존 트러데스캔트 1세Tradescant, John the elde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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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John Tradescant the elder“ von Cornelius de Neve (1609-1678) - [http://www.ashmolean.org/ash/objectofmonth/2002-05/theobject.htm Ashmolean Museum. Lizenziert unter Gemeinfrei über Wikimedia Commons - http://commons.wikimedia.org/wiki/File:John_Tradescant_the_elder.jpg#/media/File:John_Tradescant_the_elder.jpg

존 트러데스캔트John Tradescant 1세의 화려한 초상화. Cornelius de Neve의 그림. 에시몰리안 박물관 소장. source: Wikimedia Common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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존 트러데스캔트는 영국의 정원사, 식물학자이다.  동명의 아들 역시 같은 직업에 종사했으므로 서로 혼동을 피하기 위해 아버지는 1세 (the elder), 아들은 2세 (the younger)로 구분한다.
존 트러데스캔트 1세의 출생지에 대해서는 확실한 정보가 전해지지 않는다. 구 인명사전에는 네덜란드 출신으로 되어 있으나 요즘은 영국 서퍼크Suffolk에서 태어났다는 설이 유력하다. 이미 1600년 이전에 제 10대 콥햄 남작 윌리엄 부룩William Brooke경의 장원, 콥햄 홀의 정원사로 명성을 얻었던 것 같다.

1609년 솔즈베리의 1대 공작 로버트 세실Robert Cecil, der 1. Earl von Salisbury이 하트필드 하우스 Hartfield House를 짓고 트러데스캔트를 정원사로 기용했다. 공작의 명을 받아 1610/11년에 네덜란드에 가서 튤립 구군, 포도나무 묘목, 유실수 묘목 등을 구해 왔다. 로버트 세실경의 사후에도 1614년까지 하트필드 하우스의 정원을 돌보다가 1615에서 1623 사이에 에드워드 로드 워튼 경 Edward Lord Wotton에게 고용되어 캔터베리에 있는 세인트 어거스틴 애비St Augustine’s Abbey 의 정원을 디자인 했다. 워튼 경은 당시 제임스 1세 왕의 재상이었다. 본래 수도원이었던 세인트 어거스틴 애비는 헨리 8세의 수도원 해지령에 의해 폐쇄되었으며 건물과 토지는 일부 귀족들에게 넘겨졌다. 로버트 세실 경이 쓰다가 그의 사후에 에드워드 워튼 경에게 넘겨졌고 , 트러데스캔트가 당시 시대감각에 부합되는 정형적 정원을 조성했다.

1618년 트라데스캔트는 더들리 디게스Dudley Digges (1583-1639) 경과 함께 러시아로 떠난다. 더들리 디게스 경이 러시아 황실의 대사로 임명되어 떠날 때 동반하여 북러시아 군사시설 시찰에 동반하였으며 이때의 경험을 기록한 여행기가 전해진다. (A Viag of Ambusad, 1618) 러시아의 아르한겔스크에서 장미Rosa moscovita, 당귀 Angelica, 잎갈나무 류Larix, 제랴늄 한 종 등 식물을 가지고 돌아왔다.

1620년 지중해를 거쳐  레반트로 가며 거기서 석류, 살구, 피스타치아 등을 구해 영국에 도입하여 재배하는 데 성공했다.
1621년 버킹엄 1대 공작, 조지 빌리어스 경의 정원사가 되었으며  첼름스퍼드Chelmsford에 있는 공작의 정원을 조성하고 1624년 공작의 명으로 다시 네덜란드에 가서 식물을 수집했으며 1625년 찰스 1세와 프랑스의 헨리에타 마리아 공주와의 혼인을 준비하기 위해 파리로 떠나는 공작을 동반했다. 파리에서 트러데스캔트는 왕실 식물원장 쟝 로뱅Jean Robin을 만난다.

1626년경 그는 사우스 램버스, 캔터베리 추기경의 램버스 궁전 가까운 곳에 토지와 집을 임대한다. 이 집은 나중에 방주The Ark라고 이름 붙여지며 그 동안 수집해 온 각종 진기한 물건들을 모아 트라데스칸트 박물관을 준비하고  1629년부터 오픈했다. 이것이 영국 최초의 진기한 박물관Cabinet of curiosities이며 동시에 공공박물관이다. 이 박물관의 전시품목들은 나중에 옥스퍼드의 에쉬몰리안Ashmolean 박물관에게 넘겨받았다.
1630년 챨스 1세 왕의 왕실정원사로 임명되어 서리의 오트랜즈 궁원 및, 포도원, 뽕나무원 등의 책임자가 된다. 1637년 사망 직전에 옥스퍼드 식물원 원장이 되었다.

트러데스캔트는 수많은 식물들을 유럽에 도입하여 재배에 성공하는데 그 중에 담쟁이Parthenocissus quinquefolia, 매발톱 류Aquilegia canadensis, 아스터 류Aster tradescantii, 루드베키아Rudbeckia laciniata 등이포한되어 있으며 버지니아에서 가져 온 것으로 삼각돛대모양의 초본류가 그의 사후에 식물학자 하인리히 베른하르트 루프가 그의 이름을 따서 트러데스칸티아Tradescantia로 명명했으며 후에 칼 폰 린네가 식물의 학명을 정리할 때 그 이름을 그대로 적용했다. 확실치는 않지만 아카시나무Robinia pseudoacacia 역시 그가 도입하여 재배한 것으로 추정되고 있다.
1638년 사망했으며 동명의 아들과 함께 램버스 세인트 메리 교회의 묘지에 묻혀있다. <고정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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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A Viag of Ambusad 1618
  • Plantanum in Horto Iohannes Tradescanti nascentoum Catalogus 1634 (사후에 출간됨.)

기타: 영국의 베스트셀러 작가 필리파 그레고리Philippa Gregory가 Earthy Joys의 주인공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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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ttp://upload.wikimedia.org/wikipedia/commons/a/aa/Tomb_of_John_Tradescant_the_elder_and_John_Tradescant_the_younger.jpg

존 트러데스캔트 부자의 묘. 위의 초상화 중 왼쪽이 아버지이고 오른쪽이 아들. 런던 램버스 세인트 메리 교회 묘지에 안장되었다. 교회 정원은 지금 이들을 기리는 의미에서 정원사 박물관이 조성되어 있다. source: Wikimedia Common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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