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트하인 Gothein, Marie Luise 1863-1931

마리 루이제 고트하인 Gothein, Marie Luise (1863-1931)은 독일의 여류 작가며 예술사가로 정원예술사에 대한 방대한 서적을 남겼다. 그 외에도 영문학, 종교학, 고고학 등에 정통했다.

Marie Luise Gothein (1863-1931). 20세기 초 하이델베르크 지성 클럽에 속했던 드문 여성 중 한명으로 1914년 서양정원사를 총괄하는 저서  출간. 지금까지도 명저로 읽히고  있다. 사진은 그녀의 전기에 수록된 초상화. Scan from “Es ist schon eine wunderbare Zeit, die ich jetzt lebe.”, Die Heidelberger Gelehrte Marie Luise Gothein (1863-1931). University Heidelberg 2014. Abb.1.


1863년 9월 12일 프로이센의 파센하임Passenheim/Ostpreussen 출생
1931년 12월 24일 하이델베르크Heidelberg 사망

남편: 경제학자, 예술사학자 에버하르트 고트하인 Eberhard Gothein (1853-1923)

자녀: 아들 네 명을 두었다. 그 중 차남은 일차대전 중에 전사. 후일 삼남 베르너는  미술가로 막내 퍼시는 작가로 성공.

지금의 폴란드 브레슬라우 인근에 위치한 파센하임에서 출생
1885년 경제학자 겸 예술사학자 에버하르트 고트하인 (1853-1923)과 혼인 칼스루에로 이주
1890년 본
1904/31 하이델베르크 거주
1892-1914 수주에 걸친 영국 여행을 여러 차례  다녀 옴
1925-1926 아시아 여행, 인도. 인도네시아. 일본. 중국
1931 하이델베르크 대학 명예박사


고트하인은 20세기 초 하이델베르크 대학의 지성클럽에 속했던 드문 여성 중 한명. 고트하인 외에 엘리자베트 야페Elisabeth Jaffe, 게르트루드 야스퍼스Gertrude Jaspers (1879-1974)와 마리안네 베버Marianne Weber (1870-1954) 등이 이에 속했다. 남편을 동반하여 다양한 사회활동을 했으며 뛰어난 지성으로 지식층 사이에서도 존경과 선망의 대상이 되었다. 그치지 않는 에너지와 천재에 가까운 지적 능력과 탐구열로 고등교육을 받은 적이 없음에도 독학으로 연구에 몰두, 많은 저작을 남겨 하이델베르크 대학에서 명예 박사 학위를 부여받았다.

유년시절을 동프로이센의 파센하임과 브레슬라우에서 보냈다. 아버지는 재판관이었으며 본인은 교사가 되고자 했으나 당시 고트하인이 다니던 여학교의 교사 에버하르트를 만나 1885년 혼인했다. 같은 해 남편이 남독의 칼스루에 대학의 경제학과 교수로 부임하게 되어 이주. 1904년 하이델베르크 대학으로 전근. 이후 사망 시까지 하이델베르크에서 머물렀다.

남편의 동료들, 즉 하이델베르크 교수들의 모임 자리에서 고트하인은 지성을 여지없이 드러냈다. 그녀의 학식이 교수들보다 뛰어났던 것으로 평가된다. 가족들에게는 어머니와 아내로서 구심점 역할을 했으며 자택에서 교수들의 모임을 주관했다. 그녀의 경쟁 상대이자 귀감이 되었던 여성은 같은 서클에 속했던 마리안네 베버1)마리안네 베버는 여성권자, 법률사학자로서 한국에서도 널리 알려진 독일의 학자 막스 베버의 아내였다. 문학과 예술에 심취했던 마리 루이제 고트하인과는 달리 사회운동, 여성운동에 뛰어들어 큰 영향력을 남겼다. 사회민주당에 가입하여 정치가가 되었고 1919년 바덴국의 최초 여성 국회의원을 역임했다. 사회정의, 여권신장에 관련 된 저서를 여러 권 남겼다. 고트하인보다 먼저 1922년 하이델베르크 대학의 명예박사가 되었다..였으나 그녀와는 달리 여성 운동에는 관심을 두지 않았다. 그 보다는 정신적 귀족주의와 개인주의적 성향이 강했다. 마르지 않는 지식에 대한 목마름을 채우기 위해 항상 새로운 영역에 도전한 것이 큰 특징이다.

1893년 첫 번째 저서 영국의 시인 윌리엄 워즈워스 (1770-1850)의 생애와 작품에 대한 책을 출간. 워즈워스의 시를 일부 독일어로 번역하여 담았다. 1897년 유사한 방법으로 존 키츠 (1795-1850)에 대한 책을 출간. 런던의 대영박물관에 오래 머물며 준비한 결과였다.

영국 여류 시인 엘리자베스 브라우닝 (1806-1861)의 시를 독일어로 재해석하여 발표. 1914년 인도의 시성 타고르의 시를 독일어로 번역. 고트하인의 번역 원고가 출판사에 도착 한 후 타고르가 노벨 문학상을 받은 사실은 널리 알려졌다. 이로써 고트하인은 타고르를 독일에 알리는데 결정적 역할을 하게 된다.

꾸준히 진행하던 번역작업 외에도 고고학, 문학, 종교학 연구에 몰두하여 1914년 타고르의 시집과 거의 동시 방대한 분량의 “정원의 역사” 1, 2,권을 발표했다. 1903년 영국 풍경정원을 연구하며 집필을 시작하여 십 년만에 고대 이집트로부터 20세기 초반에 걸친 전 역사를 개괄하는 대작을 탄생시켰다. 집필을 위하여 여러 나라를 여행했으며 특히 서양 정원이 발생한 지중해 유역에서 오랜 시간을 보냈다. 1928년 영어로 번역되어 나왔다. 2)A history of garden art. Edited by Walter Page Wright 고트하인의 “정원의 역사 “는 지금도 명저로 널리 읽힌다.

1923년 남편이 사망한 후  동양의 신비한 사상에 심취. 인도, 인도네시아, 중국, 일본을 여행. 1926년 인도의 정원 Indische Gärten 출간. 이미 연로했음에도 산스크리트어를 배워 하이델베르크의 인도학 교수 하인리히 침머 Heinrich Zimmer (1890-1943)와 서신 교류. 1922-1923 인젤 출판사에서 세익스피어 전집을 출간할 때 자문으로 참여, 그녀의 영문학에 대한 출중한 지식을 다시 한 번 입증.

1931년 남편의 일대기 집필하여 고인에게 헌정. 같은 해 철학자 보이티우스의 “철학의 위안 Consolatio Philosophiae”을 독일어로 번역해제하여 출간. 원서는 라틴어로 되었으며 평생 작업을 통해 완성했다. 그 해 성탄절 이브에 눈을 감았다.  사망 직전 하이델베르크 대학에서  “평생 여러 학문 분야를 접목시켜 뛰어난 업적을 남겼으며 번역작업을 통해 문학의 이해와 전파를 돕고, 남편의 일대기를 통해 당대의 사회문화사를 생동감 있게 그려 낸” 공로를 인정하여 명예박사 학위를 수여했다.

후일 부부의 업적을 기리기 위해 하이델베르크 시에 고트하인 가가 생겼으며 그들이 살았던 베버슈트라세 11번지에는 기념패가 부착되어 있다. 고트하인 부부의 편지와 친필 원고는 현재 바덴 뷔르템베르크 주립 아카이브에 보관되어 있다. (LEO-BW)

저서:

  • William Wordsworth. Sein Leben, seine Werke, seine Zeitgenossen. 2 Bände. Niemeyer, Halle a. S. 1893
  • John Keats. Leben und Werke. 2 Bände. Niemeyer, Halle a. S. 1897
  • Geschichte der Gartenkunst. 1. Auflage, Diederichs, Jena 1914 UB Heidelberg, Band 1: Von Ägypten bis zur Renaissance in Italien, Spanien und Portugal. Band 2: Von der Renaissance in Frankreich bis zur Gegenwart. 2. Auflage, Diederichs, Jena 1926
  • Englische Ausgabe: A history of garden art. Edited by Walter Page Wright, translated from the German by Mrs. Archer-Hind, London, Toronto 1928
  • Indische Gärten. Drei Masken, München, Wien, Berlin 1926
  • Die Stadtanlage von Peking. Ihre historisch-philosophische Entwicklung. Filser, Augsburg 1928
  • Eberhard Gothein. Ein Lebensbild. Seinen Briefen nacherzählt. Kohlhammer, Stuttgart 1931

 


외부고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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각주   [ + ]

1. 마리안네 베버는 여성권자, 법률사학자로서 한국에서도 널리 알려진 독일의 학자 막스 베버의 아내였다. 문학과 예술에 심취했던 마리 루이제 고트하인과는 달리 사회운동, 여성운동에 뛰어들어 큰 영향력을 남겼다. 사회민주당에 가입하여 정치가가 되었고 1919년 바덴국의 최초 여성 국회의원을 역임했다. 사회정의, 여권신장에 관련 된 저서를 여러 권 남겼다. 고트하인보다 먼저 1922년 하이델베르크 대학의 명예박사가 되었다.
2. A history of garden art. Edited by Walter Page Wright
I footnote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