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5 – 팔라디오가 대체 누구이기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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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Copista del sec. XVIII, G.B. Maganza (originally uploaded on the Italian wikipedia.) [Public domain], via Wikimedia Commons

안드레아 팔라디오 초상화. 화가: Copista del sec. XVIII, G.B. Maganza 1576년 작. 현재 비첸차의 Villa Valmarana “ai nani”에 소장되어 있다. source: Wikimedia Common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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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국 풍경화식 정원에 대해 얘기하다보면 안드레아 팔라디오 Andrea Palladio (1508-1580) 얘기를 하지 않을 수가 없다. 건축과 정원이 항상 짝을 지어왔으니 건축가의 이름을 접하는 건 물론 당연한 일인데 팔라디오의 경우 여기도 팔라디오 저기도 팔라디오 18세기에는 오로지 팔라디오의 세상이었던 것 같다. 16세기 베네치아 공화국 건축가였던 팔라디오가 18세기 영국에서 그리 명성을 떨치게 된 사연을 얘기할 때가 온 것 같다. 그래서 그 준비를 하기 위해 팔라디오의 전기를 정리하다가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다;

팔라디오의 생애와 작품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필연적으로 16세기 팔라디오가 살고 활동했던 베네치아 공화국을 먼저 찾아가야 한다. 풍경화식 정원을 이해하기 위해 18세기 영국의 사회의 분위기와 스캔들과 가십거리를 찾아헤맸던 것처럼 16세기 베네치아의 분위기에 먼저 빠져들어가지 않으면 팔라디오가 누구였는지 제대로 파악하기는 어려워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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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냐하면, 그가 비첸차에서 석공으로 14년을 일한 후 삼십 세가 되었을 때 당시 비첸차의 석학이었던 지안 조르지오 트리시노를 만나게 된다. 트리시노는 팔라디오의 탁월한 재능을 알아보고 인문학 공부와 비투르비우스 공부를 종용했으며 같이 여러 차례 로마로 여행을 가서 고전 건축들을 보여준다. 말하자면 트리시노와의 만남이 결적적인 터닝포인트가 되었을 것이다.

세기의 석학이 석공의 재능을 알아 보고 책을 줘가며 공부하라고 종용한 것 까지야 이해할 수 있지만, 같이 여행을 간다? 정서적으로 쉽게 와닿지 않는 스토리일 것이다. 이걸 이해하려면 그들이 살았던 도시들의 골목을 돌아다녀보고, 빌라 안에 들어가 그들의 식탁에 같이 앉아, 베네치아 포도주를 마시며 그들의 이야기에 귀를 기울여야 한다. 역사는 문서로 이해하는 것이 아니라 소리와 그림과 맛과 냄새 – 오감으로 이해하는 것이 가장 정확하다.

결론 1: 아무리 마음이 급해도 팔라디오에 대해 이야기하기는 아직 이르다.

결론 2: 그래도 간략하게나마 비첸차의 분위기를 전하는 방법을 고민해 봐라.

흐음….. <고정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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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ttp://upload.wikimedia.org/wikipedia/commons/thumb/f/f7/Giovanni_Antonio_Canal%2C_il_Canaletto_-_Capriccio_-_a_Palladian_Design_for_the_Rialto_Bridge%2C_with_Buildings_at_Vicenza_-_WGA03938.jpg/800px-Giovanni_Antonio_Canal%2C_il_Canaletto_-_Capriccio_-_a_Palladian_Design_for_the_Rialto_Bridge%2C_with_Buildings_at_Vicenza_-_WGA03938.jpg

팔라디오가 살았던 시대의 비첸차 그림은 찾을 수 없지만 이와 크게 다르지 않았을 것이다. 그림 속의 장면은 실제가 아니라 베니스Capriccio, a Palladian Design for the Rialto Bridge, with Buildings at Vicenza, Canaletto 1740s. Galleria nazionale di Parma. source: Wikimedia Common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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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00 장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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