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1쪽: 푼트의 미스터리 또는 고고학자들에게 갈채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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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트셉수트 여왕 장제전에 묘사되어 있는 푼트의 풍경과 주거형태. 다리 위에 세운 종 모양의 둥그런 집에서 살았던 것 같다. © jeonghi.go

고고학자들의 집념과 인내심, 끈기가 아니었다면 우리는 지금 고대의 정원에 대해 아는 것이 거의 없을 겁니다. 우리가 지금 고대 정원에 대해 아는 것의 대부분은 정원사 연구가들의 업적이 아니라 여러 세대에 걸친 고고학자들의 집념어린 발굴작업, 기록 해독 작업 덕분입니다.

예를 들어 본문 20~21쪽에 보면 “기원전 1470년경 제 18왕조 때 하트셉수트 여왕이 소말리아에서 유향나무의 분을 떠서 들여왔다.”는 대목이 있습니다.  우리는 이런 대목을 읽을 때 당연하다는 듯, 아 그런가 하면서 넘어갑니다. 그런데 실은 이 간단한 문장 뒤에는 여러 세대에 걸친 여러 고고학자와 이집트학 연구가들의 집념어린 노력이 숨어 있습니다. 나는 고고학에는 문외한이지만 출처를 찾아다니는 과정에서 이들과 자주 마주치게 됩니다. 문헌을 통해 이들의 고된 작업을 엿보는 거죠. 요즘은 유튜브에 발굴 과정을 담은 다큐멘터리 영상들이 많이 올라왔기 때문에 큰 도움이 됩니다.

스위스의 고고학자 앙리 에두아 나빌 Henri Édouard Naville이 1893-1896년 사이에 하트셉수트 여왕의 장제전을 발굴하면서 하트셉수트 여왕의 존재 자체가 알려지게 됩니다. 데이르 엘 바하리라고 하여 지금은 이집트 관광의 가장 중요한 볼거리가 된 곳입니다. 그러나 당시 장제전을 발굴하는 순간 “어 하트셉수트 여왕의 장제전이네” 했던 것은 아닙니다. 그때까지 이집트 학자들에게도 하트셉수트 여왕의 존재가 알려지지 않았었으므로 나빌 박사는 우선 장제전 벽을 가득 채운 상형문자와 그림들을 해독해서 누가 언제 누구를 위해 지은 건물이었나부터 확인해야 했죠. 고대 이집트 사람들이 매우 꼼꼼하게 기록을 남긴 것이 그나마 다행이랄까요? 나빌 박사는 하트셉수트라는 왕의 이름이 자주 등장하는데 이상하게도 문법상 여성으로 묘사됨을 알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하트셉수트가 여왕이었다는 결론을 내렸으나 왜 역사적으로 알려지지 않았는지 어떤 이유로 여왕의 존재가 비밀에 붙여졌었는지도 알아내야 했습니다. 결국 여왕의 의붓아들 투트모세 III세가 여왕의 존재를 역사에서 지웠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습니다. 이후 여왕은 역사에서 사라지게 됩니다.

나빌 박사는 1894~1898년 사이에 장장 7권이나 되는 장제전 발굴 보고서를 발표했습니다. 이 보고서는 그의 업적 중 가장 중요한 것으로 평가되고 있으며  나중에 장제전을 복원하는데 귀중한 기초자료가 되었습니다.

하트셉수트 여왕의 장제전은 삼단의 거대한 테라스 형으로 조성되어 있는데 그 중 첫번째 테라스의 홀 하나 전체를 가득 채운 부조 벽화가 매우 특이했습니다. 푼트 Punt라는 곳으로 무역 원정대를 보냈던 일을 세세히 묘사한 것이었습니다. 그래서 지금은 이 홀을 푼트홀이라고 부릅니다. 그때까지만 해도 사람들은 푼트가 전설 속의 나라라고 생각했었죠. 마치 젖과 꿀이 흐르는 나라에 대한 전설처럼 황금의 나라, 보물의 나라로 알려졌었습니다. 그런데 벽화들의 묘사가 너무 리얼하고 세부적이었고 하트셉수트 여왕의 실제 업적을 묘사하는 것이 분명한데 전설 속의 장면을 묘사했을 까닭이 없었습니다. 다만 벽화기록 어디에도 푼트의 지리적 위치에 대한 설명이 없었습니다.

그때부터 푼트는 어디에 있을까? 라는 화두에 대답을 찾는 것이 이집트학 학자들의 숙제가 되었습니다. 2011년에 어느 정도 윤곽이 잡힐 때까지는. 그 얘기를 곧 하려합니다. 우리에게 푼트가 왜 그리 중요할까? 이렇게 물을 수도 있을 것입니다. 글쎄요. 별로 중요하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푼트에서 유황나무를 분 채로 떠가지고 오는 장면이 묘사되어 있기 때문에 그냥 넘어갈 수 없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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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트셉수트 여왕의 장제전, 푼트홀 벽화의 일부. 유황나무를 산채로 분을 떠서 운반하는 장면. Photo: kairoinfo4u, via flickr, License: CC BY-NC-SA 2.0

독일의 에른스트 카일 출판사에서 발행 된 정원잡지에 실린 삽화, 1886년. Wikimedia Commons, Public Domain


본래 푼트에 대한 얘기를 하려고 이야기를 시작했는데 그보다 먼저 해결해야 할 것이 생겼습니다. 위의 그림 때문입니다. 이 그림은 독일 라이프치히에서 1886년에 발행된 “가르텐라우베 Gartenlaube”라는 정원잡지에 실린 삽화입니다. 벽화를 카피한 것이 틀림없으며 그림 설명에도 그리 쓰여 있는데 문제는 어떻게 하여 나빌이 장제전을 발굴하기 십년 전에 이 삽화가 먼저 그려지게 되었는가라는 점입니다. 미스터리하지요? 우선 이것부터 추적해서 밝혀보려 합니다.


© 고정희의 홉하우스 읽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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