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쪽: 노래하는 거인 맴논

18쪽에 사실 노래하는 거인 맴논에 대한 얘기는 없습니다. 그 대신 고대 이집트 식물에 대한 얘기가 나오죠. 그럼에도 맴논 얘기를 꺼내는 이유는 맴논이 우리에게 고대 이집트 식물 중 수련파피루스 이야기를 들려주기 때문입니다.

이집트 나일강 서쪽, 룩소르에서 왕가의 계곡으로 가는 길에 엄청나게 커다란 석상 둘이 벌판에 덩그머니 앉아있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맴논 거상 둘입니다. 맴논이라고 불리기는 하지만 본래는 맴논이 아니고 둘 다 파라오 아메노피스 3세의 상입니다.

아메노피스 3세가 지금 맴논이라 불리는 데는 사연이 있습니다.

본래 그 자리에 아메노피스 3세의 장제전이 있었습니다. 그는 기원전 14세기에 고대이집트를 통치했던 제18왕조대의 파라오였습니다. 다른 모든 파라오들과 마찬가지로 자기 장제전을 짓고 전통에 따라 입구에 필론 Pylon이라고 불리는 웅장한 탑문을 세웠으며 필론 양쪽에 자신의 거대한 상을 만들어 좌우에 배치했는데 이것만은 점토가 아닌 화강석으로 만들었습니다. 기원전 1379년의 일이었습니다.

장제전을 세운 것까지는 좋은데 다른 왕들처럼 사막에다 세우지 않고 하필 해마다 범람하는 나일강 평야에다 세운 것이 화근이 되었습니다. 장제전이 해마다 물에 잠겨 조금씩 무너져 내렸고 오랜 시간이 지나자 흔적도 없어지고 만 것입니다. 화강석으로 만은 두 개의 석상만 남게 되었죠. 이후 수천 년의 시간이 흐르며 사람들은 아메노피스 3세가 여기에 장제전을 지었었다는 사실조차 잊고 말았습니다.

그러다가 기원전 4세기에 알렉산더 대왕이 이집트를 정복하고 그의 후예, 즉 그리스 사람들이 이집트를 통치하게 되었습니다. 그리스 사람들이 정체를 알 수 없는 두 개의 저 거대한 상을 맴논이라 부르고 이야기를 만들어 붙인 겁니다.

새벽의 여신이 아들 멤논의 주검을 들어올리는 장면. 멤논의 피에타라고도 한다. 기원전 490-480 년 사이에 제작된 컵 안쪽 그림. 루브르 박물관 소장. Public Domain

새벽의 여신 에오스에게 맴논이라는 아들이 있었습니다. 남들처럼 트로이 전쟁에 참가하여 용맹하게 싸우다가 아킬레우스에게 죽임을 당했습니다. 어머니 에오스는 아들의 사체를 얼른 거두어 이디오피아로 가져갔습니다. 적들이 사체를 훼손할 것이 두려워서였습니다. 그리고 매일 울어서 아침마다 눈물이 땅에 떨어져 이슬이 되었는데 그 애절함이 제우스 신의 마음을 움직이게 됩니다. 제우스 신이 말하기를  “이제 아무도 맴논을 잊지 못할 것이다.”라고 했답니다. 그 다음부터 아침마다 어머니가 울면 맴논도 같이 울었습니다. 그 맴논이 바로 석상 중 하나라고 사람들은 말했습니다. 실제로 석상 하나가 아침마다 소리를 냈기 때문이다. 사막 가까운 곳이라 밤에 냉각된 공기가 아침에 해가 뜨면 빨리 더워졌고 돌 틈으로 부푼 공기가 빠져나가며 우는 듯한 소리를 낸 것입니다. 어느 사이 맴논이 우는 소리를 들으면 행운이 온다는 소문이 퍼졌습니다. 그리스와 로마에서 여행객들이 많이 몰려왔지요. 서기 92년에 어느 로마 관리가 그 이야기를 돌에 새겼고 로마의 역사가 타키투스도 그 이야기를 써서 기록에 남겼습니다. 타키투스가 직접 보고 들었는지 확인할 길은 없습니다. 아드리아누스 황제는 황비까지 동반해서 직접 구경하러 갔었다고 합니다. 당시의 로마 관광객들이 남긴 낙서를 지금도 볼 수 있습니다. 

 “야, 신기하다. 꼭 가서 맴논이 우는 소리를 들어봐야겠네.” 라고 생각하는 독자들이 있다면 미안하지만 실망시켜 드릴 수 밖에 없네요. 서기 199년, 셉테미우스 세베루스라는 멍청한 황제가 멤논 거상을 보수하라고 지시해서 틈을 다 메워버렸기 때문에 이후로는 소리를 내지 않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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멤논 거상. 어느 쪽이 울보였는지 모름. © buxhoeveden

이야기도 재미있지만 그 보다는 멤논이 앉아 있는 의자의 측면에 새겨져 있는 부조가 매우 흥미롭습니다. 나일강의 범람을 책임지는 신 하피가 상하 이집트를 한데 묶는 그림이 새겨져 있기 때문입니다. 더욱 흥미로운 것은 상하 이집트를 상징하는 것이 식물이라는 점입니다. 상 이집트는 수련이, 하 이집트는  파피루스가 대표하고 있습니다.  맴논 거상 외에도 고대 이집트의 신전에 가면 상하 이집트를 상징하는 수련과 파피루스가 서로 묶이는 그림을 자주 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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디테일. 수련 (우)과 파피루스 (좌) 가 각각 상하 이집트를 상징한다. 나일강의 신이 둘을 묶고 있다. Photo: Olaf Tausch, Wikimedia Commons, License: CC BY 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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맴논의 거상 중 좌측 거상의 의자 측면에 새겨진 부조. 하피 신이 상하 이집트의 상징 식물을 하나로 묶어 통일을 상징하고 있다. Photo: Olaf Tausch, Wikimedia Commons, License: CC BY 3.0


© 고정희의 홉하우스 읽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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