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1쪽: 오귀스트 마리에트의 활약

지난 번 블로그 “푼트의 미스터리 또는 고고학자들에게 갈채를“에서 글을 이렇게 맺었습니다.

어떻게 하여 나빌이 장제전을 발굴하기 십년 전에 이 삽화가 먼저 그려지게 되었는가라는 점입니다. 미스터리하죠? 우선 이것부터 추적해서 밝혀보려 합니다.

알고보니 이러했습니다. 에두아르 나빌이 1893-1898년 정식으로 발굴작업을 시작하기 전 이미 여러 사람이 데이르 엘 바하리에 다녀갔습니다. 그중에 독일의 저명한 이집트 학자 요하네스 렙시우스(Johannes Lepsius 1858-1926)도 있었는데 그는 1848년에 나타나 답사만 하고 돌아갔습니다. 그후 십년 뒤 1858년 저돌적인 행동파, 프랑스의 오귀스트 마리에트 Auguste Mariette (1821-1881)가 삽을 들고 나타납니다. 그러므로 모래에 깊이 파묻혀 있던 데이르 엘 바하리의 모습을 가장 먼저 드러나게 한 인물은 마리에트가 된 겁니다. 하트셉수트 여왕의 장제전을 처음 발견한 인물도 그였습니다. 그런데 어떤 이유에서인지 발굴 작업을 완전히 마무리 짓지 않고 떠납니다. 오귀스트 마리에트는 이집트 고고학계에 널리 알려진 존재로 문화재 관리에 큰 공적을 세우고 이집트 박물관을 설립하는 등 많은 일을 했습니다.  아마도 발굴된 유물을 카이로로 운반하여 박물관 설립하는 일에 몰두했기에 체계적인 발굴은 하지 못했던 듯합니다. (위의 사진에서 왼쪽 의자에 앉은 인물이 오귀스트 마리에트)

후에 에두아르 나빌이 영국의 이집트 탐사 재단의 의뢰를 받아 마리에트가 대충 파헤치고 간 자리를 매우 꼼꼼하고 체계적으로 조사했습니다. 그리고 무려 7권에 달하는 책을 발표한 것입니다.  그러므로 학문적인 업적이 나빌에게 돌아가게 되었고 나빌은 데이르 엘 바하리의 고고학자로 이름을 떨치게 됩니다.

마리에트가 가고 나빌이 오는 사이 사십 년의 긴 세월이 흘렀습니다. 그 사이 데이르 엘 바하리에 많은 보물 사냥꾼들이 다녀갔습니다. 그중 누군가는 보물을 훔쳐가고 누군가는 벽화를 베껴가지고 가서 발표한 것이지요.


© 고정희의 홉하우스 읽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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