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 푀르스터 정원, 보르님

[dropcap style=”default, circle, box, book”]칼 푀르스터 정원[/dropcap]이 독일에 여러 개소 존재하므로 지명을 함께 언급하여 서로 구분한다. 그중 가장 대표적인 것이 포츠담 보르님에 위치한 칼 푀르스터의 자택 정원이다. 자택 정원이라고는 하나 처음부터 자신이 육종하거나 재배한 숙근초를 전시할 목적으로 조성한 시범 정원이었다. 숙근초 재배원 및 육종원에 붙어 있다.

1907년 포츠담 북서쪽 보르님 평야에 감자밭 수 헥타르를 구입하여 숙근초 재배원 및 육종원의 기반을 닦기 시작했으며 어느 정도 자리가 잡히자 1912년부터 사택을 짓고 삼년에 걸쳐 집을 둘러싼 형태로 전시정원을 조성했다.

처음부터 숙근초의 다양한 양상을 선보이기 위해 테마 위주로 공간을 나누었다. 봄길, 선큰정원, 자연정원, 암석정원, 가을정원이 탄생했으며 지금은 없지만 당시에는 원형의 식물관찰원(아래 흑백 도면의 F)도 별도로 마련되었었다. 이곳은 말하자면 ‘살아있는 카탈로그’와 다름없어서 고객들이 모든 식물을 한 눈에 살펴볼 수 있게 나란히 배치했던 곳이다. 자연정원과 암석정원이 가장 늦게 조성되었는데 이 두 정원은 특별히 자연스러운 정원환경 속에 자생종과 외래종이 함께 어울려 살게 하고자 했던 칼 푀르스터의 이념이 그대로 반영되어 있는 곳이었다. 이렇게 서로 아주 다른 개념의 정원들을 나란히 배치한 것은 당시 부상하고 있던 ‘새 정원’에 대한 열띤 토론을 정원으로 재현해 보인 것이다. 일단 재배장에서 검증 된 식물을 가져다 심어 디자인 기법, 식물의 적절한 배치법 등을 실험하는 공간이기도 했다. 식물을 한 장소에서 수 년 간 관찰할 수 있다는 장점도 있다.

정원의 구성(테마 정원)


1915년 정원이 어느 정도 완성된 이후 지금까지 기본적인 구조는 크게 달라지지 않았다. 흑백 도면(1920년)의 F 구간, 즉 원형 숙근초 관찰원의 대부분이 현재 사업장에 편입되었고 일부만 남아 가을 정원으로 재구성되었다.

 

1920년경 칼 푀르스터 재배원 카탈로그에 실렸던 도면. 

 

1998년 연방 정원박람회 2001 을기해 복원하기 위해 제작된 도면. A: 선큰 정원, B: 봄길,  C: 가족 정원,  D: 가을 정원, E: 암석 정원. 출처: 마리안네 푀르스터 2013. 속표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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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 선큰 정원 Sunken Garden


가장 중요한 핵심구간. 본래 사방에 장미트렐리스 두르고 안쪽에 낮게 석축을 쌓아 3층 계단식으로 조성되었다. 4월부터 10월까지 숙근초와 달리아를 심어 늘 꽃이 피어 있되 계절마다 색다른 그림이 펼쳐지게 고안된 정원. 중앙에 수련 연못이 있고 그 주변엔 수변식물화단이 마련되어 있다. 연못가에 단풍나무가 심볼처럼 서 있으며 4월부터 늦여름까지 아이리스, 베르게니아, 꿩의 다리(Thalictrum), 수퍼금매화 (Trollius europaeus Supervus), 억새나 갈풀, 대나무, 원추리와 안추사 (Anchusa)1) Anchusa. 안추사 혹은 쇠서풀. 한국 농촌진흥청에서 지치과의 약초로 소개하고 있음.등 특별히 아름다운 수변식물들이 자란다. 봄에 튤립과 아이리스가 필 때, 여름에 덩굴장미와 제비고깔, 가을에 아스터와 노란 루드베키아 및 오렌지색의 달리아가 필 때  색감이 절정을 이룬다. 늦가을과 겨울에는 키 큰 숙근초와 억새풀들이 갈색 갑옷을 입은 기사들 처럼 우뚝 서서 정원을 지키는 모습이 장관이다. 이렇게 겨울에도 아름다운 정원을 연출하기 위해서 침엽수를 배경으로 키큰 숙근초와 억새풀들을 심는 것이 칼 푀르스터가 새로 도입한 개념이었다.

[box style=”1″]감상 포인트:

사립문을 들어서면 우선 바로 오른 쪽 길로 접어드는 것이 좋다. 중앙축에 서거나 흰 벤치에 앉아 집을 마주보고 전경을 바라보면 선큰 정원 전체가 한 폭의 그림처럼 눈에 잡힌다.  그 다음 계단을 내려가 연못가에 서서 주위를 둘러 보면 식물로 이루어진 작은 별천지 속에 푹 잠겨있는 자신을 발견하게 된다. 가장 후방의 큰 나무가 병풍처럼 배경을 이루고 작은 꽃나무들, 자연스러운 관목들 키큰 숙근초와 작은 숙근초 들이 몇 겹의 층을 이루기 때문에 작은 세상이 무척 깊어 보인다. [/box] [gap height=”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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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 봄길 Spring Walk


사립문으로 들어 가 약간 왼쪽으로 방향을 잡으면 커다란 솔송과 주목이 어두운 수문장처럼 서 있는데 그 사이를 통과하면 화사한 봄길로 접어들게 된다. 약 80미터 길이. 양쪽에 낮은 석축으로 마감되어 있으며 석축 뒤의 화단에는 큰 나무들을 심어 반그늘이 진다. 이곳은 봄을 제외하면 일 년 내내 다양한 녹색잎들을 감상할 수 있는 곳이며 초봄에서 4월말까지 피는 모든 중요한 숙근초들을 모아놓았다. 꽃피는 시기가 같은 것끼리 그룹으로 배치되어 있으며 사이사이에 겨울에도 잔잔하게 빨강, 분홍, 흰꽃을 피우는 난쟁이 관목 ‘겨울에리카’ (Erica carnea)가 배치되어 틀을 잡아주고 있다.

2월, 나무들이 아직 앙상할 때 우선 파란별무릇(Scilla sibirica), 짙은 남색의 나도히아신스(Chinodoxa sardensis), 야생 크로커스, 야생튤립, 솔리다현호색 (Corydalis solida)들이 오색의 양탄자처럼 깔린다. 이 때 진한 붉은색부터 진한 남색, 어두운 갈색까지 색의 스펙트럼이 펼쳐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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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  가족정원


가족 정원. 만병초를 울타리처럼 둘렀다. © Jeonghi Go

본래는 자연정원이 있던 곳. 1913년 시작되어 독일을 휩쓴 자연정원 운동이 보르님에도 찾아 들었었다. 약 1200 평방미터를 할애하여 자연생태계의 환경에 따라 실존하는 경관의 요소들을 압축시켜 정원이라는 작은 공간에 재현하는 방법으로 출발하였다. 1927년 결혼, 딸의 출생 등으로 가족들만의 공간이 필요하게 되자 1930년 자연정원을 해체하고 그 자리에 가족정원을 지었다.

늘 방문객들의 발길이 끊이지 않는 곳이므로 가족들만의 시간을 위해 개인공간이 필요하게 되었다. 집의 북쪽 테라스에서 네 계단 내려간 곳에 넓은 잔디밭을 만들었으며 이곳에 딸을 위해 짚으로 지붕을 덮은 놀이집 ‘발리 하우스’도 지어주었다. 후에 작은 가든하우스로 개조하였으며 지금도 서 있다. 시간이 흐르면서 에바 푀르스터가 철쭉 만병초 등으로 울타리를 만들어 보호된 공간의 느낌을 강조하였으며 잔디밭에 잎갈나무 두 그루, 미송 한 그루, 흑송 한 그루를 심었다. 지금 바로 이 구역을 지배하는 나무들이다. 나무 하부에는 비비추, 자주지치, 이질풀 등을 심었으며 북쪽 평야에서 불어오는 찬바람을 막기 위해 주목을 자연스럽게 심어 울타리를 대신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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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 가을 정원


가을 정원, Autumn garden. 노르웨이 단풍 아래 아스터, 루드베키아, 억새풀들이 서로 밀치고 있다. © Jeonghi Go

봄길이 끝나는 곳에 자리잡고 있다. 수관이 지구처럼 둥글게 자라는 노르웨이 단풍이 한 그루 서 있고 그 주변의 공간에 9월에서 서리가 내릴 때까지 피는 식물들이 자라고 있다. 이들은 당시 칼 푀르스터가 개발했던 식재개념, 즉 숙근초들을 종류별로 따로 심는 것이 아니라 서로 뒤섞어 조화를 꾀하는 방법으로 배치되었다. 간혹 큰 숙근초가 앞에 서서 물결처럼 흔들리는 생명감을 주기도 한다.

주된 숙근초는 가을아네모네, 가을아스터, 쿠션아스터, 구절초, 가을머틀 등이다. 한 가운데 큰억새가 서서 시선을 사로잡고 그 옆엔 자주천인국 (Echinacea purpurea)도 피고 있다.  가을정원 뒤쪽으로 “푀르스터 숙근초 재배장” 부지가 펼쳐져 있으므로 주목과 측백으로 울타리를 만들어 경계를 삼았다. 초가을부터 서리가 내릴 때까지, 그리고 겨울에 꽃들의 열매와 빈 줄기에 눈이 내릴 때까지 변화하는 정경들을 느낄 수 있는 곳이다.

물론 가을까지 횡한 공간으로 둘 수 없기 때문에 튤립, 알리움, 베르게니아 등을 심어 봄철에도 슬프지 않게 배려했다.  [gap height=”10″]

E 암석정원


자연정원과 유사한 개념으로 조성된 약 일천 평방미터의 정원으로서 인공언덕을 만들어 고산지대의 경관을 압축하여 재현한 것이다. 우선 약 1.8미터의 깊이로 땅을 파고 거대한 자연석을 묻어 기초를 삼았으며 돌과 흙을 차레로 쌓아 언덕을 만들었다. 자연스럽게 굴곡진 산책로를 따라가다보면 언덕으로 올라가기도 하고 계곡 사이를 지나가게도 된다. 동쪽, 즉 집으로 향한 쪽은 자연석을 각지게 쌓아 깊은 공간감을 주었으며 그 반대쪽, 즉 재배장으로 향한 쪽은 경사면에 둥그런 자연석을 겹쳐쌓아 부드럽게 마무리했다. 사방으로 최소 1.5미터의 단 차이가 나며 높은 곳에 수목을 집중적으로 심어 공간이 더욱 깊어지게 했다.

시간이 흐르며 나무가 너무 크게 자라 정원 전체에 그늘을 드리우게 되어 1998년 복원하면서 나무를 일부 제거해야 하는 가의 여부에 대해 의논이 많았으나 나무 자체로 소중하기 때문에 보존하기로 결정되었다. 미송과 소나무, 주목이 북쪽 평야 쪽에서 불어오는 바람막이가 되어주고 있다. 서쪽 재배장 방향으로는 향나무와 잎갈나무들이 서 있는데 늙어 휘어진 모습으로 자주 사진모델이 되고 있다. 암석정원의 뒷부분은 양쪽의 언덕 사이에 좁은 길이 굽이져 지나는 ‘고사리계곡’으로 구성되어 마치 동굴을 지나가는 것 같은 느낌을 준다. 처음부터 서 있던 단풍나무, 처진캐나다솔송이 금작화(Genista) 와 함께 계곡의 끝을 막아서고 있다.

구불거리는 산책로를 따라 계절 속으로 들어갈 수 있게 배려했다. 입구에서 초봄이 시작되어 봄과 여름을 지나 마지막 고사리계곡에서 늦가을을 만나며 거기서 다시 세상으로 되돌아오게 되어 있다. 이 정원의 식물들은 선큰정원처럼 화려함을 보기 위한 것이 아니라 고산지대에서 자라는 작고 섬세한 식물들을 돌 사이에서 발견하는 체험감을 느끼게 하는 것이다. 현재의 환경이 허락하는 한 될수록 초기 식물배치를 그대로 재현하는 데 힘썼다. 현재 암석정원에서 정기적으로 수목관리 세미나가 열리고 있다. 베를린 공대 식물적용학과의 노버르트 퀸 교수가 지도하며 누구나 참여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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찾아가는 방법


주소:

Am Raubfang 6, 14469 Potsdam, Germany

앞쪽 사립문은 항상 열려 있음. 무료 입장. 원하는 경우 정원에 놓인 돼지 저금통에 약간의 기부금을 넣을 수 있음. [gap height=”10″]

찾아가는 방법:

아래 지도의 A지점과 B지점을 클릭하면 자세한 설명과 사진이 첨부되어 있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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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고 문헌


  • Karl Foerster, Ein Garten der Erinnerung. Ulmer 1992
  • 칼 푀르스터, 일곱 계절의 정원으로 남은 사람 – 정원 왕국의 칼 대제, 푀르스터를 만나다. 나무도시 2013
  • 마리안네 푀르스터, 내 아버지 칼 푀르스터의 정원에서 보낸 일곱 계절, 나무도시 2013
  • 고정희, 독일정원 이야기 – 정원박람회의 도시를 가다. 나무도시 20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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각주   [ + ]

1. Anchusa. 안추사 혹은 쇠서풀. 한국 농촌진흥청에서 지치과의 약초로 소개하고 있음.
I footnote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