윌리엄 로빈슨 Robinson, William (1838-1935)

William robinson

William robinson, c. 1870

[responsive][/responsive]윌리엄 로빈슨Robinson, William (1838-1935)은 북아일랜드 커래그모어Curraghmore, 워터포드Waterford 후작의 영지관리원의 아들로 태어나 정원사 교육을 마친 후 유럽과 미국을 여행했으며 그 후 정원서적 작가로 런던에서 활동했다. 1885년 서섹스의 그레이비타이 장원 Gravetye manor 을 구입하여 자신이 개발한 와일드 정원의 개념을 실제로 적용했다.  평생 존 러스킨John Ruskin, 거트루드 지킬 Gertrude Jekyll과 교우했다.

로빈슨이 1870년 발표한 서적 “The Wild Garden”은 유럽의 정원에 결정적인 혁신을 가져왔다. [gap height=”15″]

정원이론에 대한 주요 저서

윌리엄 로빈슨의 저서는 모두 온라인으로 다운로드 가능.


  • 1869 The parks, promenades, & gardens of Paris
  • 1870 The Wild Garden
  • 1871 Hardy Flowers.
  • 1871 The Subtropical Garden
  • 1883 The English Flower Garden
  • 1892 Garden Design and Architects Gardens
  • 1906 The Garden Beautiful. Home Woods and Home Landscape
  • 1911 Gravetye Manor: or, Twenty Years’ Work round an old Manor House
  • 1914 Home Landscape

[gap height=”30″]

정원잡지


  • 1871~ The Garden
  • 1879~ Gardening Illustrated

[gap height=”30″]

로빈슨의 정원개념


윌리엄 로빈슨은 1868년에서 1924년 사이에 19권의 저서를 썼고 수많은 에세이를 남겼다. 그는 정원사보다 정원 작가, 정원이론가, 정원출판인의 인생을 보냈다고 보는 편이 옳을 것 같다. 많은 글을 썼지만 그가 주장하는 바는 처음부터 끝까지 초지일관 크게 변하지 않았기 때문에 비교적 간단하게 요약할 수 있다.

로빈슨 정원의 주인공은 단연 식물이다. 그 중에서도 모든 유용성을 배제한 아름다움의 가치를 크게 부각시켰다. 정원의 유용성이라거나 정원일을 통해 얻어지는 정신적인 치유효과 등에 크게 관심을 두지 않았다. “정원에 효용이 있다면 그건 오로지 아름다운 꽃과 수목들이라는 보물을 만들어 내는 곳이기 때문이다.” 1)Robinson, William, 1892, p. 17 [responsive]

윌리엄 로빈슨이 1870년에 발표한 “The wild garden”표지

[/responsive]

1870년에 발표한 “The Wild Garden”을 통해 1850년대부터 정원계에서 벌어지던 일에 대해 크게 비판적인 입장을 취했다. 서문에서 이미 그의 입장을 확실히 했다. “셰익스피어 때부터 지금까지 영국의 정원에서는 늘 숙근초들이 자라고 있었다. 그러던 것이 한 이십년 전부터 취향이 바뀌어 더운 나라에서 온 원색의 꽃들을 여름이 되면 매스로 내다심는 것이 유행하고 있다. (중략) 선홍색의 제라늄이 우리의 고운 꽃들을 모두 몰아내고 있다.” 2)Robinson, William, 1870, pp. 3-4

건축이나 조형물에 대한 다소 경직된 사고방식을 제외한다면 로빈슨이 정원문화에 미친 영향은 실로 지대하다. 로빈슨의 전기를 쓴 Mea Allan은 영국 역대 최고의 정원사로 일컫고 있다. 그는 사실 미술공예운동가들보다 먼저 시대를 읽고 혁신을 이끌어 낸 인물이다. 특히 자연의 원칙에 입각한 정원디자인을 주장하여 생태적 접근법의 기반을 닦아놓았다고 볼 수 있다. 자연의 원칙을 이해하는 것은 결국 학문이므로 로빈슨은 정원디자인을 학문의 길로 이끈 선구자였으며 동시대의 디자이너들에게 영감을 주어 20세기 초 새로운 정원양식을 이끌어 내는데 크게 기여한 인물이다. 또한 그가 주장한 “자연에 입각한 정원”은 과거로의 회귀가 아니라 시대를 앞서가는 것이었다. 그를 통해서 처음으로 식물을 종류별로 모아 심는 것이 아니라 자연스럽게 군락을 만들어 주는 방법이 도입되었으며 식물사회학의 기틀을 닦았다고 볼 수 있다.


[gap height=”15″]

윌리엄 로빈슨의 그레이비타이 장원 Gravetye manor

[gap height=”10″]

[responsive]Graverye Manor Hotel and Gardens[/responsive]

[gap height=”15″]

참고 자료


  • Archival material relating to William Robinson: UK National Archives. Online https://discovery.nationalarchives.gov.uk/details/c/F45309.
  • Bisgrove, R. (2008): William Robinson: The Wild Gardener: Frances Lincoln Limited Publishers.
  • Clayton, Virginia Tuttle (2000): The Once and Future Gardener. Garden Writing from the Golden Age of Magazines 1900-1940: David R. Godine.
  • Duthie, Ruth E. (1974): Some Notes on William Robinson. In: Garden History 2, 3 (Summer, 1974), pp. 12–21.
  • Hobhouse, P. (1992): Penelope Hobhouse’s gardening through the ages: an illustrated history of plants and their influence on garden styles‐from ancient Egypt to the present day: Simon & Schuster.
  • Massingham, Betty: William Robinson: A Portrait. In: Garden History 6, 1 (Spring, 1968), pp. 61–85.
  • Tankard, Judith B. (2005): Gravetye Manor: home of the Robinsonian garden. Apollo. April 2005.
  • 홉하우스, 페넬러피 (2015), 사진과 그림으로 보는 서양정원사, 도서출판 대가

[gap height=”15″]

[separator headline=”h4″ title=”서양정원사 백과”]

[gap height=”30″][clear]

Related entries

각주   [ + ]

1. Robinson, William, 1892, p. 17
2. Robinson, William, 1870, pp. 3-4
I footnote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