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메 봉플랑 Aimé Bonpland (1773-1858)
프랑스의 자연과학자, 의사, 식물학자, 탐험가
1773년 8월 29일 라로셀에서 출생, 1858년 5월 11일 아르헨티나에서 사망
봉플랑이 최초로 명명한 식물명에는 “BONPL.”이라는 약칭 붙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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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73년 라로셸에서 의사의 아들로 태어나 의학을 공부하고 외과의로 잠시 근무. 이후 파리에서 식물학, 동물학 수학.
1799-1804 파리에서 알게 된 알렉산더 폰 훔볼트 Alexander von Humboldt와 함께 남아메리카 대륙 탐사. 약 6 만 종의 식물 표본 수집. 그 중 3500 종은 그때까지 알려지지 않았던 새로운 식물. 훔볼트의 그늘에 가려 국제적 명성을 얻지 못하고 정치적 소용돌이에 휩쓸려 파란만장한 삶을 살다 간 독특한 인물.
귀국 후 1804년 나바라와 말메종에 있는 식물원의 원장으로 부임. 에티엔느 벵트나의 후임으로 조제핀 황후의 식물 컬렉션 관리 책임을 맡음. 남미 탐사에서 가지고 돌아 온 희귀 식물들 재배 실험.
1805년 훔볼트와 함께 ⌈식물지리학에 대한 에세이⌋[1]Essay on the Geography of Plants, 1804. 2009년 시카고 대학에서 재출간. 집필.
1833년 까지 ⌈나바라와 말메종 식물원의 희귀식물⌋[2]Description des plantes rares, cultivées à Navarre et à Malmaison, 1818, 동판화 64 점, ⌈멕시코에서 수집한 적도식물⌋[3]Plantes équinoxiales recueillies en Mexique, 1805-1818, 전 2권), ⌈멜라스토마시에 대한 단행본⌋[4]Monographie des mélastomacées, 1806-1823, 전 2권. 동판화 120점 등의 주요 저서 출간.
나폴레옹 추종자로서 나폴레옹의 몰락에 크게 상심하여 유럽을 떠나기로 결심. 1816년 식물 종자를 가지고 아르헨티나로 떠남. 부에노스아이레스 대학 자연과학과 교수로 부임. 아르헨티나 정부가 봉플랑을 제거하려 하자 1820년 다시 파라과이로 떠남. 여기서 마테라는 파라과이 차에 관심을 가지게 되어 농장을 짓고 재배 시작. 원주민 마을 설립. 파라과이 독재정부에서 마테 차 생산의 독점권을 잃지않기 위해 농장을 습격, 파괴하고 봉플랑 체포. 유럽의 여러 정부와 알렉산더 훔볼트가 노력한 끝에 8년 뒤 석방. 이후 브라질 농촌으로 이주. 오렌지나무 등 여러 유용식물을 재배하고 메리노 양떼를 기름.
1850년 파라과이 정부에서 토지를 내려 그의 공로를 뒤늦게 보상. 이를 바탕으로 작물 생산효울의 증가 및 주민들의 의료 상황을 개선하기 위해 노력하나 자금난으로 실패. 1853년 다시 아르헨티나로 건너 가 북서부의 코린토스 도의 파소 데 로스 리브레스에서 마지막 저서를 완성하려 하나 성공하지 못하고 가난 속에서 세상을 떠남.
그의 사후에 그가 마지막을 보낸 마을 이름을 그를 따라 개칭함. 그 외에도 봉플랑의 이름을 딴 식물 세 종과 소행성이 있으며 부에노스아이레스에 봉플랑 가, 베네주엘라 안데스 산맥에 봉플랑 봉 등으로 명명하여 그의 업적을 기림.
[gap height=”30″][separator headline=”h4″ title=”참고 자료”]
- Mägdefrau, K. (2013): Geschichte der Botanik: Leben und Leistung grosser Forscher: Spektrum Akademischer Verlag.
- 위키백과사전, https://de.wikipedia.org/wiki/Aim%C3%A9_Bonpland
[gap height=”30″][separator headline=”h4″ title=”본문 색인”]
- 357 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