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1쪽 : 이스파한의 삼색장미

영국계 프랑스 보석상이었던 존 샤르댕 경이 1660년경에 이스파한을 방문했다. 그리고 거기서 하나의 가지에서 세 가지 색의 꽃을 피우는 장미를 보았는데 어떤 것은 노란색이었고, 어떤 것은 노란색과 흰색, 그 밖에 나머지는 노란색과 붉은색이었다고 전했다.  [91쪽]

처음에 이 문장을 읽었을 때 믿기지 않았다. “아무리 아라비안나이트의 나라를 여행했다고 해서 뭐 이렇게 까지 허풍을…”  그 다음부터 장미철이 되면 유심히 살피는 습관이 붙었다. 혹시 한 가지에 세 가지 색으로 꽃을 피우는 장미가 정말 있는 것은 아닐까. 아직 보지 못했다.

그러다가 우연히 다른 책에서 바로 그 삼색 장미를 그린 그림을 발견했다. 아 정말이네 ~.

Pavord 91_3 roses

Leiden, Bibliotheek der Rijksuniversiteit, Cod. or 289, fol. 39.

1083년 이슬람 필사본 중. 삼 색으로 표현된 장미. 출처: Pavord 2008, p. 9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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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의 그림은 1083년에  북 이슬람 권의 누군가가 그린 것이라 한다.  모두 228 페이지로 이루어진 필사본1)Witkam 2007, p. 289 중 39쪽이다. 이 필사본은 다름 아닌 고대 그리스의 의사 디오스코리데스가 쓴 약물서를 아랍어로 번역하면서 식물 그림을 그려넣은 것이다. 디오스코리데스는 본래 그림을 하나도 넣지 않았었다. 후세들이 그의 책을 필사하면서 그림도 그려넣는 전통이 생겼다.

페르시아의 al-Natil이라는 저명한 의사가 있었는데 당시 전해지는 디오스코리데스 약물서의 번역이 부실한 것을 느끼고 이를 바로 잡아  990년 경 새로 필사본을 만들었다.  약 620 점의 식물그림도 모두 직접 그려 넣어 왕자에게 헌정했다. (Collins 2000, p. 118)  그 책의 원본은 남아 있지 않은 것 같다. 다만 1083년 누군가가 al-Natil의 필사본을 다시 베낀 것이 남아 있어 현재 네덜란드의 릭스대학 도서관에 소장되어 있다.

Mahmoud M. Sadek이라는 학자가 1979년 이 복사본을 꼼꼼히 분석해 본 결과 아마도 어떤 학생이나 의사가 자기 공부를 위해서 직접 베낀 것 같다는 결론을 내렸다. (Sadek 1979, Collins 2000에서 인용.) 글씨도 그림도 프로 솜씨가 아닌 자유분방한 냄새가 난다는 것이다. 그림도 원본과 똑 같이 베꼈는지는 판단하기 어렵다. 될수록 비슷하게 그렸을 것이다.

종이가 비싸던 시절이었으므로 종이를 아끼기 위해서 세 가지 장미를 한 곳에 모아놓은 것이라고 해석하는 사람도 있지만 (Pavord 2008, p. 91 ) 존 샤르댕 경이 있지도 않은 삼색장미를 보았다고 꾸며댈 이유가 사실 없다. 그리고 위의 그림은 이스파한이 속해 있는 북이슬람권에서 나온 것이라니 제대로 들어맞는다. 이스파한에 정말 삼색 장미가 있었나 보다.

그건 그렇다쳐도 그림 옆에 뭐라고 써 있는지도 궁금하다. 아랍어를 읽을 줄 몰라도 알 수 있는 방법이 있다. 디오스코리데스의 책을 번역한 것이니 읽을 수 있는 언어로 번역된 것을 찾아서 맞춰보면 된다. 다행히 디오스코리데스는 장미에 대해서 두 번만 언급했다. 장미오일을 만드는 방법과 장미잎으로 여러가지 약물, 연고, 정제 등을 만드는 방법이다. 그림 옆의 텍스트는 후자에 속한다. “장미는 성질이 차고 수렴효능이 높다… “(Dioscorides 101)로 시작되는 것이 마치 동의보감을 읽는 것과 같다.


참고 문헌

  • Collins, M. (2000): Medieval Herbals: The Illustrative Traditions: British Library.
  • Dioskurides: Materia Medica. Hg. v. pharmawiki.ch. Online: http://www.pharmawiki.ch/materiamedica/images/Dioskurides.pdf.
  • Jan Just Witkam (2007): Inventory of the oriental manuskripts of the Library of the university of Leiden. Hg. v. TER LUGU PRESS LEIDEN (Volume 1 Manuskript or. 1 – or. 1000)
  • Pavord, Anna (2008): Wie die Pflanzen zu ihren Namen kamen. Eine Kulturgeschichte der Botanik. 1. Aufl. Berlin: Berlin Verla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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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고정희의 홉하우스 읽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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각주   [ + ]

1. Witkam 2007, p. 289

댓글(2)

  1. 존 샤르댕이 보았다는 장미는 중동권에서 약용 및 식용으로 쓰이는 Rosa × damascena 보다는 R. foetida 이지 않았을까 싶습니다. R. foetida ‘Bicolor’ 류의 주홍색 꽃이 피는 변이와, 흰색 변이가 황색인 기본종과 같이 심겨 섞여 자라는 것을 한 나무로 착각했거나, 아니면 드물게 아조변이가 두번 일어나 정말 한 나무에 핀 것을 본게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드는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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