플럭서스 Fluxus

[dropcap style=”default”]플[/dropcap]럭서스 Fluxus는 1960년대에 활동했던 국제적인 전위예술가 집단을 말한다. 리투아니아계 미국 예술가 조지 마치우나스[1]Geroge Maciunas (1931~1978)가 창시했다. 플럭서스란 흐름 혹은 흘러가는 것 뜻하는 라틴어 플럭스Flux에서 유래한 개념이다. 플럭서스 예술가들은 예술의 결과물, 즉 작품 보다는 창의적인 생각이 더 중요하다고 여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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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63년 Festum Fluxorum Fluxus 개최를 위해 마치우나스가 집필한 선언서. public domain

1963년 Festum Fluxorum Fluxus 개최를 위해 마치우나스가 집필한 선언서. public domai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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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다이즘Dadaism에 이어 두번째로 예술이 교양시민층의 애장품 내지는 애용품으로 전락하는 것을 본질적으로 거부한 집단이다. 유명한 아방가드 예술가들이 대거 동조했다. 대표적인 예술가는 한국의 백남준, 독일의 요제프 보이스[2]Joseph Beuys (1921~1986), 독일의 행위예술가, 조각가, 화가, 미술평론가. … Continue reading, 일본의 요코 오노 등이 있다.

1960년 조지 마치우나스가 잡지를 창간하며 플럭서스라는 개념을 도입했다. 그러나 잡지 이름보다는 오히려 전위적 행위예술을 칭하는 개념으로 고정되었다. 이에 가담한 예술가들은 엘리트 예술에 대해 저항하며 새로운 공동체적인 삶의 형태를 개발하고 이를 “보이지 않는 마스터피스”라고 불렀다. [3]Hans Belting, Das unsichtbare Meisterwerk: Die modernen Mythen der Kunst, C. H. Beck, 2001, p. 455생활과 예술 사이의 경계를 없애고 하나로 보았다. 즉 삶 그 자체가 예술임을 밝히고자 했다.

행위예술로 표현된 플럭서스는 존 케이지 John Cage의 음악 컨셉에 기초를 두었으며 선불교의 영향을 받은 생활관을 고수했다. 일회적인 연주보다는 끊임없이 반복 재생이 가능한 미디어의 힘을 빌어 표현되었다. 그러므로 비디오, 음향, 조명, 움직임, 행위의 힘을 빌고 기타 다양한 소재를 활용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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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차

발생과 흐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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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61년 뉴욕에서 예술잡지 창간을 통해 시작된 플럭서스는 이듬해 독일의 비스바덴에서 개최된 “새로운 음악을 위한 페스티발”이 발단이 되어 매우 활발하게 진행되었다.

플럭서스의 특징은 미디어의 직접성에 근거한다. 예를 들어 예술 이론을 정리하여 글로 남기기 보다는 이들이 서로 만났던 상황을 묘사함으로써 각자의 예술관을 대신하게 했다. [4]Silke Pauli, Hervé Würz (Edt.): How We met: Or A Microdemystification, AQ 16

플럭서스의 대표자로 꼽히는 요제프 보이스와 헤닝 크리스티안센 등은 사건이 전개되는 일련의 과정을 음향, 동작, 음악 등의 여러 매체를 이용하여 콜라주처럼 보여주고 이를 콘서트라 칭했다. 매체 간의 구분 없이 연극, 음악, 설치, 영화 와 사람의 행위 등을 모두 조합한 일종의 종합예술이었다. 콘서트라고 하나 조화로운 음악을 추구한 것은 물론 아니었으며 그 보다는 모든 사물이 낼 수 있는 음향이나 소음에 대한 체험을 추구했다. 예를 들어 망치로 장난감 총 등을 부술 때 내는 소리, 뾰족한 바늘로 살을 찌를 때 사람들이 지르는 비명 등이다.

원칙적으로 산업사회의 가치관에 대한 전면적인 도전이 목표였으며 이를 소통의 도구로 삼아 사회적, 심리적으로 대중들에게 접근하는 것이 목적이었다. 플럭서스 예술가들은 예술이론의 정립을 거부했고 선언문, 시, 텍스트 등을 모아서 발간했다. 이를 위해 1964년 딕 히긴스가 섬팅 엘즈라는 이름의 출판사를 설립하기도 했다.  [5]건축가 램 콜하스는 바로 이 방식을 따라 수백 페이지에서 … Continue reading

플럭서스가 특히 독일에서 성행했던 것은 바로 라인강의 기적을 일으키며 50년대에서 60년대에 물질주의와 상류층의 특권의식이 사회에 널리 자리잡게 되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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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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플럭서스는 일반 갤러리에 전시될 수 있는 ‘작품”을 만드는 예술이 아니었으므로 이벤트의 형태로만 구현이 가능했다. 첫 이벤트는 1962년 9월 23일 비스바덴 박물관 강연장에서 “FLEXUS: “라는 제목으로 열렸다. 유럽 전역에서 모두 14 팀의 예술가들이 참가하여 그들의 ‘콘서트’를 선보였다. 이때 참가한 예술가들은 히긴스 Higgins, 보이스 Beuys, 놀리스 Knowless, 포스텔 Vostell, 백남준, 윌리엄스 Williams, 쾨프케Køpcke, 피유 Filliou, 마치우나스 등이었으며 이 이벤트를 시점으로 해서 플렉서스가 공공연하게 탄생한 것으로 여겨진다. 이후 쾰른, 부퍼탈, 코펜하게, 파리에서 반복되었다.

이듬 해 뒤셀도르프 예술원에서 “페스툼 플렉소룸 플렉수스 Festum Fluxorum Flexus”라는 명칭으로 플렉서스 페스티벌을 주최했으며 이때 요셉 보이스 및 백남준이 핵심이 되어 1963년2월 2일과 3일 양일간 비스바덴, 코펜하겐, 파리 등을 순회하며 즉흥적인 이벤트를 열었다.

2010년 3월 2일에서 6월 24일까지 비스바덴 박물관 강연장에서 플럭서스 50주년 기념 전시회 (Flexus at 50.)가  개최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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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고자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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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eparator headline=”h4″ title=”100 장면 백과”]

각주

각주
1 Geroge Maciunas (1931~1978
2 Joseph Beuys (1921~1986), 독일의 행위예술가, 조각가, 화가, 미술평론가. 뒤셀도르프 예술아카데미 교수
3 Hans Belting, Das unsichtbare Meisterwerk: Die modernen Mythen der Kunst, C. H. Beck, 2001, p. 455
4 Silke Pauli, Hervé Würz (Edt.): How We met: Or A Microdemystification, AQ 16
5 건축가 램 콜하스는 바로 이 방식을 따라 수백 페이지에서 천 여 페이지 분량의 대형 서적들을 발간하고 있다. 콜하스 혹은 그의 건축가 사무실 OMA에서 발간하는 서적들은 콜라주의 성격이 매우 강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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