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르쿠스 테렌티우스 바로 Marcus Terentius Varro

마르쿠스 테렌티우스 바로 Marcus Terentius Varro (기원전 116년 ~ 기원전 27년). 고대 로마의 정치가. 학자. 박식가Polymath로서 방대한 양의 저서를 남겼다. 특히 농사서De re rustica의 저자로서 의미가 크다. 

Statue of ancient Roman scholar Marcus Terentius Varro in his birthplace, Rieti (Lazio, Italy). Photo: Alessandro Antonelli, License: CC BY 3.0

그의 저서는 후세들이 문화사를 연구하는데 풍부한 자료를 제공했으며 특히 아우구스투스 황제 시대의 문화에 지대한 영향을 미쳤다. 고대 후기에 이미 명성을 떨쳤으며 교황들도 그의 저서를 읽고 인용했다. 현재는 극히 일부만이 전해진다.

생애

사비나 주의 리에티에서 출생. 로마와 아테네에서 수학. 키케로와 동문 수학한 사이며 평생 친하게 지냈다. 일찍 공직에 들어 호민관 등을 역임한 후 폼페이우스와 카이사르의 내전 당시 폼페이우스 편에 섰다. 승리한 카이사르가 사면하고 도서관 건립을 명했으나 카이사르가 살해되면서 안토니우스에게 추방당한다. 옥타비아누스가 다시 사면했으나 고향으로 돌아가 집필과 농사에만 전념했다.  그는 당시 로마에 풍미했던 신 피라고라스 주의자이였으며 피라고라스 방식대로 장례를 치르라는 유언을 남겼는데 이는 올리브나무 잎, 검은 포퓰러 잎과 머틀잎을 깔고 그 위에 사체를 안치하는 것을 말했다.

바로의 농사서De re rustica


바로의 농사서는 전 3권으로 대화체로 구성되어 있다. 80세 되던 해 기원전 37년에 발표했다. 1권에서는 경작 전반, 2권에서는 축산업, 3권에서는 가금류 재배를 다뤘다. 고대 그리스 철학서와 농사서를 참고하였으며 특히 크세노폰, 아리스토텔레스, 테오프라스투스 등을 인용했다. 한편 본인의 체험에서 우러나온 농법을 설명했는데 그가 조성했던 유명한 조류 정원Aviary을 매우 상세히 묘사했다. 바로는 농장주의 입장에서 필요한 경영과 기술에 대한 지식을 전달했으며 이를 자연 과학적으로 뒷받침했다. 서술 방식은 전문적인 농사서라기 보다는 거의 소설에 가까워 재미있게 읽힌다.

 

영향

역시 농사서 집필로 잘 알려진 후배 콜루멜라에게 큰 영향을 미쳤다. 대 플리니우스 역시 바로의 농사서를 참고했다. 로마 대에서는 바로 보다 콜루멜라의 농사서가 더 널리 읽히게 된다. 중세에 들어서 피에르 데 크레센치가 전원 생활에 대하여Opus ruralium commodorum 라는 저서를 쓸 때 크게 참고하면서 재조명 받게된다.

바로, 카토, 클로멜라의 삼대 농사서는 중세 내내 계속 필사되어 교과서처럼 읽혔으나 대부분 손실되기도 했다. 피렌체의 문헌 학자 니콜로 니콜리가 바로의 농사서를 필사해서 산 마르코 도서관에 위탁했으나 1768년에 사라졌다. 다행히 파리 국립 박물관에 12세기 필사본이 남아 있다. 20세기에 들어 와 바로의 농사서에 대한 연구가 다시 활발해져 여러 국가의 언어로 번역 출판되었다.

참고 문헌


  • Ax, Wolfram; Schwarz, Christian (Hg.) (2006): Text und Stil. Studien zur antiken Literatur und deren Rezeption. Stuttgart: Steiner (Klassische Philologie).

Web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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