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7/21 쪽: 멘투호테프 2세의 정원으로 가는 길

데이르 알 바하리에 있는 멘투호테프 2세의 장제전의 경우 “건물 앞 광장에서 건물 일부로 이어지는 경사로를 따라 양쪽에 나무를 정연히 심었던 흔적이 발굴되었다. 발굴된 식재 구덩이의 배치로 미루어보아 각 삼열 일곱 줄로 램프의 양쪽에 돌무화과나무와 위성류Tamarix를 심어 가로수 길의 효과를 냈던 것으로 추정된다. (21쪽)

이런 문장을 읽으면 정원가의 가슴이 뛰게 마련입니다. 4천년 전에 나무를 심었던 흔적이 남아 있을 뿐 아니라 어떤 나무를 심었는지도 안다니. 당장 쫓아가서 확인하고 싶지요.

아래의 사진을 보면 구덩이를 알아볼 수 있습니다. 직경이 5~6 m 깊이 9~10m 정도였다고 합니다. 어마어마하게 큰 나무를 심었던 것 같습니다.

멘투호테프 II세의 장제전에 대해 좀더 상세한 정보를 원하시면 이리로 

그렇지 않은 분들은 아래 장제전 건축과 정원에 대해 요약한 내용을 읽어보시면 됩니다.

데이르 엘 바하리_JHG

장제전 항공사진을 보면 식재구덩이 위치를 제법 잘 알아볼 수 있음. Photo: Chipdawes, Wikimedia Commons. Public Domain. modified by jeonghi go

진입로와 광장 

사진 윗부분에 써 있는 “나일강까지 연결된 진입로”에 유의해야 합니다. 장제전은 나일강에서부터 시작되었습니다. 나일강 변에 “계곡 신전Valley Temple“이라는 것이 조성되어 있었고 여기서 램프를 따라 장제전 앞 광장까지 연결되었습니다. 계곡 신전이란 일종의 게이트 건축으로 ‘강을 건너는 의식’을 위해 축조되었습니다. 나일강의 동쪽에서, 즉 산자들의 세상에서 배를 타고 강을 건너와 서쪽, 즉 죽은 자들의 세상에 도착해서 들어가는 관문이었습니다. 이를 위해 강변에 별도의 신전형 건축을 세웠는데 이것이 계곡신전입니다. 계곡 신전들은 나일강의 범람지 내에 세웠기 때문에 대부분 침몰되어 현재 남아 있는 것이 거의 없습니다.

이 계곡 신전으로부터 길이 약 1.2킬로미터, 폭 46미터의 램프가 장제전 앞의 광장 정원으로 연결되었습니다. 광장에는 정원이 조성되어 있었는데 나무를 열식하여 심고 왕의 좌상을 최소한 22구 배열했던 것으로 드러났습니다. 아마도 한쪽에는 상이집트의 백색 관을 쓴 좌상을, 다른 한 쪽에는 하이집트의 붉은 관을 쓴 좌상을 배치했던 것 같습니다(Dieter Arnold, Die Tempel Ägyptens. Bechtermünz Verlag 1996 [140-141]).

1-Ägyptischer garten3

1) 램프, 2) 전실 1층, 3) 전실 2층, 4) 열주 테라스, 5) 피라미드 혹은 봉분, 6) 중정, 7) 다주실, 8) 아문신 성역, 9) 수목 열식, 10) 화단. Source: Michael Haase 2011, p. 188 (scan), modified by jeonghi go

정원

약 160미터에 달하는 광장 중앙축의 양변에 돌무화과 나무 Ficus sycomorus 를 열식하고자 계획했던 것 같습니다. 그러나 준비해 둔 28개의 구덩이에 모두 나무를 심지 않고 8그루만 식재한 것으로 나타났습니다. 왜 심다 말았는지는 아무도 모릅니다. 식재 중 전쟁이 일어나기라도 했을까요? 암튼 실제로 나무를 심었던 구덩이를 보면 각 직경이 5-6미터, 깊이 9-10미터 가량이나 됩니다. 구덩이라기 보다는 거의 우물수준이므로 관리를 위해 구덩이 가장자리에 나선형의 계단을 조성했습니다. 단단한 암석층을 깊이 뚫고 나일강의 점토로 채웠는데 뿌리가 일부 남아 있어 돌무화과와 위성류 Tamarix를 심었음을 알게 되었습니다.

멘투호테프 2세의 장제전 광장에서 발견된 수목 식재의 흔적. © buxhoeveden

돌무화과 사이에서 약 6.8미터 x 1.75~1.85 미터 크기의 화단도 하나 발견되었습니다. 이 역시 나일강의 점토로 채워져 있었으며 식물의 흔적이 발견되었으나 아직 식물 분석은 이루어지지 않았습니다. 이 화단의 기능과 용도 역시 불분명하고요. 당시의 디자인 개념으로 미루어 보아 화단 하나 만을 배치하지는 않았을 것이므로 계획했던 화단들 중 일부만 완성된 것일 수도 있다고 봅니다. 위치로 보아 유용정원은 아니었을 텐데 어떤 식물들을 심었을지 너무 궁금하지만 식물학자들 연구가 끝날 때까지 기다려 보는 수 밖에 없습니다(Dieter Arnold 1974: Mentuhotep. Bd. 1. p. 22, in: Michael Haase 2011).

다만 당시 이집트에서 화단에 심을 수 있는 식물이 매우 제한되어 있었으므로 이미 살펴 본 식물 중에서 선발하여 심었다고 보아도 좋을 것입니다. 제단에 바칠 향기나는 식물들을 심지 않았을까요? (고대 이집트 식물 참조)

그외에 중앙축 양쪽으로 나무를 군식한 흔적이 있습니다. 좌측에 33그루, 우측에 22그루의 돌무화과를 심었었습니다. 이들 구덩이는 중앙축의 것보다 작고 깊이 70센티미터에서 뿌리의 흔적이 발견되었고요.

이 수목정원은 종교적 기능을 했던 것으로 해석하고 있습니다. 구왕국 말기의 종교적 이념에 따르면 돌무화과 나무는 왕들이 하늘로 올라가기 위한 사다리 역할을 했었습니다. 본래 돌무화과 나무는 해가 뜨는 동쪽에 속한 나무로 여겼기 때문입니다. 반면 위성류는 지하세계의 신 웨프와웨트에 속한 나무였으며 웨프와웨트 신은 왕들의 부활과 관련되어 언급됩니다. 결국 죽음을 극복하고 내세에서 부활하여 영원히 살 것을 기원하기 위해 조성된 정원으로 보입니다.

그 외에 수목정원으로부터 약 22미터 동쪽으로 떨어진 곳에 직경 약 13.5 미터의 원형 담장이 발견되었는데 그 내부에 정원을 조성했던 흔적이 있으며 중앙에 큰 돌무화과 나무가 있던 것으로 분석되었습니다. 이 나무 아래 작은 제단이 서 있던 것으로 미루어 보아 나무 숭배 의식이 치러졌을 것으로 해석됩니다. 벽돌담의 연대를 분석한 결과 멘투호테프  2세 때 조성된 것이 확인되었습니다.

사후세계에서 돌무화과 나무에 신들이 깃든다고 여겼던 것과 연관지어 볼 수 있으며 누트 여신과 하토르 여신을 상징하는 신성한 나무로서 경배의 대상으로 작은 정원을 만들어 모셔두었을 겁니다. (Michael Haase 2011: “Tempel und Gärten”, in: Christian Tietze, Ägyptische Gärten, Arcus-Verlag Weimar, p. 190)

멘투호테프 2세 장제전의 중심 구역. 테라스 신전 앞 광장 중앙축 양변에 돌무화과 나무와 위성류를 심었었다. 사진 속의 모델은 2011년 독일 쾰른에서 개최된 “이집트 정원” 전시회를 위해 제작되었다. Source: Michael Haase 2011, p. 189 (scan)

 

1-Ägyptischer garten2

위와 같음. Source: Michael Haase 2011, p. 190 (scan)

[gap height=”15″]

위의 모형은 브라운 색으로 나무를 심어 느낌이 썩 와닿지 않습니다. 나일강에서 장제전까지 이어되는 장엄한 행렬과 푸른 나무들을 상상해야 하는데 이때 아래 그림이 조금 도움이 될 듯합니다.

아래의 그림은 기원전 15세기에 살았던 나크트라는 고위 관리의 석묘에서 발견된 벽화입니다. 홉하우스 여사님의 책 17쪽에 있습니다. 얼핏 보기에 정원을 묘사한 것 같지만 자세히 보면 장례식 장면으로서 “운구” 행렬을 보여줍니다.  나일강 동쪽 서쪽을 불문하고 신전마다 “성스러운 거룻배”를 모셔두는 방이 있었습니다. 신전에서 일정한 의식을 치른 뒤 이 배에 고인의 사체를 싣고 나일강을 건넜습니다. 서쪽 강변에 도착하면 거기 있는 계곡 신전으로 가서 다시 의식을 치렀고요. 그림에 보이는 정원은 의식이 치러졌던 신전의 정원을 묘사한 것으로 짐작됩니다. 관을 실은 성스러운 거룻배가 서쪽 강변의 계곡 신전에 도착한 장면을 보여줍니다. 여기서 연못은 나일강을 형상화한 것이며 계단을 올라 사각형의 계곡 신전으로 진입. 여기서 ‘서천’에 온 것을 환영하는 의식을 치렀습니다.

신전 마당에 나무가 심겨있고 사방에 돌무화과 나무대추야자가 번갈아 식재되어 있는 것이 보입니다. 그외에도 과일, 향, 기름 등의 제물을 바치는 제례 장면이 함께 묘사되어 있습니다. 멘투호테프 II세의 장제전 정원도 규모는 컸지만 배치 원칙은 유사했을 것으로 짐작됩니다.

평민들도 이와 같은 의식을 치렀는지는 확실히 모릅니다. 왕처럼 전용 거룻배나 전용 계곡 신전은 없었어도 기본 절차는 같았겠지요.

1-DT10880_Minnakhte 1475

고대 이집트의 장례식 장면을 재현한그림. 이 그림의  원본은 제18왕조 나크트라는 고위 관리의 무덤 벽화로서 기원전 1479-1425 사이에 그린 것이며 이를 1930년 Charles K. Wilkinson이 종이에 옮겼다. 현재 뉴욕 메트로폴리탄 박물관 소장. 소장번호: DT10880_Minnakhte 1475, Public Domain


[주: 혹시 위의 스캔한 사진들을 퍼 가시는 분들은 반드시 출처(Michael Haase, in: plants in garden history)를 함께 밝혀 주세요. 사진을 찍은 Michael Haase 님이 까다로워서 그렇습니다. 독일에선 책에서 사진을 스캔해서 쓰는 것이  아직 허용되어 있습니다. 이를 “사진 인용”이라고 하고요. 다만 Michael Haase님이 개인적으로 그에 대해 불평하는 걸 들은 적이 있습니다.]


© 고정희의 홉하우스 읽기

[gap height=”15″]

댓글 남기기

I footnote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