운향 Ruta graveolens

수도원 약초원에서는 세이지 옆에 운향을 나란히 심는 경우가 많았다. 이 둘은 이상한 짝을 이룬다. 세이지가 좋은 것의 대표라면 운향은 나쁜 것을 퇴치하는 데 대표주자다. 이는 자신이 독성을 가지고 있고 성질이 무척 강한 식물이기 때문이다. 운향은 자잘한 노란 꽃이 피며 덤불처럼 번지는 반관목성 식물이다. 본래 지중해의 바위틈에서 자라던 식물이지만 워낙 강한 식물이라서 북쪽 추운 지방에서도 너끈히 견딘다.

운향에서는 햇빛 같기도 하고 바다 같기도 한 향이 난다. 그래서 향수의 재료로 쓰인다. 에테르 오일을 아주 많이 함유하고 있어 잎을 따서 햇빛에 비추어 보면 에테르 주머니들이 보일 정도이다. 민감한 사람은 만지기만 해도 가렵거나 빨갛게 부어오르니 조심해야 하고 임산부가 먹으면 낙태할 확률이 높아 더욱 조심해야 한다.

운향. Ruta graveolens. Photo: Joerg Hampel. Source: Wikimedia Commons. License: CC BY-SA 3.0 de

운향은 고대 로마시대에도 많이 썼던 식물이다. 부엌에서 양고기등 냄새가 강한 고기를 요리할 때 썼으며 치즈를 갈아 운향과 함께 섞어 먹기도 했다. 아주 소량을 양념으로 쓰면 입맛을 돋우고 그라파라는 이태리 독주에 넣어 향을 가미하기도 했다. 여러모로 다양하게 쓰였지만 해독제로 가장 유명했다. 뱀에 물렸을 때, 독버섯을 먹었을 때, 전갈에 물렸을 때, 혹은 미친개에게 물렸을 때 두루 쓰였다. 그리고 페스트가 번졌을 때 이 운향즙을 식초에 섞어서 온 몸에 바르면 예방되었다고 해서 이 식초를 페스트식초라고 한다. 페스트식초에는 운향 외에도 세이지 라벤더 로즈마리 백리향 그리고 마늘을 같이 넣었었다. 17세기, 유럽에 페스트가 다시 번졌을 때 마르세이유의 사인조 도둑이 이 페스트식초를 몸에 바르고 죽은 사람들 집에 들어가 귀중품을 훔친 사건이 있어 유명해졌다. 그렇기 때문에 운향은 악귀들을 물리치는 데 썼다. 고딕 성당의 문틀에 운향의 문양을 그려 넣어 악마가 성당 문틀을 넘지 못하게 했다.

레오나르도 다 빈치는 운향을 늘 가지고 다니며 소량을 섭취했다는데 눈이 좋아지기 때문이었다고 한다. 지금도 동종요법에서는 눈의 염증을 치료하는 데 운향을 쓴다. 그러나  여러 가지 부작용을 우려하여 지금은 운향을 약초로 거의 쓰고 있지 않다.

발라프리드 슈트라보는 운향의 가치를 높이 평가했던 것 같다. 그럼에도 그의 시에서 운향의 어두운 면을 지적하는 것을 잊지 않았다. 그림자를 드리운다는 말을 두 번이나 썼고 바람의 신음소리를 전한다고도 했다. 그리고 깊이 감춰진 독을 물리치고 나쁜 즙을 정화시킨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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