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0장면 – 용두사미? 또는 조경의 미션

“박사님, 이거 새로 좀 써 주시면 안될까요?” 이런 반응이 오지 않을까 은근히 걱정했었다.

“그래도 명색이 마지막 장면인데 뭔가 거대담론적인것으로다가…”

그런데 아무도 그러지 않았다. 남기준 편집장도 조한결 기자도 아무 말이 없었다.

그럼에도 언젠간 용두사미라는 비평이 나올 줄 알고 있었다. 아닌 게 아니라 100장면 북토크 때 이수학 선생이 그점을 지적했다. 기실 지적이 더 많을 줄 알았는데 한국 사람들은 나이 많은 사람에게 감히 덤비지 않는 분위기라서 모두들 참고 있었을 것이다.

“스폰지 공원이 뭡니까? 촌스럽게” 이러고 싶었을 것이다. 나도 안다. 나도 쿨하고 싶다. 그러나 내 역할은 그게 아니라고 여겼다. 지금 우리에게 정말 필요한 것이 무엇인지 그 방향을 가리키고 싶었다. 그것이 내 사명인 것 같다.  그래서 요즘은 허구헌날 환경얘기만 한다.

<연재를 마치며>에서 이렇게 말했었다.

“마지막으로 어떤 장면을 소개할까 많이 고민했다. 뭔가 엄청스레 근사한 것을 소개해야 한다는 강박관념도 없지 않았음을 고백한다.”

그러나 20세기를 거쳐 21세기로 이야기가 진행되는 동안 분명해 진 것이 있었다:

정원가가 조경가가 되고 조경에서 환경이 파생되어 나가는 과정은 우리 직업군에게 새로운 아이덴티티를 부여했다.  정원 짓기가 사적인 영역에 속했던 것이라면 조경Landscape Architecture은 공적인 행위에 속한다. 시민들을 위한 공원을 만들고, 광장이나 도시정원 등을 조성하는 과정에서 조경가들은 개인이나 사기업(왕실이나 귀족가문)에 예속되었던 과거를 청산하고 스스로 <사회적 신분>을 부여했다.

 20세기 초, 개인의 발견으로 인해 미래정원에 대한 치열한 토론이 벌어짐과 동시에 공공정원이  과제의 중심부로 서서히 파고들었다. 정원이 개인정원과 공공정원으로 구분되어 나갔던 시기이기도 했다. 이것이 모더니즘 조경의 핵심이다. 물론 바우하우스의 건축가들이 먼저 모범을 보였다.

20세기 초의 조경가들은 서민 아파트단지의 조경과 시민공원을 솔선해서 디자인하면서 <시민들에게 건강하고 아름다운 환경을 제공한다>는 사명을 스스로 부여했다. 공공기관이나 발주처의 요구대로 따라 간 것이 아니라 오히려 그들을 선도했다. 물론 제대로 무장이 되어 있었으므로 가능한 일이었다.  전문성은 물론이고 공공조경의 새로운 이념을 만들어 가지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설득력이 있었다. 이렇게 한 번 형성된 관계, – 갑과 을이 아닌 -, 행정기관과 전문가라는 관계는 지금까지 이어지고 있다.

2차 대전 이후 유럽의 파괴된 도시들을 복구하는 과정에서 조경가의 역할이 다시 한 번 업그레이드 되었다. 도시건설의 키워드가 밀집된 기능공간(폭격에 약함)에서 녹지로 둘러싸인 랜덤한 곳으로 바뀌면서 조경가들의 역할 비중이 커졌다. – 이에 대해 한 장면을 할애했어야 하는데 장면 분배를 잘 못해서 결국 모자랐다.

1970년대에 환경이라는 새로운 분야를 이끌어 낸 것도 조경가들이었다. 당연한 귀결이었다.  <건강하고 아름다운 도시 환경>을 만드는 것에서  <건강하고 아름답고 지속가능한 도시 환경>으로, 여기서 또 < 건강하고 아름답고 지속가능하며 기후변화에 적응할 수 있는 도시환경>을  만드는 것으로 사명이 이어지고 있다. 쿨하지는 않지만 진실하다. 진실한 것은 쿨하지 않아도 된다. 스폰지 시티처럼 궁상맞아도 좋다.

그런 의미에서 궁상맞게 살다 간 별난 조경가 레베레히트 미게 의 삶과 사상을 한 번 되새겨볼 만하다(레베레히트 미게에게도 한 장면을 할애할 예정이었으나 이 역시 포기해야 했다). 헤르타 함머바허가  중년에 접어들어 자신의 창의적 본능을 억제하면서까지 조경을 <미션>으로 정의했던 것도 같은 맥락에 속한다.


100장면 비하인드 스토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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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 footnote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