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일공작연맹 Deutscher Werkbund

[dropcap style=”default, circle, box, book”]독[/dropcap]일 공작연맹 (獨逸工作聯盟)1)도이처 베르크분트로 발음된다. 공인들의 연맹이라는 뜻인데 먼저 일본에서 공작연맹으로 번역한 것을 한국에서 수용한 듯하다.은 1907년 10월 6일 공식적으로 출발했다. “예술가, 건축가, 사업가와 각 방면의 전문가”들이 모인 산업문화연맹이다. 독일의 건축가 헤르만 무테지우스 Hermann Muthesius, 하일브론의 정치가 프리드리히 나우만 Friedrich Naumann, 아르누보 디자이너 앙리 반 데 벨데 Henry van de Velde가 뮌헨에서 결성했다. 현재는 다름슈타트에 본부를 두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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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적

예술, 산업과 기술이 하나가 되어 교육, 홍보 및 단합된 원칙을 적용하여 기술 및 산업제품의 품격을 높이는 것을 목적으로 했다. 이로써 이미 영국의 존 러스킨 John Ruskin으로부터 시작되었던 건축의 “개혁 양식”을 수용하고 이에 기초하여 더욱 확장, 발전시키고자 했다. 산업제품의 품격을 수공예 제품의 수준으로 끌어올리는 것을 사회적 윤리적 책임으로 보았다. 그때까지 산업제품은 수공예의 디자인을 모방하고 그에 더해 과다한 장식을 덧붙이는 데 불과했었다. 제품의 소재, 형태, 구조 및 기능에 부합되는 아름다운 외형을 찾는 것이 관건이었다. 이는 1852년 미국의 조각가 호레이셔 그리노 Horatio Greenough가 주창한 “형태는 기능을 따른다. Form follows function.”와 맥락을 같이 하는 것이었으며 “즉물주의 혹은 객관주의”라는 개념으로 압축되었다. 이 개념은 후에 1920년대 “신 즉물주의”로 다시 언급된다. 이익추구만을 노린 조악한 대량 제품에 반하여 기술과 미학의 높은 수준을 요구하는 것이 기본 프로그램이었다.

장식으로 넘쳐나던 제품에 저항하여 장식과 문양이 없는 단순한 형태가 이상형으로 대두되었다. 독일공작연맹은 수시로 전시회를 열여 그들이 제시한 원칙에 따라 생산된 제품들을 세상에 내보였으며 한편 무수히 글을 발표하여 대중에게 널리 알리고자 했다.

“큐션으로부터 도시개발까지” 라는 모토를 내 걸어 상품디자인의 범주를 훨씬 뛰어넘어 건축과 도시디자인을 통해 “우리 시대의 모던한 스타일”을 하나의 양식으로 정립하고자 했다.

각주   [ + ]

1. 도이처 베르크분트로 발음된다. 공인들의 연맹이라는 뜻인데 먼저 일본에서 공작연맹으로 번역한 것을 한국에서 수용한 듯하다.
I footnote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