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1쪽: 오이일까 참외일까 – 투트모세 왕의 식물원

투트모시스 3세 역시 소아시아 전쟁 중 식물들을 수집했다. 수집된 식물 대부분이 이 전쟁에서 살아남지 못했지만 투트모시스 3세의 화가들이 그림으로 그려 남겼으며 후에 카르나크의 아문 신전에 있는 한 방의 벽에 부조로 새겨 넣었다. 이 방은 소위 ‘투트모시스 왕의 식물원’이란 별명으로 불리기도 하는데 아마도 세상에서 가장 오래된 초본서일 것이다. (21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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투트모시스 또는 투트모세 3세의 식물원은 엄밀히 말하자면 식물’실’The Botanical Chamber at Karnak. 이라는 게 옳을 듯 합니다. 투트모세 3세는 여러 번 언급되었던 하트셉수트 여왕의 의붓아들이자 공동 통치자였습니다. 20년이 넘도록 여왕의 그늘에 가려 군사훈련만 했다고 합니다. 그러다가 여왕의 사후에 통치권을 장악한 뒤 정복 전쟁을 시작합니다. 투트모시스 3세 치하에 이집트의 영토가 최대로 확장되었고 매우 부강했다고 합니다. 정복왕, 이집트의 나폴레옹 등으로 불리죠.

후기에는 소아시아에서 동식물을 가지고 와서 이들을 기르게 했을 뿐 아니라 카르나크 신전을 크게 증축하여 거대한 연회장을 만들고 그 한쪽에 별도의 방을 할애하여 동식물을 부조로 새겨넣게 합니다. 그 부조들이 벽에 새겨져 있는 방을 후세 사람들이 투트모세 3세의 식물원 혹은 카르나크 식물실이라고 합니다. 카르나크 신전 제일 끄트머리에 있습니다. 방이라고 하나 지붕이 없는 반 열린 회랑이고 매우 비좁습니다. 아래 첫번 째 사진에서 볼 수 있는 것처럼 중앙에 파피루스 기둥이 있고 그 주변에 낮은 담장이 둘려 있는데 이 담장 네 곳을 모두 동식물 부조로 채운 겁니다. 식물원이라고 기대하고 갔다가는 다소 실망합니다. 그러다가 부조를 하나씩 들여다 보면 다시 감탄사하게 되고요. 식물과 동물이 매우 정교하고 세밀하게 묘사되어 있습니다.

프랑스의 Nathalie Beaux 박사가 1990년 부조에 묘사된 식물과 동물을 식별하여 그것으로 학위 논문을 썼습니다.  벽화 식물 중 86%를 식별하는 데 성공했다고 합니다. 이후 논문이 책으로 출간되었는데 너무 희귀한 자료여서 그런지 책 값이 엄청 비쌉니다(107 유로, 십 여만원). 중고 책은 더 비싸고요. 그림의 떡이 되어 몹시 갑갑하던 중 이집트에 갔다가 우연히 다른 자료를 구했습니다.

Ägyptischer garten3

카르나크 신전의 식물실 부조 벽화를 소개한 CD ROM cover. Center for Documentation of cultural and natural Heritage (CULNAT)

홍해 연안에 엘 구나El Gouna라는 휴양도시가 있는데 거기에 베를린 공대 캠퍼스가 하나 나가 있습니다. 사막의 물과 에너지를 연구하는 곳이지요. 거기 볼 일이 있어 들렸는데 그 바로 옆에 알렉산드리아 도서관 지부 건물이 있기에 거기를 또 기웃거렸죠. 시청각실에서 이집트 문화에 대한 다큐 영화를 보고 나오다 보니 입구 옆의 자료 거치대에 CD가 하나 먼지를 뒤집어쓰고 있었습니다. 제목이 눈에 바로 튀어 들어오더군요. The botanical Chamber at Karnak! 이것이 어인 횡재인가 싶어 문의해 보니 구입이 가능하다고 해서 바로 샀습니다(10유로). 알고보니 이집트 국립 자연/문화재 진흥원에서 만든 자료로 포맷은 CD ROM. 위의 나탈리 보 박사가 식별한 식물 44종, 조류 21종, 포유류 2종과 곤충 1종을 소개하고 있습니다. 자료 중 어떤 것도 캡처하여 쓰는 것을 엄격히 금하고 있어 permission 요청 메일을 보내 놓았습니다. 답장은 아직 못 받았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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Gib The botanical Chamber at Karnak. © jeonghi.g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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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조 상세.  Nathalie Beaux 박사가 파란수련, 흰수련, 고호로, 보리 등을 식별해 냈다고 함. © jeonghi.go

CD ROM을 보면서 식물을 부조 사진과 하나씩 대조해 보기 시작했습니다. 이집트 식물도 아니고 소아시아에서 가지고 온 것이므로 대부분 낯선 식물들입니다. 한국 생물종 정보 시스템에 나와 있지 않은 그런 식물들이죠. 그중 오이, 보리, 포도, 수련 등 익숙한 것도 물론 있습니다.  그러다가 문제가 하나 나타났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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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번: Cucumis melo L. var. chate (Cucumber?) © jeonghi.go

위의 사진에 2번으로 표시된 길쭉한 열매들이 Cucumis melo L. var. chate로 정의되어 있고 그 옆에 Cucumber라고 영명을 달았습니다. 문제는 Cucumis melo L. var. chate가 오이가 아니라 멜론입니다. 학명과 영명이 일치하지 않는 거죠. 뭐 종종 있는 일입니다. 다만 이 경우 어떤 것이 맞는 건지 알아내야 하니 머리가 아파집니다. 기다란 모양새로 보아서는 오이같기도 한데 소아시아에서 가져온 것이니 멜론일 확률이 더 높아보입니다. 터키 채소상점에 가면 기다란 녹색의 멜론이 있기는 한데 굽어진 것은 못 본 것 같습니다. 그러다가 인터넷에서 아래의 사진을 발견했습니다. 오이와 호박을 모아 놓은 것 같지만 모두 Cucumis melo L. var. chate, 즉 멜론의 여러 종류라고 합니다. 그렇다면 위의 벽화의 2번을 멜론으로 봐도 되겠지요? 그래도 아직 확신은 서지 않네요.

나머지 식물에 대해서는 다음에…

8-Cucumis melo L._spain

멜론의 다양한 형태. 호박같고 오이같은데 모두 멜론의 일종이라고 함. © Antonio Bruno

1-Egypt_El gouna TU Campus

El Gouna에 위치한 베를린 공대 캠퍼스. © jeonghi.go


© 고정희의 홉하우스 읽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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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 footnote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