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트셉수트 여왕의 장제전
하트셉수트 여왕의 장제전은 왕가의 계곡 근처 데이르 엘 바하리에 위치하고 있다. 고대 이집트 신왕국 제18왕조대에 건립되었으며 데이르 엘 바하리에 있는 세 개의 장제전 중 가장 잘 보존되었다. 소위 말하는 백 만년의 집에 속하며 건축양식이 매우 독특하다. 장제전 앞 광장에 연못을 파고 나무를 심어 정원을 조성했던 흔적이 발견되어 고대 이집트 신전 건축 및 정원 연구를 위해 중요한 장소이다.
목차
역사
하트셉수트 여왕 재위 7년에서 22년 사이에 건설되었다. 건축가는 재상이며 여왕의 최측근이었던 센네무트 Sennemut였을 것으로 추정된다. 장제전 광장 지하에 그의 묘 (TT353)가 조성되어 있으며 장제전 내부에도 여러 곳에 센네무트의 흔적이 남아 있는 것으로 미루어 그리 해석되고 있다. 센네무트 뿐 아니라 건축에 관여 했던 중요한 인물들의 이름이 새긴 비석이 여러 곳에서 발견되었다. 후대에 누군가에 의해 하트셉수트 여왕의 기록이 말살되었으며 장제전 역시 심하게 훼손되었다.
1893-1898년, 1903-1906년 2회에 걸쳐 스위스 학자 앙리 에두아르 나빌이 영국의 이집트 탐사 재단의 의뢰를 받아 데이르 엘 바하리 전체의 발굴작업을 지휘했다. 영국의 화가 하워드 카터 등 여러 명의 화가가 발굴단에 소속되어 발굴되는 모든 유적과 유물을 그림으로 그려 남겼다. 나빌은 발굴 결과를 정리하고 해석하여 1894-1898 사이에 총 7권의 책자로 출간하였다.
1920-1931년 미국의 메트로폴리탄 박물관이 허버트 유스티스 윈록 Herbert E. Winlock에게 의뢰하여 다섯 번 추가적으로 탐사하게 했으나 이에 대한 공식 보고서는 아직 출간되지 않았다. 후일에 에밀 바레즈가 이집트 고대학회의 의뢰를 받아 허버트 윈록의 작업을 정리하여 1942년 출간하였다.
1961년부터 이집트 고고학 최고 평의회가 바르샤바 대학 고고학과와의 협업으로 하트셉수트 여왕의 장제전을 복구, 복원하였다.
건축과 정원
건축
나일강변에 별도로 건립된 계곡 신전과 연장 약 일 킬로미터의 대로로 연결되어 있었다. 대로 양변에 스핑크스가 정렬되어 있었으며 계곡 신전에서 다시금 강 건너편의 카르나크 신전을 마주보는 형상으로 건설되었다.
기존의 신전 건축 양식, 즉 필론 – 중정 – 필론 – 중정 – 다주실(多柱室) 로 연계되는 양식에서 벗어난다. 필론을 세우지 않고 그 자리에 횡으로 길게 연결된 열주실 (Portico)로 대체했으며 그 위로 삼단의 테라스를 두었다. 각 테라스는 중앙에 설치된 긴 램프를 통해 서로 연결된다.
정원
나일 강에서 대로를 따라 올라오면 우선 대형 광장에 진입하게 된다. 이 광장에는 멘투호테프 2세의 장제전과 마찬가지로 중앙축을 중심으로 양쪽에 정원을 두었다. 이 정원의 핵심을 이루는 것은 좌우 대칭으로 축의 양변에 배치된 T자형 연못이다. 연못은 각각 길이 10 미터, 폭은 좁은 곳이 2.6미터 가장 넓은 곳이 6 미터이다. T자 형은 운하를 본뜬 것으로서 폭이 좁고 긴 구간에 식물을 심고 기르기가 용이하다. 점토로 채워졌으며 파피루스의 흔적이 발견되었다.
연못의 양쪽으로 모두 66개의 구더이가 발견되었다. 구덩이 깊이는 3미터이다. 어떤 식물을 심었었는지는 아직 밝혀지지 않았다. 다양한 식물종의 흔적이 발견된 것으로 미루어 보아 하트셉수트 시대 이후에 이 정원이 여러 용도로 이용되었을 가능성이 있다.
이 정원에서 푼트에서 수입해 온 몰약을 얻는 코미포라 Commiphora 속의 나무를 재배했을 것이라 추정된다. 2층 테라스의 푼트홀에 푼트라는 나라에서 코미포라 나무 약 30 그루를 수입하는 장면이 묘사되어 있기 때문이다.
연못에서 발견된 자기 화분에 파피루스 뿌리가 남아 있는데 이로 미루어 보아 이 곳에서 연못 수렵장면을 재현하는 의식을 치렀을 것으로 보고 있다. [1]Haase 2011, p. 192 파피루스 숲에서의 수렵 장면은 네크로폴리스의 수호 여신 하토르를 기리기 위한 의식으로 자주 치러졌다. 하트셉수트 여왕의 장제전에는 하토르 여신을 모시는 사당이 별도로 마련되어 있다. (아래 하토르 여신 신당 참조)
이집트 석묘를 장식하는 그림이나 사자의 서에 파피루스 사이에서 암소의 형상을 하고 나타나는 하토르 여신의 모습이 자주 묘사되어 있다.
2층 테라스 앞의 광장에도 정원을 조성하려는 계획이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몇 개의 구덩이가 간헐적으로 발견되었다. 다만 이 구덩이가 하트셉수트 여왕 대의 것인지는 아직 논란의 대상이 되고 있다. [2]Haase 2011, p. 192
열주실, 테라스, 신당과 사당
가장 하부 열주실 양쪽 가장자리 기둥에 각각 거대한 하트셉수트 여왕의 입상이 서 있었는데 현재는 우측에 하나만 남았다. 중앙의 램프에 의해 열주실이 각각 죄우로 구분된다. 왼쪽의 열주실을 오벨리스크 홀이라 한다. 내부의 벽에 아쑤안에서 오벨리스크를 제작하는 과정이 묘사되어 있기 때문이다. 오른쪽의 열주실은 수렵홀로서 여왕이 물새와 물고기를 사냥하는 장면이 묘사되었다.
상부 테라스에 다시금 열주실이 횡으로 길게 연속되어 있다. 이 역시 램프에 의해 좌우로 나뉘며 왼쪽이 푼트홀로서 유명한 푼트 원정 장면을 상세히 묘사했다. 오른 쪽 열주실은 소위 탄생홀로서 여왕의 탄생 설화가 묘사되었다. 푼트 홀의 좌측에는 하토르 여신의 신당이 별도로 자리 잡았으며 탄생홀 우측에는 아누비스 신당이 있다.
여기서 또 다시 램프를 따라 올라가면 마지막 테라스에 당도하는데 이곳의 열주실은 사방을 이중의 주랑으로 두르고 중앙에 포장된 마당이 배치되어 있다. 정면 입구의 26개의 기둥 앞에 각각 여왕의 입상 26기가 서 있었다. 그중 일부는 지금도 잘 보존된 상태로 볼 수 있다. 이 곳의 벽화에는 여왕이 의식을 주제하는 모습이 묘사되어 있었으나 후대의 투트모세 3세가 부조로 덮씌웠다.
주랑을 통과하여 면 중정 (13)으로 진입하게 되며 이곳을 곧장 통과하면 뒤편에 깊숙이 자리잡은 아문 신의 성역 (14)에 당도하게 된다. 우측으로 가면 태양신의 신당 (15)이 자리 잡고 있으며 좌측에는 하트셉수트 여왕과 부왕 투트모세 1세의 신당 (16)이 있다.
하토르 여신 신당
이층 테라스의 가장 왼쪽에 자리잡은 하토르 여신의 신당은 주랑 현관을 통해 진입하게 된다. 네 개의 기둥과 좌우 벽이 서 있는 구조로 이루어져 있으며 이 역시 표면이 모두 부조로 장식되어 있으며 내부에 전실 Vestibule이 자리 잡고 있다. 벽에는 하토르 여신이 암소의 형상으로 묘사되어 있으며 후면 벽에는 하토르 암소가 하트셉수트 여왕의 손을 핥고 있는 장면이 그려졌다. 여기서 성역 내부로 진입하면서 하토르 의례를 행하는 장면과 함께 하트셉수트 여왕의 문으로 표시되어 있었으며 하토르 여신을 하트셉수트 여왕의 어머니로 정의하는 텍스트가 쓰였던 것을 후에 투트모세 3세가 모두 지우고 자신의 것으로 대체했다. 그 외에도 하토르 여신의 신당 속의 모든 그림이나 텍스트를 투트모세 3세가 고친 흔적이 있다.
아누비스 신당
아누비스는 망자를 미라의 형태로 만들어 사후세계로 인도하는 신이며 인체에 자칼의 머리 형상을 하고 있으며 그 역할로 인해 분묘 벽화에 수없이 등장한다. 아누비스 신당의 입구는 모두 12개의 기둥으로 이루어진 주랑 현관으로 조성되었으며 내부의 벽화는 모두 아누비스 혹은 세케르 (죽음을 관장하는 여러 신 중 가장 오래된 신) 등에게 공양하는 장면들이 묘사되어 있다. 하트셉수트 여왕과 투트모세 3세의 상이 공존하는데 여왕의 상은 대부분 훼손되었다.
태양신 성역
세번 째 테라스에서 전실을 통하여 도달한다. 중정형으로 조성되어 있으며 거대한 제단이 마련되어 있다. 전실의 벽에는 일몰에 해가 져서 일출에 다시 올라오는 장면이 묘사되어 있으며 중정의 벽은 아무 장식이 없다.
하트셉수트 사당
아문 신 성역 다음으로 큰 사당이다. 둥근 천정을 얹었으며 입구에서 마주 보이는 곳에 화강석 위비 僞扉가 하나 서 있다. 역시 전실을 통과해서 본 성역으로 진입하게 되어있는데 전실과 성역의 벽에 장식되어 있던 그림들이 모두 훼손되었다. 여기서 하트셉수트의 아버지 투트모세 1세의 사당으로 연결된다.
아문신 성역
거대한 화강석 문을 통과하면 아문신의 첫 번째 내실에 도달한다. 이곳에는 하트셉수트 상이 2구 서 있으나 머리가 파괴되었다. 2구가 더 있던 것으로 전해지나 보존되지 않았다. 그 다음 내실이 계곡 축제 행렬의 마지막 목적지로서 이곳에 아문 신의 상을 모셨다. 둥근 천정을 앉혔으며 사방 벽에 네 개의 벽감이 있다. 벽에는 두 개의 창문이 뚫려 있어 새벽에 첫 햇살이 성역의 아문 신 상을 비추게 되어 있다. 측면으로 각각 작은 내실들이 더 마련되어 있으며 아문신과 투트모세 1세의 모습과 제례를 치르는 장면들이 묘사되어 있다.
참고 문헌:
- Dieter Arnold: Der Tempel des Königs Mentuhotep von Deir el-Bahari. von Zabern, Mainz 1974–1981
- Michael Haase 2011: “Tempel und Gärten”, in: Christian Tietze, Ägyptische Gärten, Arcus-Verlag Weimar
외부 링크:
© 고정희의 서양정원사 백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