타지마할 Taj Mahal

인도 타지마할. 1890년 사진. Source: Library of Congress. License: public domain.

타지마할Taj Mahal은 17세기 지금의 인도 아그라에 조성된 영묘로서 건축과 정원의 복합체이다.

극찬의 대상 타지마할


무굴 제국의 5대 황제 샤 자한이 총애하던 황비 뭄타즈 마할의 이른 죽음을 애도하여 지은 것으로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건축물이라는 명성을 가졌다. 1920년대에 타지 마할을 여러 차례 방문한 정원 작가 마리 루이제 고트하인은 “수없이 말을 들고 여러 번 보았어도 볼 때 마다 새롭고 경이롭다. 이 느낌을 표현할 말이 없다. 인류 문화의 클라이맥스인 것 같다.” 1)Gothein 1926; 72 인도의 시성 타고르는 “시간의 뺨에 흐르는 눈물”이라 묘사했다. 독일 사학자 크리스토프 클라크는  “시간이 멈추어 공간으로 변한 것”이라 말하기도 했다. 덧붙이자면 1904년에 아그라와 타지마할 매뉴얼Handbook of Agra and the Taj이라는 책을 낸 E. B. Havell이 말하기를 “타지마할이 탄생하던 순간은 한 민족 전체의 천재성이 최고의 건축이라는 형태로 나타난 것이며 예술이 한 시대의 키워드가 되었다.” 고도 했다.2)Havell 1904; 72

구조


이렇게 극찬의 대상인 타지마할은 1631년에 시작하여 1650년을 전후하여 준공된 것으로 보인다. 준공 년도에 대한 정확한 데이터가 없어 여러 정황으로 보아  그 즈음에 완성된 것으로 해석하고 있다.

영묘 건물의 평면도

타지마할은 유마나 강을 등지고 남북 방향으로 길게 조성되었으며 남쪽 정문에서 북쪽 끝에 서 있는 영묘까지 560m, 폭은 300m의 규모이다. 북쪽 강가에 5미터 높이로 100m x 100m의 거대한 대를 쌓고 그 위에 백색의 영묘 건물을 앉혔다. 돔을 입힌 영묘의 높이는 약 58m이며 평면은 56m x 56m이다. 돔의 높이만 약 30m, 최대 직경이 33.53m로서 건물에 비해 돔이 매우 큰 편인데 그 덕에 부상하는 듯한 느낌을 준다. 평면은 수직 정방형이 아니며 복잡한 문양으로설계되었다. 대의 사방 모서리에 40m 높이의 미나레트를 배치했다. 건물 몸체는 물론 돔과 미나레트도 붉은 점토로 지은 뒤 흰 대리석으로 외피를 입혔다. 미나레트는 완전히 수직이 아니라 바깥으로 살짝 기울었는데, 이는 우선 멀리서 보았을 때 원근 현상에 의해 똑바로 보이도록 하기 위함이며 둘째는 지진이 발생할 시 바깥쪽으로 무너지게 하기 위해서 였다.

돔 건물 내부에 팔각형의 묘실이 있고 그 안에 뭄타즈 마할과 샤 자한의 석관이 안치되어 있다. 그러나 모두 가묘이며 실제는 지하에 안치되었다. 즉 타지마할을 짓는 내내 뭄타즈 마할은 이미 지하에 깊이 잠들어 있던 상태였다. 팔각형 묘실 벽은 흰 대리석을 세밀하게 쪼아 만들었으며 관 역시 흰 대리석으로 제작했는데 이탈리아 석공예 기술 “피에트라 두라Pietra dura“를 도입하여 보석으로 식물 문양을 새겨 넣었다. 그 결과 관이 큰 보석 상자처럼 보인다. 입면 파사드도 피에트라 두라 기법으로 장식하여 백합, 장미 등의 꽃 문양을 새겨 넣고 테두리에는 코란의 글귀를 새겼다.

모굴 제국 전역에서 모인 2만 명의 예술가, 조각가, 석공이 작업에 참여했으며 여러 명의 건축가가 설계와 공사 지휘를 맡았다. 건축 자재를 운반하기 위해 약 천 마리의 코끼리가 동원 되었다.

타지마할은 선조 자한기르 황제의 영묘와 우마얀 황제의 영묘 건축 요소를 가져와 완벽하게 융합한 것으로 해석되고 있다. 즉 우마얀 황제 영묘에서 대 위에 세운 본 건물의 건축을, 자한기르 황제의 영묘에서 4개의 미나레트를 가져와 합친 형상이다.

부속건물


구역 전체를 붉은 벽돌 담장으로 두르고 일정한 간격으로 탑을 세웠다. 역시 붉은 돌로 만든 주 출입문은 남쪽에 위치한다. 진입 공간이 매우 넓은데 동서로 부출입문이 있다. 영묘 건물 양쪽에서 두 채의 건물이 보좌하고 있다. 그중 서쪽, 즉 메카 방향의 건물은 모스크로서 세 개의 작은 돔을 이고 있고 이와 똑같이 디자인 된 동쪽 건물은 원래 영빈관이었다. 현 용도는 알 수 없다.

정원 – 차바그

영묘의 핵심은 정원에 있다. 즉 정원이 주 무대이고 그 안에 묘실을 앉히는 개념이다. 담장의 사방 모서리에 탑을 세웠고 중앙 횡축 양 끝에 누각을 두었다. 타지마할의 정원은 정확하게 사방 296.31m x 296.31m 의 완벽한 정사각형이다. 전형적인 차바그, 즉 사분원으로 구성되었으며 수로축이 교차하는 지점에 연못이 조성되었다. 정문과 영묘를 연결하는 중앙 축 양변에 사이프러스를 열지어 심었다. 모두 16개의 파르테르(정원 구획)로 나뉘는데 중앙의 파르테르는 잔디밭이고 나머지는 숲이 우거져 본래의 구조를 알아보기 어렵다. 파르테르의 우거진 숲은 본래 의도한 것이 아니라 여겨지지만 타지마할 정원 뿐 아니라 무굴 제국 정원의 식재 개념, 파르테르 조성 방식 등에 대한 연구가 아직 부족하여 확실하게 말하기 어렵다.

파르테르로 나누는 것과 물이 높이 솟구치는 분수를 설치하는 것이 무굴 정원의 특징인데 이는 본래 이슬람 정원의 원칙에서 벗어나는 것이다. 초기 이슬람 정원에서의 물은 파라다이스의 샘과 강을 상징하는 것이므로 샘물처럼 솟게 하는데 그쳤다. 분수를 높이 솟구치게 하는 것은 이 시기에 이미 시작된 이탈리아 르네상스 정원의 영향인 것으로 추정된다. 무굴 제국은 비교적 자유로운 분위기였으므로 비잔틴을 통해 활발히 교역했던 이탈리아 등 타 문화권과 서로 식물을 교환하고 영향을 주고받았다.

파르테르 식재 방식은 바부르 황제의 묘사나 당시 출판된 원예서의 미니어처 그림 등을 통해 어느 정도 짐작할 수 있다. 파르테르에는 주로 향기로운 초화류를 심었다. 그러나 정원의 규모가 넓어지면서 새로운 그에 부합하는 새로운 식재 방식도 함께 고안했는지의 여부는 향후 연구해야 할 과제에 속한다. 아래에 서술하게 되는 마텝 바그 정원에서 어느 정도 당시의 식재 원칙을 유추할 수 있다.

 

타지마할 정문과 정원, 영묘, 그리고 그 뒤에 강이 보인다. 숲 사이로 담장과 담장 중간에 세운 누각과 모서리의 부속 건물(본래 객사였음.)을 알아볼 수 있다. Photo: Ujjwal goel2005, Public domain.

 

이슬람의 영묘 문화

영묘는 코란에서 약속한 사후 세계의 파라다이스에 근접한 것이거나 그와 동일한 것으로 여겨 이슬람 문화에서 매우 중요한 위치를 차지한다. 궁전은 물론 모스크 보다 더 공을 많이 들였던 흔적이 있다.

이슬람을 세운 예언자 무함마드(모하메드)의 묘로부터 출발한다고 본다.3)Leisten 1993; 65 무함마드는 자택에서 모스크로 이용했던 공간에 안치되었는데(아직 모스크를 제대로 건설하기 전이었으므로) 임종 시에 다음과 같은 말을 남겼다. “내 설교단과 묘 사이가 곧 파라다이스 정원이 될 것이다.” 후손들이 이를 문자 그대로 해석하여 구현한 것으로 보인다. 넓은 정원을 짓고 이에 영묘를 앉힌 최초의 사례는 9세기 후반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현 이라크 사마라에 세 명의 칼리프들이  넓은 정원에 돔이 있는 영묘를 짓고 그 안에 묻혔다. 이것이 전통이 되었으며 16/17세기 무굴 제국에서 극치를 이루었다. 누대에 걸쳐 영묘를 건설하는 과정에서 노하우가 축적되었고 그것이 타지마할에서 응집된 것으로 보인다. 영묘는 단지 죽은 자만을 위해 있었던 것이 아니라 그 가족들이 상을 치르는 동안 거처로 삼았다. 그러므로 부속 건물 등 별도로 거주할 수 있는 공간을 함께 지었다.

타지마할의 원래 구조


타지마할은 지금 남아 있는 것보다 거의 두 배에 가까운 규모였다. 남쪽 정문 바깥에 정원과 같은 넓이의 도시 구역이 조성되었었다(조감도 참조). 이곳에는 시장과 카라반 숙소가 있었다. 정문을 사이에 두고 산 자들의 도시와 죽은 자들의 도시가 연결되어 있던 형국이었다. 산 자들의 도시에서 정문을 통과하면 죽은 자들의 도시, 즉 파라다이스가 시작된다는 설정이었다. 시간이 흐르면서 시장과 카라반 숙소 구역은 도시 개발의 압력을 견디지 못하고 분해되어 현재 복잡한 도시 속에 매몰되었다.

마텝 바그 정원과의 관계

마텝 바그(달빛 정원)에서 바라 본 타지마할. Photo: Ankitgupta009, License: CC BY-SA 4.0

현재 강 건너 맞은 편에 타지마할과 평면이 똑같은 마텝 바그 정원이 있다. 달빛 정원이라는 뜻이다. 역시 차바그 형태로 조성되었으며 팔각형의 대형 연못이 있어 여기에 투영된 뭄타즈 마할의 흰  영묘가 검게 보인다는 전설이 있다. 초대 황제 바부르가 지었다는 설과 샤 자한 황제가 1652년, 즉  타지마할이 완성된 후 지었다는 설이 서로 갈린다. 인도 고고학 연구원 측에서는 본래 있던 정원을 샤 자한이 개선하여 타지마할을 바라다 볼 수 있게 한 것으로 보고 있다.

바로 이 정원 때문에 샤 자한이  야무나 강 맞은편에 타지마할과 똑같은 영묘를 계획했으나 완성하지 못했다는 전설이  탄생했을 수도 있다. 자신을 위한 영묘를 검은 색으로 지어 빛과 그림자처럼 서로 마주 보게 하려는 의도였다고 한다. 이 이야기는 17세기 말에 타지마할을 방문했던 프랑스 상인 장 밥티스트 타버니에의 여행기에서 비롯된 것으로 보인다. 고고학자들과 탐험가들의 상상력을 자극하여 1871년 영국 고고학자 칼레일은 달빛정원이 바로 샤 자한의 영묘였다고 주장하기도 했다. 사실 여부는 아직 확인되지 않았으나 이것이 계기가 되어 결국 후일 흙더미 속에 묻혀 있던 마텝 바그 정원이 발견되었다.

그러나 마텝 바그 정원은 강의 범람지에 위치하여 수시로 물에 잠겼고 인근 주민들이 건축 자재를 가져간 때문에 정원이 거의 훼손되었으며 흙더미만 남아 한때 정원이 존재했다는 사실도 잊게 되었다. 1990년대에 비로소 탐사가 시작되어 오랜 연구와 토론 끝에 2000년 복원 작업이 완료되었다4)Avijit 2000, in: India Today Heritage .

인도의 고고학 연구원Archaeological Survey of India (ASI)에서 발굴을 주도하여 총 9만 입방 미터의 흙을 들어냈다. 이때 25개의 분수가 설치된 거대한 팔각형 연못도 발굴되었다. 이 정원의 중앙 축 양변에 키 큰 나무를 열 지어 심어 여기서 볼 때 타지마할을 시야로 끌어들이는 망원경 같은 역할을 했음이 드러났다.

당시 전문가들 사이에 쟁점이 되었던 것은 식물 복원이었다. 고고학 연구원 측에서는 본래 심었던 나무를 심어야 한다는 주장이었고 환경 연구원 측에서는 미세 먼지를 여과하는 식물을 추천했다. 결국 법정까지 가게 되었는데 본래 무굴 정원에서 썼던 나무만 심어야 한다는 판결이 나왔다. 당시 카슈미르의 샬리마르 정원에서 많은 나무들을 들여와서 심었던 기록이 있으므로  정확하게 복원할 수 있었다. 구아바, 무궁화, 레몬, 아쇼카 나무와 재스민 등 총 81종의 나무를 심었으며 이와 평행으로 관목과 꽃피는 초본 식물을 심었다.

마텝 바그 정원의 발굴로 인해 무굴 정원 연구에 큰 전환점이 왔고 타지마할을 다른 각도에서 재조명하게 되었다. 이에 대한 연구는 아직 종결되지 않은 것으로 보아야 한다.


 

타지마할 투시도. 차바그. 그래픽: Ebba Koch

 

타지마할과 마탭 바그 배치도. 1. 달빛 정원, 2. 강변테라스와 영묘. 모스크, 영빈관, 3. 차바그 정원, 4. 정문과 진입 광장, 5. 바자르와 카라반 객사가 있던 곳. 그래픽: Mcginnly, License: Public domain

무굴 제국의 정원 도시 아그라


1720년에 제작된 아그라 시 지도. 강변에 정원들이 촘촘히 붙어 있는데 타지마할은 그 오른쪽 끝에 위치했다. 맞은 편에 마텝 바그 정원이 보인다. Source: Koch 2006;22

북쪽 아프가니스탄을 거점으로 거대한 제국을 건설한 무굴 황제들이 인도를 오래 지배하긴 했으나 북부 지방의 아그라, 라호르 등을 중심지로 삼았으며 남부 지방으로는 진출하지 않았다. 현재 북부의 우타르 프라데시 주에 속하는 아그라는 1526년에서 1648년 사이 무굴 제국의 수도였다. 특히 아크바르 황제 재위기1556-1605)에 크게 번영했다. 야무나 강변에 거대한 요새를 짓고 도시 외곽에 높은 성벽을 쌓았는데 이렇게 보호된 환경 속에서 왕족과 귀족들이 강 양변에 궁전과 정원, 모스크와 영묘 등을 서로 붙여 지어 가히 정원 도시로 발전했으며 타지마할이 그 정점을 이룬다.

 

참고 문헌


  • Gothein, M. L. (1926;2000): Indische Gärten: Gebr. Mann.
  • Havell, E. B. (1904): A Handbook to Agra and the Taj, Sikandra, Fatehpur-Sikri, and the Neighbourhood (1904), by E. B. Havell, edited by Frances W. Pritchett: ARCA. Online
  • Koch, Ebba; Barraud, Richard André (2012): The complete Taj Mahal and the riverfront gardens of Agra. London: Thames & Hudson.
  • Leisten, Thomas (1993): “Der Garten der islamischen Welt”. In: Hermann Forkl (Hg.): Die Gärten des Islam, pp. 60–76.
  • Jean Baptiste Tavernier (1889): Travels in India. Vol. 1. 2 Bände. Online
  • Avijit, Anshul (2000): Mehtab Bagh: Nursery of History. Hg. v. India Today Heritage. Online

 

Web:


  • 인도 고고학 연구원Archaeological Survey of India (ASI)

 

© 서양 정원사 백과

 

Related entries

각주   [ + ]

1. Gothein 1926; 72
2. Havell 1904; 72
3. Leisten 1993; 65
4. Avijit 2000, in: India Today Heritage
I footnote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