의 창조물이며 신의 증거이라고 믿는 사람들이었기에 그들의 자연관은 종교와 직결되어 있다. 그 중에서도 식물과는 특별한 관계를 가졌다. 식물의 치료 기능, 먹을 수 있다는 식용성과 더불어 식물의 형태와 색과 향기, 아름다움과 다양성 등을 면밀히 파악하여 식물학을 독특한 경지에 올려놓았다. 또한 같은 신의 피조물로서 식물과 사람을 늘 비교했다는 특징이 있다. 이는 특히 문학에서 잘 드러난다. 여기서 시간이 흐르며 복잡한 식물 상징 체계, 즉 식물 코드라 할 수 있는 것이 형성되었다. 우리가 알고 있는 꽃말이 바로 이슬람의 식물 코드에서 비롯된 것이다.

한편 통치자들에겐 자신들이 얼마나 많은 식물들을 도입하고 재배했는가라는 사실을 자랑하는 것이 정복전쟁에서의 승리나 통치력을 자랑하는 것만큼 중요한 일이었다. 사마르칸트의 티무르 왕이나 무굴제국의 바부르 왕, 악바르 왕등은 모두 잔인한 정복자였으면서 동시에 식물 수집과 정원 조성에 열을 올린 인물들이었다. 이런 사실이 하등의 모순이 아닌 것이 정복한 곳에 정원, 즉 내세의 낙원을 재현해 놓음으로써 비로소 그곳이 이슬람의 영토가 된다는, 다분히 상징적인 의미가 있었다. 제왕들의 입장에서 보면 화려한 정원의 정당성이 성립되었던 것이다.

특히 무굴제국의 왕들은 아주 먼 곳으로부터 다채로운 유실수를 도입하여 자신들의 정원에 심었다. 악바르 황제(1556~1605)는 중앙아시아의 사마르칸트에서 사과나무를 들여다 심었는데 기후 조건이 달라서 일 년에 9개월은 집중적으로 관수를 해야 했음에도 마다하지 않았다. 그의 선조 후마윤 황제(1530~1540, 1556)는 북쪽의 카슈미르 지방에 심어 놓은 오렌지나무 정원들을 시찰하기 위해 해마다 먼 길을 다녀오곤 했다. 왕들의 정원과 식물 집착이 어느 정도였는지는 자한기르 황제(1605~1627)가 자랑스러운 어조로 기록한 유실수 목록을 보면 알 수 있습니다.

“내 아버지 이전 시대에는 체리가 없었다. 내 신하가 카불에서 가지고 와 심었는데 지금은 열다섯 주로 늘어 해마다 열매를 맺는다. 예전엔 살구 종류가 몇 개 되지 않았다. 이 역시 내 신하가 가지고 와서 번식시켜 이제는 엄청 많아졌다. 카슈미르 지방에서 온 살구가 가장 질이 좋다. 내 영토에선 최상급의 배도 생산되고 있는데 카불이나 바다크샨에서 수확한 것 보다 맛이 훨씬 좋다. 사마르칸트 산의 배와 맞먹을 정도다. 카슈미르 산의 사과 역시 맛이 아주 뛰어나다. 다만 구아바만은 품질이 썩 좋지 않다. 포도는 차고 넘치도록 많지만 대부분 맛이 시어서 썩 마땅치 않다. 석류 역시 그리 잘 되는 편이 아니지만 수박만은 최상품이 생산된다. 내 영토에서는 모든 종류의 뽕나무가 자라고 있다.” [1]Thomas Leisten, “Gärten der islamischen Welt”, Die Gärten des Islam. ed. H. Forkl, J. Kalter – Th. Leisten, M. Oavaloi, 1993, p. 69.

고대의 식물지식을 물려받은 이슬람 문화권에서는 처음부터 식물의 치료기능이 중요한 역할을 했다. 바로 이 의약학과 천문학에 이슬람 문화권의 과학이 기초했다. 이슬람의 의술은 유명하여 중세 성기까지 유럽 의학을 훨씬 능가했다. 이슬람 학자들은 식물 지식을 딱딱한 학문적 용어로 설명하지 않고 일반인들도 쉽게 이해할 수 있도록 문학적으로 표현하는 것이 특징이었다. 그들은 자연의 기적과 같은 현상들, 식물들의 끝없는 다양함 등을 창조주의 위대함의 증거라고 설명했으며 모든 피조물에 대한 창조주의 우월성을 상징하는 것으로 해석했다. 페르시아 석학 차카리아 카츠비니Zakariya Qazwini (?~1283)는 페르시아 출신의 법률가, 의사, 지리학자, 천문학자였으며 최초의 공상 과학 작가이기도 했다. 그는 다른 행성에서 지구로 내려와 방랑하는 한 우주인의 이야기를 쓴 적도 있는데 그가 집필한 우주론은 바로 그런 유형의 문학을 대표하는 케이스라 할 수 있다. 그는 우주론에서 몇몇 식물들을 묘사했다. 생물학적인 묘사가 아니라 매우 시적이고 상징적이다.

세포의 삼투압작용이나 잎의 구조와 역할 등 이미 고대로부터 알려져 있던 자연과학적 지식 역시 모두 신과 결부시켰다. 식물의 구조와 물이 뿌리를 통해 흡수되고 잎까지 전달되는 과정을 과학적으로 정교하게 설명한 뒤 이 현상을 코란의 가르침과 결부시겼다. 그러므로 이슬람 정원에서 자라는 식물은 수백 수천 종에 달했겠지만 특별한 의미를 가지는 식물들이 반복되어 등장하는데 아래의 식물들이 가장 중요했다.


© 서양 정원사 백과/이슬람 정원의 식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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각주

각주
1 Thomas Leisten, “Gärten der islamischen Welt”, Die Gärten des Islam. ed. H. Forkl, J. Kalter – Th. Leisten, M. Oavaloi, 1993, p. 6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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