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94쪽 – 비타 색빌-웨스트 스토리(버지니아 울프 136회 생일을 기하여)

버지니아 울프 초상화, 조지 찰스 베레스포드 1902년 작. Public Domain

오늘, 2018년 1월 15일은 버지니아 울프Virginia Woolf의 136번째 생일입니다. 이를 계기 삼아 그녀의 여친 비타 색빌-웨스트에 대한 이야기를 해 볼까 합니다. 버지니아 울프도 정원을 가꿨었는지는 모릅니다. 다만 그녀의 친구 비타 색빌-웨스트는 명성 높은 정원예술가였습니다. 본업은 소설가, 시인이었지만 글 보다는 정원으로, 그리고 버지니아 울프와의 동성애적 관계로 인해 잘 알려지게 되었죠.

홉하우스 여사는 <사진과 그림으로 보는 서양정원사>에서 색빌-웨스트에 대해  394쪽에서 한 번 언급합니다.

[box style=”1″]이 기법(윌리엄 로빈슨의 자연스러운 식재기법)은 나중에 거트루드 지킬, 로렌스 존스턴Lawrence Johnston, 비타 색빌-웨스트Vita Sackville-West 등이 활용하여 완벽한 시골집 스타일에 대한 새로운 표준을 세웠다.[/box]

색빌-웨스트가 만들고 가꾼 시싱허스트 캐슬 정원은 영국에서 가장 아름다운 정원 중 하나로 꼽힙니다. 그런 의미에서 단 한 번 언급되는 것에 그쳐 아쉽습니다. 그러나 홉하우스 여사의 다른 서적에서 시싱허스트 정원을 꽤 큰 비중으로 다루고 있어 상쇄가 됩니다.1)Hobhouse 2003 그뿐 아니라 다른 작가들이 시싱허스트 정원에 대해 단행본을 쓴 것이 꽤 여럿입니다.

버지니아 울프의 대표작에 속하는 소설 올란도Orlando는 바로 색빌-웨스트를 모델로 삼은 것이랍니다.

비타 색빌-웨스트 (1986-1962). 1910-1920. Public Domain.

올란도는 매우 특이한 소설입니다. 올란도라는 가상 인물에 대한 전기형태의 소설인데 16세기 영국과 18세기 콘스탄티노플, 다시 영국으로 무대가 바뀌며 이야기가 펼쳐집니다. 주인공 올란도는 16세기 영국에서 남자로 태어나 젊은 귀족으로 살다가 콘스탄티노플 외교관으로 파견됩니다. 거기서 어느 날 자고 일어나니 여자로 변해 있었습니다. 시대 역시 18세기로 건너뛰었고요. 다시 영국으로 건너가 좌충우돌 끝에 20세기까지 살면서 시인이 됩니다. 한 인물이 남성과 여성의 삶을 모두 체험하고 16세기에서 20세기까지 살아가는 재미난 이야기입니다. 한국어 판도 일찌감치 출판되었고요.

두 사람(울프와 색빌-웨스트)은 외모도 매우 흡사합니다. 둘 다 작가라는 점 외에도 정신적으로 깊이 공감하는 관계였다고 합니다. 특히 버지니아 울프는 미소년 같은 색빌-웨스트의 외모에 매혹되었던 것 같습니다. 1925년부터 1928년까지는 동성애적 관계를 가졌고 이후에는 버지니아 울프가 죽을 때까지 우정을 지켰습니다. 이런 이야기들은 그냥 소문이 아니라 색빌-웨스트의 아들(니겔 니콜슨)이 이들에 대한 책을 여러 권 발표하여 소상히 전한 것입니다.


비타 색빌-웨스트 Vita Sackville-West(1892-1962)

빨간 모자를 쓴 여인 비타 색빌-웨스트, William Strang 1918. PD.

참 흥미로운 여인입니다. 당신은 정원을 가꾸는 작가입니까 아니면 글 쓰는 정원사입니까라고 물으면 당연히 정원을 가꾸는 작가라고 답했을 것입니다. 우리에게 정원예술가로 널리 알려져 있다고 해도 본인에게는 작가로서의 삶이 우선이었을 겁니다. 무려 50여편의 소설을 쓰고 수많은 시를 지었으니까요. 문학적으로 보아 친구 버지니아 울프의 반열에는 끼지 못하더라도 나름 소설가로는 성공한 편입니다. 그럼에도 버지니아 울프가 너는 글을 삽으로 쓰냐며 미운 소리를 했다지요.

그럼에도 1926년에 “전원 The Land”이라는 장편시를 발표하여 시인으로서도 명성을 얻었습니다. 모두 2500 행에 걸쳐 고향 캔트 주의 아름다운 사계절과 전원생활의 수고를 노래한 송가입니다. 페르시아에 오래 머문 적이 있는데 바로 이 시절에 쓴 시입니다. 아마도 뜨겁고 건조한 테헤란에서 고향의 푸르른 숲과 초원이 너무 그리웠었나 봅니다. 정원작가 제인 브라운이 말하기를 색빌-웨스트의 정원과 글은 그녀의 고향 캔트를 떠나서 생각할 수 없다고 했는데 그 말이 맞지 싶습니다.

색빌-웨스트 가문의 성 크놀하우스. © Richard Croft, Wikimedia Commons, License: CC BY-SA 2.0.

비타 색빌-웨스트는 1892년 캔트에 깊이 뿌리내린 유서깊은 남작 집안의 외동딸로 태어납니다. 영국의 그 많은 캐슬 중에서도 큰 캐슬 중에 속하는 크놀하우스에서 태어나 열 살부터 발라드, 단편소설, 희곡 등을 쓰면서 성장했습니다. 키가 크고, 깡마른데다가 왈가닥이어서 꼭 사내아이 같았다고 합니다. 그러다가 1913년, 만 21세에 우아한 신여성이 되어 해롤드 니콜슨 남작과 결혼합니다. 이제 레이디 니콜슨이 된 거지요. 둘 사이에 아들 하나 딸 하나를 낳고 평생 사이좋게 살았다고 합니다. 부부가 모두 신개념의 삶의 방식을 추구했으므로 각각 동성애에 빠지기도 했지만 비밀이 아니었으므로 결혼 생활에 큰 영향을 주지 않았다지요. 1920년대 유럽 황금기의 분위기가 그러하긴 했어도 매우 특이한 케이스인 건 사실입니다. 아들이 나중에 “어느 별난 결혼생활에 대하여”라는 제목으로 부모의 이야기를 책으로 만들어 낸 것을 보면 아들 역시 만만치 않습니다.

남편이 두 해 동안 외교관으로 테헤란에 나가 있는 동안 색빌-웨스트는 페르시아를 자주 여행했습니다. 여기서 정원에 대해 많은 생각을 하게 된 것 같습니다. 이때의 경험을 묶어 Passenger to Teheran 이라는 제목으로 책을 발표했는데 여기서 정원에 대한 얘기가 자주 나옵니다. 그중 페르시아 정원에 대해 의미심장한 말을 한 것이 있는데 그건 페르시아 정원 다룰 때 얘기하려 합니다.

시싱허스트 캐슬 정원


그러다가 영국으로 돌아 와  1930년 시싱허스트 캐슬을 매입하여 본격적인 정원사의 삶을 시작합니다. 물론 장원에서 태어나 자랐으니 초보자는 아니었지요. 그런데 말이 캐슬이지 이 부부가 매입했던 당시에는 거의 폐허에 가까웠습니다. 성한 건물이라고는 높은 탑과 코티지 두채, 마굿간 뿐이었다고 합니다. 3 헥타르의 정원은 잠자는 숲 속의 미녀의 장면처럼 온갖 덩굴로 뒤덮여 있고 숲이 우거져 있었습니다. 그런 모습은 색빌-웨스트의 마음에 깊이 와 닿았고 그녀의 로맨틱한 상상력을 크게 자극했다고 합니다. 나중에 “그때 첫눈에 반했고 바로 그림이 그려졌다.”2)Lanfranconi, Claudia; Frank, Sabine 2009, p. 138 고 회상했습니다.

두 채의 코티지와 탑(안주인의 작업실)에 가족들이 각각 거처를 정하고 마굿간에 도서관을 마련하니 정원은 자연히 흩어져 있는 네 곳의 거처를 서로 연결하는 복도와 추가적인 방의 역할을 해야 했습니다. 실제로 그들은 정원을 가로세로 격자로 나누어 여러 개의 방을 마련하고 각각  테마를 주었습니다. 허브원, 장미원, 백색정원, 붉은 정원 하는 식으로. 그중 옥외 식당 역할을 하는 백색정원이 나중에 크게 유명해 집니다. 정원 담장을 뒤덮은 흰꽃 등나무를 비롯하여 흰 덩굴장미가 주인공이고 그 외에 우람한 거인 숙근초들을 심어 보좌한 – 물론 흰꽃이 피는 –  대범한 정원입니다. 이 과감한 시도에 모두들 깊은 인상을 받아 한동안 백색정원 만들기가 유행하기도 했습니다.

문인의 감각, 장원주의 자존심, 시골 아낙의 정성으로 만들고 가꾼 시싱허스트 캐슬 정원은 이미 그녀 생전에 명소가 됩니다. `그녀의 사후에는 네셔널 트러스트에서 넘겨 받아 관리하고 있는데 영국에서 가장 방문객이 많은 정원 중 하나라고 합니다.

홉하우스 여사의 말에 따르면 “방문객이 너무 많은 관계로 색빌-웨스트 생전에 존재했던 풍성함과 자연스러움을 지키기가 어려워 많이 단순화했다.”3)Hobhouse, Penelope, Der Garten – Eine Kulturgeschichte, Dorling Kindersley, 2003, p. 427.고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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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싱허스트 캐슬 가든. © Epibase, Wikimedia Commons, License: CC BY-SA 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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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싱허스트 캐슬 정원. 백색 정원의 담장에 늘어진 등나무의 흰꽃. © Odl. Wikimedia Commons, GNU Free Documentation License.


참고 자료


  • Hobhouse, Penelope; Schönbach, Marianne (2003), Der Garten. Eine Kulturgeschichte, Dorling Kindersley.
  • Lanfranconi, Claudia; Frank, Sabine (2009), Die Damen mit dem grünen Daumen. Berühmte Gärtnerinnen. Sandmann, pp. 137-141.

외부 고리



© 고정희의 홉하우스 읽기

각주   [ + ]

1. Hobhouse 2003
2. Lanfranconi, Claudia; Frank, Sabine 2009, p. 138
3. Hobhouse, Penelope, Der Garten – Eine Kulturgeschichte, Dorling Kindersley, 2003, p. 4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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