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21 쪽: 이집트 벽화 정원은 내세의 정원

이집트벽화 정원을 이해하려면 그들의 독특한 내세관을 이해해야 합니다. 결론부터 얘기하자면 이승의 삶은 짧고 내세는 영원하다고 믿었습니다. 뭐 특별할 것도 없다고요? 어느 종교에서나 그리 말하기는 하죠. 그런데 다른 점이 있습니다. 여기서 영원하다는 말은 단순히 상징적인 것이 아닙니다. 영혼만 남아  우주를 떠 돈다는 뜻도 아닙니다. 실제로 저 세상에서 다시 태어나 백만년을 산다고 믿었던 것 같습니다. 이승에서의 짧은 삶은 내세에서의 긴 삶을 준비하는 과정이라고 보았습니다. 그래서 태어나자마자 내세의 삶을 준비하기 시작했습니다. 백만년을 살려면 우선 신체가 필요하니 미라를 만들었고 백만년 동안 살 집이 필요하니 서쪽의 돌산을 깊이 뚫고 들어가 튼튼한 석묘를 지었던 겁니다. 그래서 석묘를 백만년의 집이라고 부르기도 합니다. 그런데 집만 있으면 되는 것이 아니라 백만년을 먹고 살아야 합니다. 지극히 논리적이죠. 귀신으로 산다면 모를까 신체가 있으니 먹고 살아야 합니다. 생업이 필요하겠지요. 이승에서 무엇을 했는지는 중요하지 않습니다. 내세에선 모두 평등하게 농사를 지어 먹고 산다고 믿었습니다. 그래서 밀밭, 과수원, 연못, 포도밭 등을 바리바리 챙겨가지고 간 겁니다. 그걸 벽에다 그려서 설명한 것이고요. 이만저만해서 이러저러한 것을 챙겨가노라.

석묘를 가득 채운 벽화는 일종의 다큐멘터리 스토리 보드입니다. 우선 이승에서의 삶을 묘사하여 신들에게 정직하고 착하게 살았음을 고하는 겁니다. 그 다음 이승에서 저승으로 건너가는 아홉 단계의 시험 과정을 그렸습니다. 백만년을 살러 가는데 그 정도의 이민절차는 감수해야겠지요. 불의 시험, 물의 시험 등등 어려운 시험을 통과해야 합니다(바로 이 과정을 나중에 페리메이슨이 받아들여 그들의 입문과정으로 만듭니다).

생전에 열심히 공부하긴 했지만 그래도 혹시나 통과하는 방법을 잊었을까봐 두루마리에 써서 석관에 넣어가지고 간 경우도 있습니다. 무사히 저쪽에 도착하면 아름다운 누트 여신이 돌무화과 나무에서 나타나 과일과 술을 주며 환영해 줍니다. 그 때부터 내세의 삶이 시작되는 겁니다.  낮에는 밭을 갈고 저녁엔 정원의 시원한 나무 그늘에 앉아 휴식을 취하고… 백만년을 아무 근심없이 사는 겁니다.

자세한 내용은 환경과 조경에 연재한 ⌈100 장면으로 재구성한 조경사⌋ 중에서 #72~74 이집트 정원편을 참고하시면 될 것 같습니다[2016년 2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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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의 그림은 어느 서양 조경사 책에서도 볼 수 있는 그림입니다. 네바문이라는 세곡 관리인의 석묘에서 발견된 정원입니다. 오른 쪽 위에 누트 여신이 돌무화과나무에서 나타나 술과 과일을 주며 환영하는 장면이 그려져 있습니다. 이 여인이 누트 여신이라는 것과 환영하고 있다는 것을 어떻게 알았냐고요? 그림에는 잘려 있지만 윗 부분에 그렇게 설명이 써 있기 때문입니다. 내세를 관장하는 여신 누트가 입구에 나타난 걸 보니 여긴 내세가 틀림없겠죠.

이집트 벽화에 그린 정원 그림이 실은 내세의 정원을 묘사한 것이라는 사실은 비교적 최근에 밝혀졌습니다. 정확히 말하자면 2008년 대영박물관의 Richard Parkinson이 “The Painted Tomb-chapel of Nebamun이라는 책을 내서 소상히 설명합니다. 아직은 보편적으로 널리 알려지지 않았을 겁니다. 그래서 대부분의 서양 조경사 책에서 벽화의 정원이 실존하는 정원이라고만 설명하는 겁니다.  물론 이승에서 소유했던 정원의 모습을 본 뜨긴 했을 겁니다. 그러나 소수의 세력가들을 제외한다면 정원을 소유했던 사람이 많지 않았을 겁니다. 나일 강변에 형성된 좁은 녹지에서만 생존이 가능했으니 농경지로 쓰기에도 땅이 넉넉치 않았을 겁니다.  석묘는 서민들도 만들 수 있었으니 내세에 이런 정원이 있었으면 좋겠다는 이상형 정원을 그리지 않았을까요?


나일강을 따라 배를 타고 내려가 보면 어째서 그리 독특한 이집트의 내세관, 또는 세계관이 형성되었는지 이해가 됩니다. 이집트의 경관은 지극히 단순합니다. 나일강이 단 하나의 동맥을 이루고 흐르며 좌우에 좁은 녹색 띠를 펼쳐놓았고 녹색의 띠 너머에는 불모의 돌산과 사막이 끝없이 펼쳐집니다. 나일강 양변이 다 그렇습니다. 며칠을 가도 똑같은 풍경이 계속됩니다. 그들의 세상은 나일강, 오아시스, 불모의 사막으로 깨끗이 삼분된 겁니다. 이승에서의 삶은 거의 좁은 녹지와 나일강 위에서 이루어졌을 겁니다. 바로 눈앞에 있지만 다가갈 수 없는 사막은 죽은 자들의 세상이었습니다. 산자와 죽은 자의 세상이 구분되긴 했지만 항상 눈앞에 같이 존재했습니다.

나일강 위에 떠서 보면 이런 삼분된 세상의 동쪽경계와 서쪽 경계가 모두 한 눈에 들어옵니다. 세상의 이쪽 끝과 저쪽 끝이 한 눈에 다 잡히는 거죠. 그런 나라는 어디에도 없습니다. 이집트에 가시게 되면 배를 타고 나일강을 따라 내려가면서 좌우를 한 번 살펴보길 추천합니다. 진기한 체험이 될 겁니다. 특히 우리처럼 수십만 개의 산봉우리로 이루어진 복잡한 지형에서 살아 온 사람들에겐 더욱 그렇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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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일강 우안(동쪽). 멀리 보이는 산등성이는 푸른 산이 아니라 불모의 모래산이다. 이집트 어디에도 푸른 산은 없다. © jeonghi.go

나일강 우안(동쪽). 멀리 보이는 산등성이는 푸른 산이 아니라 불모의 모래산이다. 이집트 어디에도 푸른 산은 없다. © jeonghi.g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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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일강 좌안(서쪽). 배를 타고 나일강을 따라 내려가면 좁은 녹색의 오아시스 뒤에 사막이 항상 버티고 있음을 느낄 수 있다. 이런 정경이 거의 변하지 않고 계속 진행된다. 그들의 세상은 나일강과 오아시스와 불모의 사막으로 확연히 삼분됨을 알 수 있다. 고대 이집트 인들은 저 돌산을 뚫고 들어가면 영원한 삶이 약속된 내세가 있다고 믿었다. 죽어서만 갈 수 있는 곳이며 밀밭, 포도밭, 향기로운 꽃밭과 시원한 물이 가득찬 연못을 챙겨가지고 가서 백만년을 살았다.  © jeonghi.go


© 고정희의 홉하우스 읽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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