차하르바그 (사분원)
차하르바그(페르시아어: چهارباغ, chahār bāgh)는 길이나 수로가 직각으로 교차하여 전체 공간을 네 구역으로 나누는 페르시아계 정원 형식이다. 페르시아어 차하르(chahār)는 ‘넷’, 바그(bāgh)는 ‘정원’을 뜻하므로 직역하면 ‘네 개의 정원’이다. 한국어로는 사분원(四分園) 또는 사분정원이라 할 수 있다.
차하르바그는 고대 페르시아 정원에서 형성된 공간 구성 원리로, 이슬람 시대에 낙원의 상징과 결합하여 서아시아와 중앙아시아, 인도 아대륙 등지로 확산되었다. 페르시아 정원과 이슬람 정원을 연결하는 가장 중요한 정원사적 개념 가운데 하나이다.
공간 구성
차하르바그의 기본형은 직사각형 또는 정사각형의 정원 안에 두 개의 축을 교차시키고, 그 축을 기준으로 공간을 네 구역으로 나누는 것이다. 축은 길이나 수로로 조성되며, 교차점에는 연못과 분수, 파빌리온 또는 주요 건축물이 배치될 수 있다.
네 개의 구역은 다시 같은 방식으로 세분될 수 있다. 따라서 실제 정원에서는 네 구역만 나타나는 것이 아니라 사분할이 반복되어 복잡한 기하학적 구성을 이루기도 한다. 지형에 경사가 있는 경우에는 축선과 사분할 원리를 유지하면서 여러 단의 테라스로 변형되었다.
차하르바그의 구성요소는 대체로 다음과 같다.
- 담장으로 둘러싸인 직사각형 또는 정사각형의 경계
- 서로 직각으로 교차하는 두 개 이상의 축선
- 축선을 따라 흐르는 수로와 연속적으로 배치된 연못
- 네 구역으로 나뉜 식재지 또는 과수원
- 중심이나 주요 축선 위에 놓인 파빌리온·궁전·묘당
- 그늘을 만드는 교목과 과일나무, 향기로운 꽃과 관목
차하르바그는 평면상의 기하학적 도형에 그치지 않는다. 수로는 정원을 구획하는 동시에 식물에 물을 공급하고, 공기를 식히며, 건축물과 하늘을 수면에 반사하는 역할을 한다. 길과 수로, 건축물과 식물은 하나의 통합된 공간체계를 이룬다.

기원
차하르바그의 기원은 이슬람교 성립 이전의 고대 페르시아로 거슬러 올라간다. 가장 이른 원형으로 거론되는 곳은 아케메네스 왕조의 키루스 2세가 기원전 6세기에 건설한 파사르가다에의 왕실 정원이다.
파사르가다에에서는 석조수로가 궁전과 파빌리온, 정원의 여러 구역을 기하학적으로 연결하고 있었다. 영국의 고고학자 데이비드 스트로나크는 발굴 결과를 바탕으로 이 정원을 후대 차하르바그의 원형으로 해석하였다.
다만 파사르가다에의 정원이 실제로 정확히 네 구역으로 나뉘었는지는 확실하지 않다. 현재 확인된 석조수로는 정원을 두 개의 직사각형 공간으로 나누며, 사분할 복원은 유적의 축선과 건축물 배치를 바탕으로 한 추정이다. 따라서 파사르가다에는 ‘최초의 완성된 차하르바그’라기보다 차하르바그의 선구적 형태 또는 원형으로 보는 것이 적절하다.(메트로폴리탄 미술관)
명칭
차하르바그는 문자 그대로 ‘네 개의 정원’을 뜻한다. 이는 하나의 정원을 네 부분으로 나눈다는 의미와 네 개의 정원이 모여 하나의 전체를 이룬다는 의미를 함께 내포한다.
《이란 백과사전》은 차하르바그를 “길이나 수로에 의해 네 개의 대칭적인 구역으로 나뉜 직사각형 정원”으로 정의한다.(Encyclopaedia Iranica)
다만 이 명칭이 고대 페르시아 시대부터 사용되었는지는 확인되지 않는다. 네 부분으로 구성된 정원의 원리는 훨씬 오래되었지만, 차하르바그라는 명칭은 후대에 정착했을 가능성이 크다. 15세기 티무르 왕조 시대에는 정원과 정원궁전을 가리키는 이름으로 널리 사용되었다.
또한 차하르바그는 반드시 사분원 형식의 정원만을 뜻하지 않는다. 이스파한의 ‘차하르바그 대로’처럼 정원과 궁전이 늘어선 도시의 넓은 가로를 가리키는 고유명사로도 사용되었다. 따라서 문헌에서는 정원 형식인지 특정 정원이나 거리의 명칭인지 문맥에 따라 구분해야 한다.
상징
차하르바그의 사분할 구조는 여러 방식으로 해석되어 왔다. 동서남북의 네 방향, 세계의 네 영역, 고대 이란의 우주 질서를 상징한다는 견해가 있으며, 페르시아 제국이 여러 지역과 민족을 하나의 질서 안에 통합했다는 왕권의 표상으로 해석되기도 한다.
이슬람 시대에는 차하르바그가 코란에 묘사된 낙원과 연결되었다. 코란은 낙원을 강물이 흐르고 나무와 열매가 풍성한 정원으로 묘사하며, 물과 우유, 포도주, 꿀이 흐르는 강을 언급한다. 이에 따라 차하르바그의 네 수로는 낙원의 네 강을 상징하는 것으로 해석되었다.
그러나 차하르바그의 기원을 코란의 네 강에서 직접 찾는 것은 시대적으로 맞지 않는다. 사분할 정원의 원리는 이슬람교가 성립하기 이전에 존재했기 때문이다. 따라서 차하르바그는 고대 페르시아에서 형성된 공간구조가 이슬람 시대에 새로운 종교적 상징을 얻은 것으로 이해해야 한다.
페르시아 정원에서의 전개
페르시아 정원에서 차하르바그는 모든 정원에 기계적으로 적용되는 고정된 도식이 아니라 지형과 수원, 건축물의 기능에 따라 변형될 수 있는 설계 원리였다.
평지에서는 두 개의 축이 교차하는 대칭적인 구성이 주로 나타났으며, 경사지에서는 중심 수로와 테라스를 결합한 형태로 변형되었다. 한가운데에 건축물을 배치하기도 하고, 정원 끝의 높은 지점에 파빌리온을 두어 축선 전체를 조망하도록 구성하기도 했다.
유네스코는 페르시아 정원의 핵심적인 특징으로 직각과 기하학적 비례에 따른 공간 구성, 차하르바그의 다양한 적용, 정교한 물 관리 체계, 건축과 식물의 결합을 들고 있다.(유네스코 세계유산센터)
이슬람 정원에서의 전개
7세기 이후 페르시아가 이슬람 문화권에 편입되면서 차하르바그는 이슬람의 낙원관과 결합했다. 이후 티무르 왕조와 사파비 왕조를 거쳐 중앙아시아와 아프가니스탄, 인도 아대륙으로 확산되었다.
차하르바그는 왕실의 휴식과 연회를 위한 궁정 정원뿐 아니라 묘원에도 적용되었다. 묘원식 차하르바그에서는 무덤이나 묘당을 정원의 중심 또는 주요 축선 위에 배치했다. 정원 전체는 죽은 이가 머물 낙원이자 사후세계의 질서를 가시화한 공간으로 해석되었다.
무굴 정원
차하르바그는 무굴제국에서 특히 널리 사용되었다. 무굴제국의 창건자 바부르는 중앙아시아와 페르시아에서 익힌 정원문화를 인도에 도입했으며, 그의 후계자들은 이를 인도의 기후와 지형에 맞게 발전시켰다.
무굴의 차하르바그는 수로와 연못, 테라스, 파빌리온과 묘당을 결합한 대규모 정원으로 발전했다. 후마윤 묘의 정원은 인도에 조성된 초기의 대표적인 묘원식 차하르바그이다. 정원은 네 구역으로 나뉘고, 각 구역은 다시 작은 단위로 분할되며, 중앙의 묘당과 사방의 문이 축선으로 연결된다.(유네스코 세계유산센터)
타지마할 정원도 차하르바그 형식을 따르지만, 묘당이 정원의 정중앙이 아니라 야무나강에 접한 북쪽 끝에 배치되어 있다는 점에서 변형된 사례이다.
대표 사례
- 파사르가다에 왕실 정원, 이란
- 핀 정원, 이란 카샨
- 샤흐자데 정원, 이란 마한
- 이스파한의 차하르바그 대로와 왕실 정원군, 이란
- 바부르 정원, 아프가니스탄 카불
- 후마윤 묘 정원, 인도 델리
- 타지마할 정원, 인도 아그라
- 샬리마르 바그, 인도 스리나가르
- 샬리마르 정원, 파키스탄 라호르
정원사적 의의
차하르바그는 특정한 형태의 정원을 가리키는 동시에 페르시아 정원문화가 여러 시대와 지역으로 전파되는 과정에서 유지된 공간 원리이다. 기하학적 질서, 물 관리, 식물과 건축의 결합, 정치적·종교적 상징이 하나의 정원 형식 안에 통합되어 있다는 점에서 중요하다.
차하르바그는 고대 페르시아 왕실 정원에서 출발하여 이슬람 문화권의 낙원정원과 무굴제국의 궁정·묘원 정원으로 이어졌다. 따라서 페르시아 정원과 이슬람 정원을 동일시하지 않으면서도 두 정원문화의 역사적 연속성을 설명해 주는 핵심 개념이다.
현대 정원에서의 재해석
차하르바그의 공간 원리는 현대 조경에서도 다양하게 재해석되고 있다. 런던 킹스크로스의 젤리코 정원(Jellicoe Gardens, 젤리코 가든스)은 이란의 핀 정원에서 영감을 받아 물과 축선, 그늘의 원리를 영국식 자연주의 식재와 결합했다. 베를린 ‘세계의 정원’의 오리엔트·이슬람 정원(Orientalisch-Islamischer Garten)은 중앙 분수에서 네 방향으로 뻗는 수로와 사분할 식재지를 통해 차하르바그의 전통적 구성을 현대적으로 재현했다.

같이 보기
- 페르시아 정원
- 이슬람 정원
- 파라다이스 정원
- 파사르가다에
- 무굴 정원
- 묘원식 정원
- 카나트
- 타지마할
- 후마윤 묘
- 젤리코 정원
- 오리엔트·이슬람 정원
참고문헌
- David Stronach, “Čahārbāḡ,” Encyclopaedia Iranica, Vol. IV, Fasc. 6, 1990, pp. 624–625.
- David Stronach, Pasargadae: A Report on the Excavations Conducted by the British Institute of Persian Studies from 1961 to 1963, Clarendon Press, 1978.
- Penelope Hobhouse, Erica Hunningher and Jerry Harpur, The Gardens of Persia, Kales Press, 2004.
- D. Fairchild Ruggles, Islamic Gardens and Landscapes, University of Pennsylvania Press, 2007.
- James L. Wescoat Jr. and Joachim Wolschke-Bulmahn 편, Mughal Gardens: Sources, Places, Representations, and Prospects, Dumbarton Oaks, 1996.
©고정희의 서양 정원사 백과/차하르바그(사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